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5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칼텍(CIT) 캠퍼스에서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과 이 대학 부총장이 마주 앉았다. “칼텍 같은 대학을 한국에 만들려 한다. 조언을 부탁한다." 부총장의 기가 찬 듯한 조소에 박태준이 못을 박았다. “한국은 더 늦기 전에 과학ㆍ공학 발전의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1세기를 내다보고 원대한 계획에 아낌없이 투자할 생각이다.” 부총장은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국내 유수의 대학들도 우물 안에서 저들끼리 고만고만한 키 재기 경쟁에나 몰두해있던 시절이다. 나라 밖 대학과의 비교는 아예 머리 속에도 없었다. 더욱이 교육은 당장 회수 가능하지 않은, 불투명한 미래에 거는 투자다. 이제 갓 빈곤을 벗어난 한국에서 칼텍, MIT 같은 대학을 그 말고 어느 누가 꿈조차 꿀 수 있었을까.

그 시대에 21세기를 꿈꾼 박태준

당시 포항제철은 광양제철소 건설 등으로 여유를 부릴 자금 형편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세계 최고의 교수진, 50만평 대학부지, 최첨단 연구시설에 수천억 원의 기업자금을 아낌없이 쏟아 넣었다. 이미 논문의 질에서 도쿄대를 앞질러 세계적 명문대 반열에 오른 오늘날의 포스텍이 그 무모한 꿈의 결실이다. 매년 1,000편 이상 쏟아져 나오는 연구성과들은 곧바로 미래산업의 경쟁력으로 전환된다. 정확히 그가 꿈꾸었던 모습이다.

많은 이들이 쉽게 말한다. 포스코의 성공은 박정희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때문이라고. 또한 포스코는 ‘그(박태준)’가 아닌, ‘그들(피땀 흘린 근로자들)’이 함께 이룬 것이라고.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전적으로 동의하기도 어려운 얘기다. 뒤집어 묻자면 정부의 지원만으로 그만큼 성공한 기업이 또 있던가? 만약‘그들’만 있고 ‘그’가 없었어도 포스코의 성공이 가능했을까?

황량한 영일만의 모래바람 속 판자집 ‘롬멜하우스’에서 세계최고 제철소의 꿈을 키우던 그를 배제한 채 오직 외부조건과 시대적 요인만으로 포스코의 성공을 논하는 건 부당하다. 중국 덩사요핑의 제철소 건립 요구에 “중국엔 박태준이 없어 안 된다”던 신일본제철 회장이나, 한국의 제철소 건설에 회의적 보고서를 냈던 IBRD의 실무 책임자가 훗날 “보고서는 완벽했다. 다만 박태준의 존재를 몰랐던 것이 실수”라는 말이 그의 존재감을 한치 과장 없이 웅변한다.

영웅담은 위험하지만, 영웅담이 없는 사회는 쓸쓸하고 희망이 없다. 1970년대를 전후한 시기는 가히 한국의 영웅시대였다. 세계 최빈국에서 자라나 빈 땅 사진 하나 달랑 들고 다니며 대형 유조선 건조를 수주하고, 공장 숙직실에 야전침대를 놓고 자면서 세계경영을 일구고, 아무 기술 없는 맨바닥에서 반도체에 운명을 걸며 산업화의 기초를 다진 그들이다. 그들의 영웅담을 듣고 자란 청소년들은 또 80, 90년대를 거치며 오늘의 경제대국을 만들어낸 작은 영웅들이 됐다. 박태준의 죽음은 시대를 앞선 거대한 상상력과 열정으로 이 땅의 모습을 영원히 바꾼 그들 낭만적 영웅시대의 종언을 의미한다.

영웅을 만들지 못하는 이 시대

박태준 등이 산업화 시대의 영웅들이었듯 시대에 따라 필요한 영웅의 상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후 우리에겐 영웅을 가져본 기억이 없다. 무엇보다 새로운 시대의 가치와 패러다임을 만들어내지 못한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시대는 변했으되 인식과 습관은 고스란히 예전에 그대로 갇혀있다.

세상의 한쪽은 여전히 산업화 시대의 향수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시대착오적 복고를 꿈꾸고, 또 한 부류는 과거를 온통 부수는데 매달리면서도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낼 능력은 없다. 모두가 박제된 과거를 붙들고 허구한날 부질없는 싸움질이나 해대고, 거기서 저마다 작은 이름과 이익이나 얻으려 드는 세태에서 멀리 미래를 보는 영웅이 태어나길 기대하는 건 애당초 무리일 것이다.

질긴 과거의 고리에 묶여 더 이상 영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 시대, 박태준의 부음은 그래서 더 안타깝고 허전하다.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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