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7일 내 이름 앞에는 한국일보 견습 72기라는 호칭이 붙었다. 이날 이후 그토록 즐겨 듣던 음악은 택시 안 라디오 방송에서만 들을 수 있었다. 경찰서를 새벽, 아침, 점심, 저녁, 늦은 밤까지 돌아야 하는 내 생활을 노래로 표현하자면 전인권의 ‘돌고, 돌고, 돌고’다. 내 견습생활의 ‘노동요’를 소개하려 한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내 입은 허스키한 목소리의 “돌고”를 되뇌고 있다.

● 짧은 하루에 몇 번씩 같은 자리를 맴돌다 때론 어려운 시련에 나의 갈 곳을 잃어가고 (황규영 ‘나는 문제 없어’)

입사 닷새 째. 그토록 달콤하던(지금에야 든 생각이지만) 사내 교육은 끝나고 나는 강남경찰서와 서초경찰서가 있는 ‘강남1 라인’에 배치됐다. 이들 경찰서 소속 지구대와 파출소도 15곳도 모두 내 담당이었다. 17곳을 나는 쳇바퀴 속 다람쥐처럼 ‘하루에 몇 번씩 같은 자리를 맴돌’아야 했다.

견습기자는 오전 7시 첫 보고에서 다음날 오전 2시 마지막 보고까지 라인에 있는 경찰서를 챙긴다. 오전 7시 보고를 위해서는 두세 시간 전에 일어나야 하고, 오전 2시 보고가 끝나도 보충 취재로 바로 잠을 잘 수 없다. 부족한 수면시간에 익숙지 않은 공간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같은 자리’를 맴돈다. 정신 없이 경찰서와 지구대 등을 돌다 보면 어느새 ‘짧은 하루’가 완성된다. 경찰서 형사팀 유리문 안쪽에서는 분명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누구에게도 확인할 수 없는 ‘시련’에 직면할 때 ‘나의 갈 곳을 잃어가는’, 다소 더러운 기분이 들면 참기 힘들어진다.

장관후보자 검증을 위해 정치부에 파견되었을 때 발급받은 국회 취재증. '한국일보'와 내 이름을 같이 쓸 수 있다는 것을 국가가 증명해줬다.

●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이소라 ‘바람이 분다’)

‘시간은 흐르고 있는데 (내 수첩 속) 세상은 어제와 같다.’ 오전 2시 마지막 보고시간 직전, 아무 것도 새로운 것이 적혀있지 않은 수첩을 볼 때면 이 노래가 들리는 것 같다. 경찰서에 왔다가 돌아가거나 돌아가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는데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가 들고 견디기 어려웠다. 경찰서를 오가는 택시 속에서 기자 명함을 꺼내 들고 한참을 생각했다. 과연 내가 기자에 적합한 사람인지. 책상 앞에서 지내온 20년을, 지금도 책상 앞에 앉아있을 친구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던 5월 28일 오전 11시 1진 선배의 급박한 전화가 왔다. “도곡역! 화재!” 택시를 잡는 내 뒤에서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저 소방차보다 빨리 가주세요. 목적지는 아마 같을 겁니다.” 도곡역에 도착했을 때 이미 경찰은 역 출입구를 모두 막은 상태였고, 소방지휘차 상황판에는 ‘방화추정’과 부상자 1명이 모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잠시 후 ‘방화추정’은 ‘조사 중’으로 바뀌었고, 이송자 내역은 지워졌다. 수상했다. 동기에게 현장을 부탁하고 병원으로 뛰어갔다. 응급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쪽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긴급 체포합니다.” 처음으로 방화범의 얼굴을 확인한 기자가 됐다. 부상 여부를 확인하고 경찰로 이송되는 용의자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었다고.’

새벽 두 시 마지막 보고를 앞두고 구로경찰서 앞 계단에 앉아 잠시 휴식.

● 내 마음 깊이 초라한 모습으로 힘없이 서있는 나를 안아주고 싶어

(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영등포 라인(영등포, 구로, 양천, 강서경찰서)을 돌고 있을 때 큰 일이 터졌다. 이른바 시의원 살인교사 사건이었다. 막막하기만 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사건에 접근해야 하는지, 단 한 개라도 새로운 팩트를 찾을 수 있을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뻗치기를 시작했다. 강서경찰서 형사과장 사무실과 강력팀 사무실을 잇는 계단 위에 앉아있기도 했고, 한밤중이 될 때까지 담당 팀 사무실 벽에 기대 귀를 쫑긋 세우고 내부 분위기를 읽으려고 했다. 왔다갔다하는 형사에게 말도 붙여보고, 담배 피우는 형사 옆에서 같이 담배를 피웠다.

피의자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인천으로 가서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찾아 만나야 했다. 또 다른 피의자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동 호수도 모르는 아파트 단지를 헤매기도 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심정으로 돌아다니다가 누군가를 만나서 한 마디라도 들은 날은 그래도 나은 날이었다.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한 날, 2진 기자실로 복귀해서 이미 코를 골며 자고 있는 타사 수습들 사이에 비집고 누워 견습기자 생활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나에게 쓰는 편지’를 들으며 나를 위로했다. ‘초라한 모습으로 힘없이 서있는 나를 안아 주고 싶었기에’

검찰과의 대결을 선포하는 성명서 발표를 끝내고 떼어냈던 현수막을 다시 달고 있는 구원파 신도들. 지면에 실린 첫 번째 바이라인은 이 곳에서 탄생했다.

● 이제는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닌, 다시 처음이라오

(김현식 ‘다시 처음이라오’)

한국일보에 입사한 지 어느새 석 달째. 그 동안 수많은 일들이 신문 지상을 장식했다. 직접 취재에 나선 일만 해도 세월호 유족 관련 안산 파견, 금수원 기자회견 파견, 도곡역 지하철 방화사건, 월드컵 응원 취재, 총리 및 장관후보자 검증 파견, 강서구 A고등학교 체벌 사건, 시의원 살인교사 사건이 있다. 이외에도 고양터미널 화재, 장성 요양병원 화재, 세월호 관련 진도 현장 취재 등 수많은 사건들이 우리 한국일보 견습 72기를 감싸고 있었고, 우리는 우리를 감싸고 있는 사건들을 조금이라도 파고 들고자 노력했다. 이 경험들은 우리에게 추억과 자산이 될 것이다.

견습기간이 얼마나 남았는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친구들이 던지는 “언제쯤 술 좀 편하게 마실 수 있냐?”는 말에는 웃으며 농담처럼 “견습이 풀리거나, 퇴사하거나”라고 대답한다. 이 대답은 아직 내가 한 명의 기자가 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음 놓고 술을 마셔도 될 만큼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에는 난 아직 기자로서 완성되지 않았다. 견습을 떼고 정식 기자가 되더라도 언제나 ‘처음’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김현식은 이 노래에서 ‘이제는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닌, 다시 처음’이라고 말했다. 견습을 떼는 그 날은 기자 생활의 ‘시작도 아니고’ 견습 생활의 ‘끝도 아닌’, 언제나 ‘다시 처음’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 수많은 날들 중 하나일 것이다. [견습수첩]

김진욱기자 kimjinu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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