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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경사노위와 ‘사회적 대화’의 한계

입력
2019.02.01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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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참여 거부로 경사노위 파행 

 ‘사회적 대화 만능주의’ 무리 많아 

 ‘가야 할 길’ 책임지는 정치 회복돼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통한 사회적 대화가 끝내 정상 궤도에 오르는데 실패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다.

경사노위는 노사정이 참여해 노동ㆍ경제ㆍ사회정책을 협의하기 위해 설립된 대통령 자문 사회적 대화 기구다. 기존 노사정위를 개편해 지난해 11월 출범했다. 하지만 1999년 이래 노사정위에 불참해온 민주노총이 참여를 머뭇거리는 바람에 온전한 가동이 지연돼 왔다. 정부는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를 성사시키려고 무진 애를 써 왔다. 그럼에도 지난달 29일 새벽까지 갑론을박을 벌인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결론은 ‘참여 거부’였다.

정부는 짝사랑에게 뺨 맞은 꼴이 됐다. 친(親)노동 행보를 이어온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노총 위원장을 청와대로 불러 직접 경사노위 참여를 호소하기까지 했다. 정부에선 민주노총에 대해 격앙된 분위기까지 감돈다. 29일 아침 청와대 회의에서는 ‘가야 할 길은 가야 한다’는 비장한 분위기가 감돌았다고 한다. 더 이상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에 매달리지 않고 당면 경제ㆍ사회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사실 정부는 그동안 경사노위 정상 가동을 애타게 기다려 왔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같은 갈등 현안을 사회적 대화로 멋지게 풀어 보려는 열망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참여를 거부하면서 지난 4개월여의 기다림은 시간낭비가 되고 말았다. 결국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경사노위 합의가 안 돼도 2월엔 국회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 관련 법안 등을 처리할 것”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낸 건 사회적 합의에 대한 정권의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단초다.

현 정권은 출범 이후 사회적 대화를 변혁 추진의 동력으로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정기국회 연설에서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을 거론하며 “절실한 변화를 위해선 사회적 대화를 통한 대타협과 전 국가적인 ‘연대의 힘’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이런 주장엔 사회 갈등 당사자들이 대화를 통해 보다 높은 차원에서 연대할 수 있다는 ‘정치적 낭만주의’가 깔려 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예로 든 바세나르 협약조차도 ‘낭만적 연대’와는 거리가 멀다.

1982년 11월 바세나르 협약 전까지 네덜란드 역시 노사 갈등은 끝이 없었고, 협상은 결렬되기 일쑤였다. 그해 9월 출범한 기민당 연립정권이 단안을 내렸다. 최악의 상황에서 집권한 기민당 정권은 임금의 지속적 상승이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보고 “정부가 직접 공무원 임금과 최저임금, 사회보장을 동결하겠다”고 선언하며 즉각 ‘임금안정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그러자 정부 강제라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 노사가 법안 처리 직전 서로 양보해 바세나르 협약이 탄생했다.

바세나르 협약 당시 네덜란드 기민당 정권은 확고한 정책 의지가 있었고, 그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피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있었다. 여차하면 사회적 대화고 뭐고 국회에서 정부 법안을 처리해버리겠다는 갈등 당사자들에 대한 압박이 그래서 가능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에서 사회적 대화는 때론 민의를 빙자해 정부나 국회를 ‘패싱’하거나, 민감한 정책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내세워지는 듯한 인상이 짙었다.

그렇다 보니 경사노위처럼 아예 사회적 대화의 장조차 제대로 서지 못하거나, 사회적 대화라는 걸 해도 오히려 정책이 논란에 휩싸이며 표류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신고리 5ㆍ6호기 원전 폐쇄 공론화위원회가 그랬고,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가 그랬다. 최근 엉거주춤한 카풀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대화도 마찬가지다.

속내야 어떻든 사회적 대화 자체가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에 묶여 정책이 끝없이 표류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경사노위 합의가 없어도 2월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법안 등을 처리하겠다”는 여당 원내대표의 입장은 다행이다. 이젠 사회적 대화 뒤에 숨기보다 ‘가야 할 길은 가는’는 책임 있는 정치력을 보여 줄 때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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