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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외눈박이 언론, 불신의 나라

입력
2010.05.2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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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6일자 여론조사는 충격적이었다. ‘천안함 조사결과를 믿느냐’는 질문에 25%가 ‘믿지 않는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무응답도 5%나 됐다. 안보정국으로 의중을 숨긴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임을 감안하면, 무려 30% 가까이가 조사결과를 불신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비난하고 중국조차 무작정 북한을 엄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 내부의 불신이 이렇게 깊다니! 충격을 넘어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누가, 무엇이 우리 사회에 불신의 골을 깊게 하는 것일까. 공안당국은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일부 세력 탓으로 돌리며 “철저히 단속해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하지만 학력이 높을수록, 나이가 젊을수록 불신이 컸고 화이트칼라에서 믿지 못한다는 응답이 상대적으로 더 많았다는 사실은 ‘때려잡자, 불순세력’이라는 공안 차원의 대처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천안함 이후 더 커진 정파성

세상 일이 다 그렇듯 이런 불신이 어느 한 쪽만의 책임일 수는 없다. 천안함 사태 초기에 말을 자주 바꾸며 뭔가를 숨기는 듯 보였던 군과 청와대도 그렇고, 과학적 근거도 없이 음모론에 매달린 야당이나 일부 시민단체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한국 언론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천안함 사태에서 드러난 한국 언론의 정파성은 가히 위험수준이며, 그런 극심한 정파성 속에서 우리 사회의 불신이 이 정도인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보수언론은 대북 압박만을 강조하고 전쟁불사론까지 서슴지 않지만,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초래한 후유증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 정부가 북한의 버릇을 고치겠다고 호언하면서도 대북 안보태세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초계함이 오히려 얻어맞은 현실, 지난해 7.8% 국방예산 증액을 요구한 이상희 전 국방장관이 3%면 충분하다는 장수만 국방차관에 밀려 경질된 사실 등은 다시 복기해야 함이 마땅한데 그런 내용은 보기 힘들다.

퍼주기 비난도 그렇다. 보수언론은 지난 10년 동안 북한에 퍼주기를 했다고 집요하게 비난해왔다. 그게 진실일까. 개성공단이 북한 전방부대를 후방으로 물리면서 세워졌고 금강산 관광사업으로 북한 최전방 해군기지인 장전ㆍ성전항의 군함들이 북쪽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은 아예 보려 하지 않는다. 개성공단을 통해 우리 기업들이 얻은 이득도 외면한다. 만약 우리가 전방부대를 일산으로 물리고 파주 땅을 북한에 내준다면 어쩌겠는가. 아마 난리가 날 것이다. 따라서 퍼주기가 아닌 주고받는 거래였고, 굳이 따지면 잘사는 남한이 조금 더 얹어준 정도였다. 특히 남북교역 중단 조치로 북이 10년 동안 남으로부터 번 2조~3조원을 이제 만져보지 못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한반도 리스크로 25일 하루에 증시에서 빠진 돈만 27조원이 됐다는 점은 어찌 볼 것인가.

진보언론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도발을 질타하고 추궁하는 데 무척 인색한 대신 대북화해 정책을 폐기한 현 정부의 과오에만 날을 세우고 있다. 특히 북한이 대북 포용정책을 견지했던 지난 두 정권의 선의를 악용해 끊임없이 약속을 위반하고 뒤로 핵개발에 열을 올렸던 부정직함에 너무 관대했다.

언론 자세 포기한 보도ㆍ논평

더욱 문제인 것은 보수, 진보언론 모두 자기 논조와 다른 주장을 하면 적대세력으로 몰아 몰매를 때리려 한다는 점이다. 이게 언론의 자세인지 의아스럽다. 대북전략도 정세와 상황에 따라 때론 화해를, 때론 봉쇄를 택할 수도 있다.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킨 대북 포용정책을 ‘좌파의 나라 팔아먹기’로 매도하거나, 북한이 어뢰 공격을 해 당장 극단의 대립구도가 조성된 상황에서 봉쇄전략을 ‘수구의 과거 회귀’로만 치부해서야 어찌 이성적인 해법이 나오겠는가. 이런 신문들만 남게 된다면 이 나라는 아마 외눈박이 세상이 될 것이다. 정말 걱정이다.

이영성 편집국 부국장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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