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사정당국 책임자였던 이에게서 전해 들은 얘기다. "사정업무를 담당할 때 늘 정치인들의 평가보고를 받았다. 이후 국회에 가서도 동료의원의 발언내용은 안 들리고 그때 읽었던 그의 형편없는 인물평가만 떠올려지더라." 다른 원로정객의 얘기도 비슷하다. "정보당국이 올린 내 정보를 우연히 봤는데 말도 안 되는 엉터리 내용들이 즐비해 실소만 나오더라. 그런데 희한한 게 그때 봤던 다른 사람에 대한 정보는 사실로 믿게 될뿐더러, 두고두고 머리에 남아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더라"는 것이다.

진위에 상관없이 비공식 정보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나, 뭐 특별한 일도 아니다. 대개 사람들이란 널리 아는 공개정보보다 비공식 경로를 통한 은밀한 얘기에 더 솔깃해하는 법이니까. 여전히 떠도는 천안함 음모론이나 나꼼수 열풍도 이런 심리에 기댄 것이다. 또 잘못된 정보라도 처음 들었을 때 '에이, 설마'했던 의심의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사라지고, 나중엔 정보의 내용만 남아 사실처럼 기억된다는 것이 여러 학문적 실험의 결과다.

이럴진대 사찰정보의 위험성은 시중의 헛소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소문은 널리 회자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여과과정을 거치는 데 반해 사찰정보는 그럴 기회가 없다. 워낙 드러낼 일이 못 되므로 권력자가 맘 놓고 믿을 만한 소수에 의해 은밀하게 이뤄지는 속성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가급적 권력자의 취향과 입맛에 맞게 정보가 선별 가공되면서 왜곡이 일어날 개연성이 훨씬 더 커지게 된다.

이런 정보에 의한 인사나 정책이 현실을 정확히 반영할 리 없고. 이로 인한 민심의 이탈은 다시 잘못된 정보분석과 해법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게 사찰정치의 악순환 구조다. 그럼에도 충성심 드높은 소수 친위그룹의 정보생산을 제어할 세력은 주변 어디에도 없다. "내가 몸통"이라며 국민에게 눈을 부라린 이영호 전 청와대 비서관의 방자한 태도가 이런 구조의 반영일 터다. 현 정부의 유난스러운 여론 오독과 불소통 역시 이 악순환 구조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사실 이런 장황한 논의도 바탕에는 은연중 사찰행위를 그럴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깔려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문제가 뜬금없는 정치게임 양상으로 변질되면서 자칫 쉽게들 망각하는 것이 사찰의 범죄성이다. 공직기강 확립 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를 벗어나는 모든 사찰은 명백한 범죄다. 사찰행위 자체는 국민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허물고 불가침의 인권을 침해한 반헌법적 범죄이며, 사찰수단인 도청 미행 등은 고스란히 형법 위반이다.

이런 엄청난 죄를 짓고도 국민을 앞에 두고 "너희도 했지 않느냐?"며 당당하게 기를 세우는 건 뻔뻔스러운 일이다. 마치 절도범이 형사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왜 나한테만 죄를 묻느냐"고 형평성을 따져가며 대드는 격이다. 사회에 똑같은 절도범들이 많으므로 나만 처벌받는 건 부당하다는 기막힌 법인식이다.

현 정권이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스스로의 범죄행위를 치열하게 반성하고 합당한 처벌과 대가를 군말 없이 감수하는 것이다. 죄인이라면 누구든 잡아들여 단죄하는 건 마땅하나, 적어도 중죄를 짓고도 반성조차 없는 당사자가 할 말은 아니다. 더욱이 지금껏 드러난 내용만을 봐서는 죄질을 동일선상에 놓고 볼 만한 것도 아니다. 이전 정권들이 과거의 편의적 통치관행을 답습한 것과, 촛불의 홍역을 치른 뒤끝에 아예 목표와 방향을 작심한 듯한 현 정권의 행위와는 분명 차이가 있어 보인다.

사찰은 정적이나 비판세력의 내밀한 모습을 들여다보고 쉽게 제압할 수단을 갖게 해준다는 점에서 권력자에겐 뿌리치기 힘든 달콤한 유혹이지만, 결국은 그 본질적 속성으로 인해 반드시 치명적 해악으로 돌아오는 독배다. 무엇보다 범죄행위를 정치나 정책행위 같은 상투적 시비의 대상으로 만들어 상황을 돌파하려 드는 현 정권의 법적 무감각이 무섭고 암담하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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