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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양심적 병역거부 유죄"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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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양심적 병역거부 유죄" 판결

입력
2004.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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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유죄를 재확인함에 따라 지난 5월 서울남부지법 이정렬 판사의 무죄선고를 계기로 시작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사법부 차원의 논란은 종지부를 찍게 됐다. 그러나 합의에 참여한 대법관 12인 중 5명이 반대의견 또는 보충의견을 통해 대체복무의 필요성을 인정해 사회적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재판부는 판결에서 우리의 분단 현실을 강조했다. 헌법상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 가운데 우리의 특수한 안보상황을 감안할 때 국방 의무에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그 전제로서 양심의 자유도 제한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헌법상의 기본권은 다른 헌법가치와 국가질서를 위태롭지 않게 하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하므로 양심의 자유도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국방의무에 대해선 "국가의 정치적 독립성과 영토의 완전성을 수호해 국가를 존립케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의무"라고 강조했다.

대법원의 이 같은 판결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안보위협과 군 복무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대체복무 인정을 반대하는 입장에 힘을 실어줄 전망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시대에 뒤진 보수적 판결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아 새로운 논란의 불씨로 작용할 수도 있다. 특히 반대의견을 낸 이강국 대법관 외에도 유지담·윤재식·배기원·김용담 대법관이 대체복무제의 필요성을 인정해 향후 정치권 일각의 대체복무제 도입 논의가 활발해질 전망이다. 이들 4명의 대법관은 "대체복무제 도입이 헌법적 의무는 아니지만, 형벌을 감수하며 종교적 양심을 지키려는 사람에게 무조건 집총 병역의무를 강제하기보다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헌법재판소가 이 달 말 병역법의 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릴 예정이어서 대체복무 입법화 등에 어떤 방향을 제시할 지 주목된다. 헌재는 2002년 1월 서울남부지법 박시환(현 변호사) 판사가 병역법이 양심의 자유와 병역의무를 조화시킬 수 있는 대체수단을 마련하지 않아 위헌소지가 있다며 제청한 사건을 심리중이다. 대법원이 종교나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병역법이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면, 헌재는 이 법률조항 자체의 위헌여부를 가린다. 헌재가 위헌취지로 판단하면 병역법 개정을 통한 대체복무의 길이 열리지만, 합헌 결정을 하면 대체복무 도입 움직임도 힘을 받기 어렵게 될 것이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진보 "인권시계 후퇴"… 보수 "병역 신성함 확인"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자 시민·사회단체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첫 무죄선고를 내린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이정렬 판사는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반면 보수단체는 "병역의무의 신성함을 다시 한번 각인 시켜줬다"며 이번 판결을 환영했다.

'양심적병역거부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최정민 공동집행위원장은 "소수의견이 나왔다는 데 의의를 찾는다"며 "하지만 판결의 취지가 '병역거부자의 양심은 제한 받아도 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인권의 시계를 뒤로 돌린 판결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최 위원장은 "이번 판결이 양심적 병역거부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관련 법률 입법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장주영 사무총장은 "양심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판결"이라고, 대한변호사협회 김갑배 이사는 "사법적극주의 관점에서 대체복무제에 대한 방향을 설정해주길 기대했으나 미흡했다"고 대법원의 판결을 비판했다.

무죄선고의 주인공인 이 판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75%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유죄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대법원도 쉽게 무죄를 내릴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이 판사는 "직업윤리상 대법원의 판결을 따라야 하는데 개인적 판단과는 달라 앞으로 판결에 있어서는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해 대법원 판결을 전적으로 따르지는 않을 것이란 점을 시사했다. 그는 또 "올해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판결에 한 획을 긋는 한해였고 10∼20년 후에는 또 다른 판결이 나올 거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자유총연맹 재향군인회 등 보수단체들은 이날 일제히 성명을 내고 "양심적 병역거부 불인정은 당연하다"면서 "병역의무는 국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부여되는 국가방위에 대한 의무이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근간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최영윤기자daln6p@hk.co.kr

■ 양심적 병역거부

종교나 양심을 이유로 집총(執銃)이나 병역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통상의 병역기피와는 다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대부분 국기에 대한 경례와 수혈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다. 이처럼 총 대신 감옥을 선택하는 사람은 매년 700여명에 달하며, 올 2월 현재 521명이 수감 중이다. 이들은 군 형법상 항명죄로 처벌되다가 2001년 후반부터 병역법 위반죄로 처벌 받고 있다. 법원은 이들에게 병역법상 병역면제 기준인 징역 1년6월 정도를 선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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