“오늘은 평화롭습니다.” 5월 11일 오후, 처음 한국일보의‘견습기자’라는 이름으로 서울 동작경찰서 형사과 문을 밀고 들어가자 형사는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아 내내 조용했다고.

형사과를 나와서 대체 뭘 해야 하는지 모른 채 향한 곳은 맞은편의 교통조사계. 견습 첫날이라고 말하는 내게 당직 조사관은 동작서 관할인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배달 오토바이가 술에 취해 행인을 친 교통사고에 대해 알려줬다. 내게는 첫 사건이었다.

익일 오전 7시 보고시간. 사건을 챙겼다는 만족감과 긴장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사고 개요를 보고하자 1진 선배로부터 질문세례가 쏟아졌다. 당시 오토바이의 속력부터, 면허 취소와 정지의 혈중 알코올 농도 기준, 운전자는 누구와 술을 왜 얼마나 마셨는지, 행인은 어디에 가던 중이었는지 등. 우물쭈물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자 다시 알아보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야, 넌 그게 안 궁금하디? 그래서 기사는 어떻게 쓰려고 그래?”

경기도 안성 금수원에 취재 지시를 받아 갔다가 타사 카메라에 찍힌 이후 인터뷰를 할 때도 '명당'이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됐다. 치열한 자리싸움의 틈에서 명당은 인터뷰이의 정면이다. 눈을 마주치며 질문하기도 쉽고 카메라에 얼굴이 나올 염려도 없기 때문이다.

‘술을 왜 마셨는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선배가 한 말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나는 폭행과 상해, 무전취식, 사기, 방화가 매일 일어나는 세계에 내동댕이쳐졌다. 그 세계는 사건이 난무하지만 형사들의 입을 빌자면, “평화로운” 곳이었다.

“네가 내발산동 재력가 살해사건 범인 검거 브리핑 챙겨라.”

6월 27일 오전 선배로부터 취재 지시를 받았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속칭 서울시의원 살인교사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는 첫 순간이었다. 김형식 서울시의원이 친구 팽모씨에게 자신이 5억원대 빚을 진 재력가 송모씨를 죽이도록 지시한 사건이다. 몸의 일부나 다름없는 수첩과 펜, 노트북을 들고 강서경찰서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경찰서에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건 브리핑은 사건을 담당한 과장이 30분 정도 보도자료의 사건 개요를 읊은 이후 기자들의 질의응답 순서로 이어진다. 기사는 단순히 보도자료만으로 쓰여지지 않는다. 뉴스를 읽는 독자들을 대신하는 기자들의 질문을 통해 경찰이 밝히고자 했던 것 이상의 사실들이 밝혀진다.

팽씨의 국적부터 시작해 질문세례를 퍼붓는 기자들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멈칫했다간 질문을 할 기회를 빼앗기고 만다. 비록 견습기자이지만 이 순간엔 한국일보를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내가 궁금한 것’을 물었다.

“김 의원이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는 것으로 아는데 살인교사 혐의를 적용한 근거가 뭔가요?”(글로 쓰니 또박또박 말한 것으로 보이지만 부끄럽게도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기대 이상의 대답이 돌아왔다. “김 의원이 ‘잡히면 죽어라’라고 지시하는 등 팽씨의 일관된 진술들이 있습니다.” 살인교사 정황을 보여주는 이 멘트는 처음 나온 것으로, 당연히 기사화됐다. ‘아, 이래서 기자는 항상 궁금한 게 있어야 하는구나.’

경찰서 형사, 강력, 지능 등등 각 부서를 돌아다니며 받은 음료수들. 경찰서를 돌아다니다보면 먹을 복뿐 아니라 마실 복도 생긴다. 경찰서에서 가장 흔하게 권하는 믹스 커피를 연속 다섯잔을 마신 후 각성상태로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래도 힘내라고 쥐어주는 드링크제, 인삼음료, 비타민을 건네 받으면 다음 경찰서로 향하는 걸음이 씩씩해진다.

“오늘도 평화롭습니다.”

강서서 파견기간이라고 관할구역을 도는 ‘마와리’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궁금증의 가치를 느끼게 된 이상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절도 금액이 적거나 피해가 거의 없는 교통사고라도 허투루 넘길 수 없었다. 어떤 사고라도 똑같은 양의 ‘궁금함’이 필요하다고 확신하게 됐다.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오늘도 나는 고시원에서 설거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어진 상해사건, 돈을 못 번다고 놀리는 데 격분해 일어난 재물손괴사건, 택시 승차거부로 인한 폭행사건이 일어나는 ‘평화로운 세계’를 누빈다. [견습 수첩]

전혼잎기자 hoi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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