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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돈은 어두운 그림자를 데려온다

입력
2018.09.28 18: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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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경제수석 아닌 시민사회수석 전담 

 정부, 배고픔보다 배 아픔에 과다한 관심 

 거품이면 터지니 투자자도 과욕 삼가야 

우리나라 아파트 가격은 경제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갈등 요인으로 발전하는 특이한 이슈다. 아파트와 주택가격을 일주일 단위로 집계해 발표하는 나라가 있을까 싶다. 그만큼 부동산, 아파트 가격에 관심이 높다. 특히 강남 부동산 문제는 배고픔의 문제가 아니라 배 아픔의 문제 같다. 그래서 부동산 정책이 어렵다. 강남 집값이 오르면 강북 사람들의 배가 아프고, 서울 집값이 오르면 지방 사람들의 배가 아프다. 청와대에서 부동산 문제를 경제수석이 아닌 시민사회수석이 전담하는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그래서 추석 연휴기간에도 서울 부동산 얘기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9ㆍ13 대책이 발표되면서 부동산 시장이 일단 잠잠해졌다. 안정인지 관망인지 아직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과거 경험이나 각종 경제지표, 국제경제 흐름 등을 감안하면 더 오를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 유독 전문가들의 분석이나 일반인 예측이 잘 들어맞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때 ‘부동산 가격이 앞으로 절대 오를 이유가 없다’고 여러 이론을 들이대며 예측했던 경제연구소 전문가들이 이후 집값이 계속 오르자 미디어에서 사라졌다. 잘 알던 이도 있어서, 이들이 어디서 뭘 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부동산이나 증시에 일단 불이 붙으면 물을 끼얹어도 꺼지지 않는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도 그런 현상을 의미한다. 특히 폭등과 폭락 장세의 증시나 부동산 시장과의 전쟁은 심리전에 가깝다. 정부가 온갖 폭탄을 쏟아 부어도 시장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부동산 시장이 내리막길을 걸을 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규제를 풀고 세제혜택을 제공해도 외면당한다. 정부 희망과는 반대로 갔던 것이 과거 경험이다. 잡으려 하면 멀리 달아나는 무지개 같은 것이 부동산의 역설이다.

최근 30여년 동안 부동산 가격이 떨어진 시기가 단 3차례 있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집값이 치솟자 분당 일산 등 '수도권 1기 신도시'가 발표돼 1992년까지 무려 265만가구의 주택이 공급됐다. 덕분에 1991년부터 3년간 아파트 가격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또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덮치면서 다음 해 서울 아파트 가격은 폭락한 뒤 다시 치솟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몇 년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미국과 일본은 경기 과열을 잡기 위해 금리인상을 계속하다 부동산 거품이 터졌다.

따라서 지금까지 경험으로 부동산 하락 요인은 대량공급, 금리인상, 금융위기 등이다. 하지만 대량공급은 그린벨트 훼손 문제나 지방자치단체의 반발 등으로 만만치 않다. 정부가 밝힌 공급대상 지역을 보면 불이 난 서울이 아니라 불씨가 꺼진 수도권 외곽 지역이다. 금융위기는 우리가 피해 가야 할 외생 변수다. 금리인상은 한국은행의 의지로 가능하지만, 소규모 개방경제 체제인 우리 입장에서는 미국 등의 해외금리 동향과 보조를 맞춰야 하는 것이라 자율성이 별로 없다.

정부가 아무리 집값을 잡으려 해도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다. 9ㆍ13 대책의 핵심 내용인 세제개편, 공시지가 인상 등은 의료보험 등과 연계돼 있는데다 세제개편은 국회 승인을 얻기가 만만치 않아 심리전에 그칠 수도 있다.

하지만 금리인상 변수는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이 위축된다면 이 요인 때문일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가 금리를 인상했으니 한국은행도 이래저래 고민이 깊을 것이다. 그런데 거품이라면 언젠가 꺼질 것이고, 거품이 아니면 꺼뜨릴 이유도 없다. 미국 시골 지역 사람들이 뉴욕의 부동산 가격 때문에 배 아파할까. 그렇다고 두고 볼 수만은 없다. 배고픔도, 배 아픔도 챙겨야 하는 것이 정부다. 투자자들의 욕심도 거품에 한몫을 한다. 행여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어 보겠다면 법정 스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 "돈은 혼자 오지 않고 어두운 그림자를 데려온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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