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마와리(차례대로 방문하다는 뜻의 일본어)를 하다 보면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보게 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경찰서에는 선하고 밝은 사람보다는 술에 취해 범죄를 저지르고 일반 사람들의 상식으로선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직접 보면서 내가 얼마나 좁은 세상에서 살아왔는지를 깨닫는다.

마와리 첫 달, 관할 지구대를 돌면서 난 꽤나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지구대에 도착하자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이 폭행 사건에 연루돼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술에 취한 20대 초반 아들이 아버지를 때리고 욕설을 하면서 처벌을 해달라며 난동을 부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때려 너무 아프니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할 말을 잃고 있던 아버지는 아들이 잠깐 자리를 비우자 아들을 한 번만 봐달라며 경찰에게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부탁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아들이, 저런 아버지한테.’ 아들은 지구대에서 경찰서로 이송돼 술이 깬 뒤에야 진정이 됐다. 두 시간 넘게 지켜본 패륜적인 상황은 며칠 후 단독 기사화됐다. 나 혼자 목격하고 글로 옮긴 첫 번째 사건이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만큼 열악한 서대문경찰서 기자실. 더러움과 피곤함에 뒤섞여 난 여기서 한 달을 보냈다. 단언컨대 내가 살아오면서 지낸 가장 더러운 곳이다.

경찰서 로비에는 사람들의 사연이 가득하다. 로비에 앉아 있는 한 중년 여성에게 무턱대고 말을 붙인 적이 있다. 한국일보 기자라고 소개하고 여기에 무슨 일로 왔는지 물었다. 혹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다 해달라고도 했다.

아주머니는 남편이 유치장에 입감돼 면회를 왔다고 했다. 경찰기자라면 당연히 그 남편의 사건, 그 범죄에 집중을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아줌마가 들려주는 자신의 기구한 인생 얘기에서 더 빠져들었다. 그녀는 스무 살 때부터 정신장애를 앓아왔고 그 이유로 전 남편에게 이혼을 당했다. 하나뿐인 딸은 100일이 채 안 됐을 때 노르웨이로 입양을 보내야 했다. 이제 좀 행복해지려나 했더니 남편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러 경찰서에 붙잡혀 있다. 아줌마의 사연이나 그 남편의 범죄가 기사화되진 않았다. 하지만 “노르웨이에도 한국일보가 가느냐”는 물음에서 느껴지는 딸에 대한 모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경찰서에서 보고 들은 사연들은 경찰들과 대화하는 데도 좋은 소재가 된다. 하지만 내게는 별난 사람, 별난 사건들이 경찰들에겐 전혀 대수롭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내 좁은 시야와 얕은 사회 경험을 절감할 때면 경찰들은 날 격려하고 응원해준다. 그러면서 먹을 거라도 하나 더 쥐어준다. 난 사건 복은 없지만 먹을 복은 있는 것 같다.

처음 배치 받은 영등포라인, 그 중에서도 양천경찰서는 내가 처음 문을 두드린 곳이다. 라인이 바뀐다는 소식에 유달리 아쉬움이 컸다. 그곳에서의 마지막 밤은 친했던 형사들과 함께 떡볶이와 김밥을 시켜먹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사실 보고 시간이 다가오면 야식보다 사건이 더 급하다. 지금 고백하지만 보고거리가 없어 선배한테 혼날 것을 각오하고 경찰들과 치킨 족발 떡볶이 김밥 등으로 출출한 배를 채운 적이 셀 수도 없다.

누군가는 야식으로 배 채우다 사건을 놓치는 것보다 배고픈 단독기자가 되겠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사건은 못 챙겼지만 사람은 챙겼지 않나. 견습기자로 경찰서 마와리를 돌지 않으면 언제 이런 다양한 사람들과 닭다리를 뜯을까. [견습수첩]

권재희기자 luden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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