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 알리지 말라"던 삼풍… "가만히 있으라"던 세월호와 판박이

하중 무시하고 옥상에 200톤 냉각탑

식당 바닥 기울고 천정 눗수에도

"고객들 모르게…" 감추기에만 급급

경영진은 대책회의 하다 줄행랑

턱없는 솜방망이 처벌로 마무리

세월호 선장 등 살인죄 적용 주목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한국일보 자료사진

1995년 6월29일 오후. 매출액 기준 업계 1위이자 강남 부유층이 주 고객이었던 고급 백화점답지 않게 삼풍백화점 내부는 찜통처럼 더웠다. 한여름이었지만 오후 2시부터 냉방 시스템은 아예 작동하지 않았고, ‘에어컨이 고장 나서 수리 중’이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에어컨 가동이 멈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날 오전부터 백화점 건물 옥상에 균열이 나타나 바닥 곳곳이 파도 치듯 솟아 올랐다. 균열 크기는 지름 20㎝에 달했다. 하중 계산도 하지 않고 건물 옥상에 무단으로 설치한 200톤짜리 에어컨 냉각탑 때문이었다.

균열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백화점 경영진은 냉각탑 안에 물을 빼야 했고,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을 껐다. 하지만 당시 백화점 안에 있던 수천명의 고객과 판매 직원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안내방송만 믿고 쇼핑을 계속 하거나 자기 자리를 지켰다.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만 하고 470여명의 승객을 배에 남긴 채 먼저 탈출한 세월호 선원들처럼 삼풍백화점 경영진들도 ‘건물 균열이 시작된 사실을 고객들에게 절대로 알리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린 채 대책회의만 하다 붕괴 직전 자기들만 백화점을 빠져 나갔다. 10여분 뒤, 지어진 지 5년밖에 안 된 삼풍백화점은 허망하게 무너졌고 502명이 목숨을 잃었다.

오전 8시 균열 확인했지만 정상영업

사고 전날인 28일 밤 야간순찰을 돌던 경비원이 백화점 5층 식당가 전주비빔밥집(미전) 바닥에서 폭 1m, 깊이 20㎝의 함몰 흔적을 발견하고 다음달 오전 8시 시설관리직원에게 알렸다. 붕괴 조짐은 이후 여기저기서 발견됐다. 5층 옥상 바닥은 군데군데 솟아 올랐고, 식당가 바닥은 경사가 5도 가량 생겨 테이블까지 같이 기울었다. 천장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는가 하면 주방조리대가 넘어져 밥을 먹던 손님들이 자리를 피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경영진은 이 같은 상황을 보고 받고도 숨기기에만 급급했다. 언론과 고객들에게 사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보안을 철저히 유지하고, 균열이 발생한 현장 출입을 통제하라고 지시했다.

오후 2시 이준 삼풍건설산업(삼풍백화점 모기업) 회장 등 임원 11명이 참석한 대책회의가 백화점 3층 회의실에서 열렸고, 시설부에 신속한 보수공사를 지시한 뒤 정상영업을 강행하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고객 대피지시는 없었다.

하지만 잘못된 설계, 부실시공, 무자격자에 의한 감리, 무리한 매장증설과 증축, 무단 용도변경 등 부실 건물의 모든 요건을 갖춘 백화점은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오후 5시40분 현장을 점검하던 이영철 시설부장이 대책회의장에 전화를 걸어 “붕괴가 진행되는 것 같다”고 하자 경영진들은 황급히 백화점을 빠져 나갔다. 이후 12분쯤 뒤 비상사이렌이 울렸고, 백화점 안에 있던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뛰기 시작했다. 대피로나 비상출구 등 건물구조에 익숙한 경영진들은 빠른 속도로 백화점을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고객들은 어둠 속에서 우왕좌왕하다 최후를 맞이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생존자가 구조되는 모습한국일보 자료사진

수익과 목숨 맞바꾼 삼풍백화점과 세월호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도 크고 작은 위험 징조를 무시했던 게 일상이었다. 침몰 사고 당시 최대 적재 화물량의 3배가 넘는 많은 화물을 실었고, 배가 균형을 잡는 데 필수적인 평형수는 적재 기준보다 1,000톤 가량 적게 실었다. 구속된 세월호 1등 항해사는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 물류팀장에게 “배가 가라 앉을 수 있으니 화물을 그만 실으라고 수 차례 경고했지만 묵살당했다”고 진술했다. 눈 앞의 수익을 위해 위험천만한 화물 과적을 일상적으로 해 온 것이다.

지난해 3월15일 인천~제주간 뱃길 운항을 처음 시작한 세월호는 사고 당일까지 총 241회 운항했으며 이 가운데 과적 운항이 139회에 달했다. 그 결과 얻은 초과 수익은 22억6,000만원. 사고 당일에도 기준보다 3배 많은 화물을 실어 6,200만원의 추가 수익을 올렸다. 하루 매출 수억원에 집착한 삼풍백화점 경영진이 위험 징조에도 영업을 강행해 참사를 부른 것처럼 세월호 역시 6,200만원과 302명의 승객 목숨을 맞바꾼 셈이 됐다.

그들은 어떤 책임을 졌나

건물이 붕괴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고객들만 남긴 채 먼저 대피한 삼풍백화점 경영진의 행위는 살인에 가까웠지만 실제 이들은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았다. 이준 회장 등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기소하기 위해서는 이 회장이 ‘건물이 곧 붕괴될 것 같다. 고객들을 대피시켜야 한다’는 보고를 받은 사실을 입증해야 했지만 이를 증언할 유일한 사람인 이영철 시설부장이 참사 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업무상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기소돼 7년6월의 형을 선고 받았다. 삼풍백화점 시설이사였던 이영길씨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 등으로 금고 2년, 백화점 설계 및 구조계산을 맡은 건축설계사 임형재씨는 금고 3년, 기초공사를 맡은 우성건설 건축주임 정순조씨와 삼풍건설 현장소장 이평구씨는 각각 금고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부실시공과 더불어 붕괴 징후를 알고도 고객들을 대피시키지 않아 502명의 희생자를 낸 책임을 묻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19년 뒤 상황은 좀 진전됐다. 승객만 남기고 먼저 탈출한 이준석 세월호 선장을 비롯한 선원 4명이 살인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이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승객들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선장과 선원들이 ‘내 알바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탈출했고, ‘배에서 나오라’는 말을 할 정도의 시간이 충분했는데도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검찰이 입증만 잘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본인이 구조된 것처럼 다른 승객들도 구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라면 (살인죄 적용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밝혔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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