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타운을 벗어난 미국 도시의 일반적인 주택가 모양은 대개 비슷하다. 마을 가운데 아스팔트 차도 양 옆으로 콘크리트 인도, 작은 잔디밭, 1~2층 주택, 좀 더 너른 뒷마당, 이런 식이다. 20세기 초 산업화와 도시화가 본격 진행되면서 형성된 이 기본구조는 크게 바뀐 게 없다. 노인들의 추억 속 삶과 아들, 손자가 지금 사는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다. 나이에 관계없이 삶의 경험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물려받은 가난에 전쟁의 참화까지 겪은, 그야말로 전무(全無)의 삶이 불과 50~60년 전 일이다. 지금의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까지 유례없는 발전속도는 시시각각 모든 걸 바꿨다. 서구 대부분은 물론, 저개발국가까지 포함해 이처럼 격렬한 변혁을 경험한 경우는 없다. 전쟁 이후 10년 단위로 매번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공통경험이 전혀 없는 세대들

삶의 환경과 조건의 현저한 차이는 세대별 가치와 인식도 판이하게 바꿔놓았다. 가히 존재방식의 총체적 변화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다소 과장한다면 한국의 현존 세대들은 같은 시ㆍ공간에서 숨쉬고 있어도 출생시기에 따라 매 10년 단위로 아무런 교집합이나 접점마저 없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셈이다.

보통 15~25세의 경험이 전 생애를 통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골판지와 깡통, 조각판자로 이은 판자촌 좁은 골목 흙 바닥에서 놀며 자란 부모와, 번듯한 아파트 촌에서 흙 한 번 제대로 묻혀보지 않고 성장한 자녀가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그뿐인가. 늘 어제보다 나은 오늘, 또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살아온 산업화 세대와 처음으로 퇴행과 상실의 고통을 겪은 IMF 이후 세대도 절대로 같을 수 없다. 반독재 민주화 같은 중후장대한 가치로 젊음을 보냈던 세대는 무한 생존경쟁 상황에 내몰린 요즘 젊은이들의 절박한 현실정서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당장 취업에 목맬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쪼잔하게…. 우리 땐 이상(理想)이 있었지"하는 말은 딱 약이나 올릴 만한 얘기다.

그러므로 한국의 모든 사회변동 요인 중에서 세대간 갈등은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핵심 문제다. 실제로 세대간 단절은 우리의 거의 모든 사회현상에 반영된다. 전에도 그랬지만 지난 4ㆍ27 재보선에서 세대별 투표성향 차이는 더욱 두드러졌다. 특히 분당 을에서는 50세를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 세대의 지지후보가 칼로 그은 듯 확연하게 갈렸다. 출신지역이나 학력, 소득수준 따위는 마이너요인으로 격하됐다.

격렬한 변화 속에서 전통적으로 가정과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권위의 근거가 돼온 나이도 의미를 잃었다. 과거 정체된 사회에서 세월에 의해 누적된 경험은 충분히 가치 있는 덕목이었다. 하다못해 집안에 못 하나를 박거나, 장작을 팰 때도 아버지의 손놀림은 서투르고 요령부득인 아들과는 확실히 달랐으니까. 그러나 경험이 가르쳐 줄 수 있는 것들은 이제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도리어 아이 입장에서 어른들은 새 전자제품이 나올 때마다 일일이 가르쳐줘야 하는 성가신 존재로 느끼게 됐다.

가정서부터 간극 좁히는 노력

현실에서 무력감을 느낀 아버지는 변치 않는 세상의 이치 따위로 짐짓 권위를 만회하려 애써보지만, 세상을 보는 인식이 아예 다른 자녀에겐 제 삶과 동떨어진 얘기로 들리기 십상이다. 우리사회에 시대마다 명망가들은 있었으되, 세대를 넘어 경륜을 청해 들을 만한 원로가 없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워낙 큰 태생적 차이에서 비롯된 만큼 근본적 해결방법은 사실상 없다. 성장배경이 전혀 다른 남녀가 만나 사랑을 키워갈 때처럼, 세대간 잦은 접촉과 대화를 통해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 공허하지만 그나마 유효한 방안이다. 이 간극을 좁히지 못하면 가뜩이나 사회통합이 미약한 우리 상황에서 세대 단절은 갈수록 감당키 힘든 갈등요인으로 확대될 것이다.

당장 부모와 자녀 간부터 시작할 일이다. 마침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연달아 든 '가정의 달'이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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