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이 4집 앨범 '필승' 첫 방송을 '별이 빛나는 밤에'서 할 정도로 '별밤'은 청소년들에게 영향력 있는 프로그램이었죠." (이문세)

1969년 3월부터 매일 밤 10시5분이면 어김없이 두 시간 동안 청취자 곁을 찾아오는 MBC FM '별이 빛나는 밤에'가 올해로 방송 40주년이 됐다.

별밤은 심야에 독서실에서 공부를 끝내고 돌아오는 청소년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쉼터이자, 함께 노는 친구 역할을 하며 인기를 누린 방송이다.

비단 청소년 뿐만 아니라, 올드 팬들에게도 기억에 아련한 청춘의 방송이다. 첫 진행자였던 오남열 아나운서 이후 차인태, 이종환, 조영남, 김기덕, 이수만, 이문세, 이적, 옥주현 등을 거쳐 지금의 21대 DJ 박경림까지 모두 22명(더블 DJ 포함)의 DJ가 거쳐갔다.

별밤의 14대 DJ였던 이문세는 85년~96년까지 장장 11년 8개월 동안 '별밤지기' 로 활동했다. 이문세가 마이크를 잡은 별밤은 높은 청취율로 최대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별밤, 그 40년의 기적' 특집방송을 위해 20일 밤 MBC 라디오 생방송 스튜디오를 찾은 이문세는 "감개무량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1만 회의 방송을 할 정도로 별밤을 오래 지킨 이문세는 뜻밖에도 처음 별밤지기 자리를 제안 받았을 때는 "시큰둥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저는 황인용씨가 진행하는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듣고 자랐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다지 기쁘지 않았어요. 그 당시 다른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다가 갑자기 별밤으로 가라고 해서 6개월만 할 생각을 했었죠."

떠밀리듯 진행을 맡았던 그는 점차 별밤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고 한다. "방송 다음날이면 중ㆍ고교에 '어제 별밤에 신승훈이 나와서 이문세랑 어떤 농담을 했는데' 이런 이야기가 쫙 퍼지는 거예요. 당시 TV보다 훨씬 컸던 별밤의 영향력이 무서우면서도 매력적이었죠."

별밤 안방마님으로 1년 3개월을 보내고 있는 박경림은 초등학생 때인 90년 별밤 공개방송에 갔다가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겪었던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당시 '입영열차 안에서'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가수 김민우가 출연하기로 한 공개방송은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행사가 취소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화가 나 행사장 안으로 밀고 들어가려 했고 그 와중에 박경림 위로 7,8명이 깔리는 '사고'가 발생한 것. "죽음의 공포를 체험했다"는 박경림은 그럼에도 청소년 캠프 '별밤 가족마을'에 참가하려고 수십장의 엽서를 보내는 등 별밤을 향한 애정을 멈출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박경림은 마침내 96년 일반인 장기자랑 대회인 '별밤 뽐내기 대회'를 통해 연예계에 데뷔했다.

"그 당시 별밤은 학력고사가 끝난 고3 학생들을 위해 모녀음악회, 부자음악회를 열 정도로 청소년들에게 친구같은 방송이었다"고 회고한 이문세는 "그때의 정서와 문화를 계속 갖고 있는 프로그램은 별밤이 유일한 것 같다"며 별밤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자부심을 보였다.

차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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