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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개성역에 중국 고속열차가 들어온다면

입력
2018.10.28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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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경기 파주시 도라산역에서 열린 2018년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 '경의선 남북 철도·도로 연결구간 현장시찰'에서 소속 의원들이 남방한계선 통문으로 도보이동 하고 있다. 이날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원들은 불참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5일 경기 파주시 도라산역에서 열린 2018년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 '경의선 남북 철도·도로 연결구간 현장시찰'에서 소속 의원들이 남방한계선 통문으로 도보이동 하고 있다. 이날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원들은 불참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남ㆍ북ㆍ미 관계가 하루가 다르게 뒤바뀌고 있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1972년 7ㆍ4 남북 공동성명 이후 여러 차례 남ㆍ북 간에 대화와 협력 무드가 조성됐으나, 긴장 관계로 되돌아가길 반복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별 기대를 걸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게다가 이번에는 미국이 키 플레이어여서 훨씬 더 복잡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번은 다르다’는 기대감이 크다. 9월 초 시작한 한국일보 최고위과정 ‘한국아카데미’를 수강하면서부터다. ‘한반도 비핵화와 대북투자’라는 주제 아래 북한 정책 책임자와 전문가들이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주제는 다양하지만, 강사들의 상황 진단은 일치한다. ‘북한은 고립 상황으로 되돌아가기 불가능하게 변했다’는 것이다.

변화의 핵심은 ‘시장’이다. 북한은 1994년 말 경제난으로 주민들에 대한 배급이 중단되며 ‘장마당’이 생겨났다. 이후 북한 정부는 시장에 대해 ‘묵인’과 ‘통제’ 사이를 왔다 갔다 했으나, 2010년 5월 허용 정책을 시작한 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부총장 분석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2011년 이후에는 정부가 시장화를 ‘주도’하고 ‘견인’하고 있다. 양 부총장은 그렇게 7년이 흐른 지금 북한은 중국 개혁개방 초기 단계에 도달했다고 진단한다. 북한의 소규모 상점과 탄광들은 대부분 사실상 개인이 소유하고 있으며, 형식적으로 특정 국가기관이나 국영기업의 산하에 있다.

시장화 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김 위원장과 특권층이다. 김 위원장이 지난달 방북한 문재인 대통령과 수행단에 자랑스레 보여준 평양의 ‘여명거리’가 좋은 예이다. 2016년 4월에 착공해 1년 만에 완공한 이 신도시 건설에 동원된 자금은 ‘돈주’라고 불리는 북한 신흥 자본가가 대부분 마련한 것이다. 김 위원장이 재원 걱정할 것 없이, 고층 건물을 지으라고 지시하면 이익을 추구하는 누군가가 돈과 인력을 끌어와 완성한다. 그 과정에서 이름을 빌려주는 당ㆍ군ㆍ관 소속 공기업 경영자도 막대한 수익을 올릴 것이다.

만에 하나 북한 정권이 핵무기를 지키기 위해 시장 성장에 필수적인 개방을 포기한다면, 시장화로 형편이 나아진 북한 주민들의 거센 저항으로 둘 다 잃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북한의 변화는 우리에게 엄청난 기회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잠재성장률이 추락하는 추세를 되돌릴 돌파구가 될 것이다.

나희승 한국철도기술연구원장은 가장 시급한 사업 중 하나가 남북 철도 연결이라고 말한다. 남북 철도가 연결되면 우리와 유럽 간 교역이 육로로 이어진다.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운행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의 화물열차 운행 시간을 2025년까지 7일로 지금보다 절반가량 단축하는 공사를 진행 중이다. TSR에 경원선이 연결되면 부산에서 모스크바까지 8일 만에 도착할 수 있다. 바다로 간다면 한달 보름이 걸린다. 고속철로 가면 더 아찔하다. 세계 최장을 자랑하는 중국 고속철은 이미 북한 문턱인 단둥(丹東)까지 연결돼 있다. 서울서 신의주까지 고속철을 건설한다면, 서울에서 베이징까지 6시간이면 갈 수 있다.

우리 정부가 남북 철도 연결사업 착공식을 연내에 하려고 서두르는 데에는 이런 사정이 있다. 이달 중순 이 문제를 놓고 미국을 설득하러 간 우리 정부가 뚜렷한 성과물을 들고 오지 못하자, 정부의 성급함을 비판하는 여론이 적지 않다. 물론 강력한 경제재제가 현재로서는 북한의 비핵화를 앞당길 가장 유효한 수단이다. 하지만 압력만으로는 북한을 움직이기 힘들다는 것 역시 여러 차례 입증됐다.

냉전적 사고에 갇혀 북한과 경제 협력의 기회를 놓친다면, 그래서 만에 하나 중국제 고속철이 개성역까지 들어온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정영오 산업부장 young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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