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에로 비디오만이 성인문화 배출구인가(시대와 문화)

알림

에로 비디오만이 성인문화 배출구인가(시대와 문화)

입력
1996.12.20 00:00
0 0

◎성의 공개화 물결타고 ‘젖소부인’ 시리즈 등 올해도 150편 봇물/그러나 졸속제작… 낮은 완성도… 욕망의 비상구도 좋지만/바람난 영상문화 외엔 대안은 없는 것일까페미니스트들은 『포르노가 이론이라면 강간은 그 실천』이라고 비난했다.

그렇다면 에로 영화는. 포르노의 맛보기 혹은 성인문화의 하수구쯤 될까.

에로에 대한 정의야 어찌됐든 한국의 에로 비디오영화는 코믹화라는 기묘한 옷을 입고 안방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엄청난 소비시장은 재생산을 부추긴다. 덩달아 텔레비젼 영화의 에로틱 분위기는 더해 가고 있다.

「에로의 코믹화, 멜로의 에로화」가 이 시대 성인대중문화의 두 얼굴이다. 인간의 본성과 상업주의가 모태인 에로 문화는 엄청난 번식력과 대중화의 가능성으로 늘 감시와 경계의 대상이 돼 왔다. 하지만 96년 말, 한국의 에로 문화는 번성기를 지나 막바지를 향해 마지막 불꽃을 피우고 있다.

「창작 극영화」. 공륜에서는 에로 비디오 영화를 이렇게 분류한다. 1년간 비디오로 출시되는 약 2,000편 이상의 작품 중 창작 극영화는 8∼10%. 만만치 않은 숫자다. 88년에 4편에 그쳤던 에로비디오는 90년 69편, 93년 87편으로 늘었고 올해에는 약 150편 정도로 추정된다.

최근의 가장 두드러진 경향은 코믹한 제목이 흥행의 전제조건이라는 점이다.

「젖소부인 바람났네」로 시작된 코믹한 제목 열풍은 「꽈배기 부인」 「만두부인」시리즈로 장마철 강물 불어나듯 했지만, 여성을 비하한다는 비난에 직면해 서리를 맞는 듯했다.

하지만 에로물의 생명력은 질기고 질기다. 「쌍코피 부부 난리났네」 「꽈배기 몸풀렸네」 「애들은 재웠수」 「어쭈구리」 「야리꾸리」 「한밤에 OK! OK!」 등은 의도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하면서도 심의를 교묘하게 빠져 나가는 능력을 과시했다.

비디오 프로덕션 관계자의 말. 『내용은 두번째다. 에로 비디오의 성패는 대리점 영업사원들 손에서 판가름 나는데 이들은 먼저 제목이 화끈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을 갖고 영업에 나선다』

에로물 시장의 쌍두마차로 이런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곳은 한시네마타운(대표 한지일)과 에로물 제작사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유호 프로덕션(대표 유호). 한시네마타운의 공전의 히트작 「젖소부인 바람났네」는 6편인 「젖소 바람났네」까지 출시됐다.

유호 프로덕션은 「꿀물」 「꿀통」 「꿀단지」 「야시장」에 이어 에로 영화로는 파격적 제작비인 8,000만∼1억원을 투입, 외국 배우를 캐스팅하고 프랑스 러시아 일본 등지서 해외로케한 「성애의 여행」시리즈를 내놓고 있다. 외국 시장으로의 수출 확대를 노린 것. 「구성은 탄탄한데 한국 여배우 몸매가 좋지 않다」는 외국 소비자들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다.

재미있는 점은 이 시장에서만은 대기업이 맥을 못추고 있다는 점이다. 우일영상, 씨네마트 등 대기업들은 「고급 에로영화」를 선언하며, 보통 제작비의 두배인 8,000만원을 제작비로 투입, 「샤넬 No.5」 「제복속의 정사」 등을 내놓았지만 판매 실적이 좋지 않았다. 이 시장에서 이들이 얻은 결론은 「화끈한 제목, 적은 투자」로 빠르게 시장에 대응하는 것이 흥행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대신 대기업들은 「옥보단지」 「옥보단2」 등 홍콩 에로물 수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또 미국이나 유럽의 35㎜ 영화 중 선정성이 강한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출시, 비디오 에로물에 맞불을 놓고 있다. 비디오 시장서의 폭력, 에로물의 시장 독점은 더욱 위세가 강해지고 있다.

에로 비디오영화의 확장은 영화나 텔레비전의 선정성에 면죄부를 부여한다. 비디오 제작자들은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이유」같은 극장영화가 비디오 영화보다 덜 선정적이냐』며 선정성에 대한 비난에 대꾸하고 있다.

「즐기는 성」에 대한 논의가 가열되고 성풍속이 개방화, 공개화하고 있는 시대 상황은 「성인 전용 문화」로서의 에로물을 옹호하고 있다. 에로 영화가 시장을 장악한 뒤로 불법 복제된 외국산 포르노가 자취를 감췄다. 결국 텔레비전이나 영화, 광고 등 제도권 문화가 부추기는 성에 대한 환상의 마지막 배출구로서의 에로 비디오의 의미는 평가절하하기 힘든 상황이다.

『작품성 없이 성공할 수 있겠느냐』 『억제됐던 성에 대한 관심이 에로 영화 인기로 표출된 것』이라고 유호씨나 한지일씨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들 에로 비디오영화의 성공은 진정 작품성에 있는 것일까.

일주일에서 10일 정도 만에 주로 콘도나 아파트에서, 그것도 한꺼번에 두편 씩까지 촬영되는 에로 영화들은 「전문가」의 눈을 빌지 않더라도 극장 영화들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이런 부분은 제작비 탓이라고 치더라도 대책 없이 계속되는 섹스는 거슬린다. 「젖소…」3편의 경우 강간당해 죽은 아내 때문에 괴로와 하는 남자의 고민 끝 선택은 무의미한 섹스 뿐이다. 포르노는 배우들이 섹스를 실연하고 성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에로 영화와 구분되는 요인. 극적 구성과 개연성 없는 섹스 장면은 성기만 안 나오지, 내용상 포르노와 딱히 구분하기도 어렵다. 「여성비하」는 이제 더 이상 거론키도 지겨울 정도로 비난받아온 부분.

하지만 좀 더 큰 문제는 성에 대한 환상의 배출구가 꼭 이런 식의 에로 비디오여야만 할까 하는 점이다. 좀 더 진지하고 대안적인 문화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는 것. 다만 현재 우리 대중 문화의 수준은 성에 대한 은밀한 환상을 전부 에로 비디오로 치환토록 방임하고 있다.

에로 비디오가 비난받아야 할 또 하나의 문제는 저예산의 B급 영화 시장의 다른 가능성을 봉쇄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9년 「다섯손가락」을 끝으로 예술영화의 모색이 끝나고, 이 시장을 전부 상업적 성공이 가능한 에로 비디오가 채웠다는 사실은 우리 영화의 빈곤한 미래를 이야기해준다.

전문가들은 에로비디오 시장이 2년 주기로 호불황이 온다고 보고 있다. 현재 제작편수가 줄어들면서 2년 호황의 끝이 오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에로 영화는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휴지기를 거쳐 또다시 불같이 일어날 것이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은밀한 엿보기의 욕구를 부추기기 때문에.<박은주 기자>

◎에로비디오 제작자 한지일씨/어른들이 볼건 다 보면서 에로물 탓하나…

「정사수표」 「젖소부인 바람났네」시리즈를 히트시켜 에로비디오계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한지일(49)씨. 그의 과거는 영화배우 「한소룡」이다. 현재 미국에서 「신 정사수표」를 촬영중인 그는 최근 인터넷에 「정사수표」시리즈 12편을 올리고, 미국 비디오 유통업계와 판권계약을 맺는 등 에로비디오 해외 수출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정사수표 12편에 모두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던 그는 『내 영화는 60년대 「자유부인」, 70년대 「애마부인」, 80년대 「빨간 앵두」 등의 맥을 잇는 전통의 에로영화』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결국에는 장편문예영화를 하는 것이 목표이며 에로비디오 제작은 이를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말했다.

―에로비디오를 시작한 동기는.

『길소뜸,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의 영화에 출연해서 호평을 얻었으나 이후에는 출연제의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영화는 계속하고 싶었으나 방법은 없고 해서 직접 영화사를 차리기로 한 것이다. 90년 「한시네마타운」을 설립, 「엄마 울지마」 등 가족영화를 만들었으나 모두 실패한 뒤 92년 「정사수표」가 히트했고, 이후에 총 130편을 찍었다. 장편 극영화를 찍는 것이 꿈이며 에로영화는 그 제작비를 마련하는 과정이다』

―목표한 만큼 돈을 벌었나.

『에로 한편 찍는데 진도희 급의 스타개런티 1,000만원을 포함해서 총 5,000만∼7,000만원 정도가 든다. 1만장 정도 나가면 2,000만원 정도 수익을 올린다. 가장 히트한 것이 1만8,000장 정도 팔렸지만 130편 중에는 한 700장 정도 나간 것도 있어 손해본 것도 많다』

―정사장면 등을 일부러 많이 넣거나 하지 않나.

『나는 에로물에서도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고 노력해온 사람이다. 「신 소녀진경」은 에로와 SF가 결합된 것이며, 이번 「신 정사수표」에서는 동서양 6개국의 여배우들이 등장하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영화로서의 완성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일부러 야한 장면을 넣지는 않는다』

―청소년들과 사회에 그릇된 성문화를 보급한다는 인식에 대해.

『볼건 다 보면서 그런 소리를 해선 안된다. 비디오대여점에서 내 영화의 대여 횟수를 비교해봐라. 어느 우수한 한국 영화에 비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많이 본다는 뜻이다. 청소년들에게 그런걸 보게 내버려 두는 어른들이 잘못하는 것이다. 나도 열여덟살 된 아들이 있지만 아무 문제 없다. 포르노 전용관이 생기고 포르노 영화들이 보급되는 것보다야 훨씬 나은 일이라고 생각한다』<이윤정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