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엔 車도 없이 미술작품 배치

'전시장=럭셔리' 관념 뒤집고 내부벽엔 파이프ㆍ강판 자재 사용

개관 두 달 만에 3만5000명 인파, '브랜드 체험관' 새 명소로 자리

설계자 서을호 서아키텍스 대표, "진정한 혁신은 인식을 바꾸는 것"

현대 모터스튜디오에서 만난 설계자 서을호 서아키텍스 대표. 현대자동차 제공
서울 강남구 논현동 현대 모터스튜디오에서 관람객들이 전시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현대자동차 제공

수입차들의 각축장인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사거리에 5월 9일 개관한 현대 모터스튜디오를 수시로 찾는 남자가 있다. 설계자인 서을호(50) ㈜서아키텍스 대표다. 그는 관람객인척 1층부터 5층을 두루 다니며 전시물 상태를 살피고 관객 반응을 꼼꼼히 체크한다.

지난 21일 모터스튜디오에서 만난 서 대표는 “사후 점검이 계약조건에 있는 건 아니지만 국내 최초 자동차 브랜드 체험관 설계자의 의무감 때문”이라며 “여기서 보니까 현대자동차가 너무 멋있다는 관람객의 말을 듣고 가슴이 뭉클했다”며 웃었다.

해외 고급차들의 휘황찬란한 전시장과 달리 모터스튜디오는 가장 주목도가 높은 1층에 차가 한 대도 없고, 마치 미술관처럼 해외 유명 작가의 작품을 배치했다.

3~5층 내부 벽과 천장에는 전기 배선용 파이프와 인산염 처리를 한 강판이 그대로 노출돼 있다. 실내에 들어간 파이프 길이는 36㎞, 강판 면적은 700㎡나 된다. 쇳물→철판→자동차→고철 재활용으로 이어지는 자원순환 개념을 표현한 것으로, 파이프와 강판을 실내 자재로 사용한 것은 모터스튜디오가 처음이다. 고급스러워도 모자랄 판에 날 것 그대로의 재료로 자동차 전시공간을 채운 것은 설계자나 현대차에게나 파격이었다.

2012년 12월 말 설계에 착수한 서 대표는 “사실 현대차가 퇴짜 놓을 것을 각오하고 이런 구상을 내밀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현대차 경영진 앞에서의 프리젠테이션이 끝난 뒤 침묵이 이어지자 서 대표의 뇌리에는 ‘안되겠구나’란 생각이 스쳤지만 경영진의 답변은 의외였다. “개념이 좋은데요.” 그들은 오히려 한발 더 나아갔다. “벽에 그려 놓은 현대차 간판도 뗍시다.”

이렇게 해서 현대차 간판도 달지 않은 국내 완성차 업계 최초의 브랜드 체험관이 세워졌다. 서 대표는 “보수적일 거란 선입견이 있었는데 너무나 열려 있는 마인드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새로운 개념의 모터스튜디오는 단기간에 강남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하루 평균 460명, 주말과 휴일에는 1,000명 가까이 몰리며 개관 두 달 만에 3만5,000여 명이 다녀갔다. 건물 연면적이 3,100㎡(약 940평)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인파다.

관람객들의 눈길은 3층에서 5층까지 3개 층 창가에 매달려 회전하는 9대의 신형 제네시스에 많이 쏠렸다. ‘차 밑바닥까지 자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현대차를 위해 서 대표는 차를 수평으로 들어올려 360도 회전시킬 수 있는 일종의 전시작품 ‘카 로테이터(Car Rotator)’를 고안했다. 모터스튜디오는 25일 이런 서 대표를 초빙해 관람객들이 디자인 개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 동안 국내에는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 찾아가야 하는 모터쇼 외에는 다양한 차종을 한 곳에서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 없었다. 물론 자동차 대리점들이 곳곳에 있지만 구매를 권유하는 세일즈맨이 부담스러워 선뜻 발길이 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현대차는 모터스튜디오를 통해 차를 라이프 스타일의 하나로 여기는 고객들이 많다는 것을 실감하고 올 하반기 러시아 모스크바에도 브랜드 체험관을 만드는 등 향후 국내외 주요지역으로 체험관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서 대표는 “진정한 혁신은 인식을 바꾸는 것”이라며 “현대차가 자동차를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닌 문화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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