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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과 빛을 입은 형형색색 건축

입력
2024.04.29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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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건축, 색채로 새로운 정체성을 드러내다

편집자주

'정태종의 오늘의 건축'은 치과의사 출신의 건축가인 정태종 단국대 건축학부 조교수가 국내외 현대 건축물을 찾아 각 건축의 지향점과 특징을 비교하고 관련된 이슈를 소개하는 기획입니다. 4주에 1번씩 연재합니다.


색채의 마법사 하면 어떤 사람은 해바라기를 그린 화가나 화려한 7겹 드레스 패션 디자이너를 떠올릴 것이다. 누군가는 실사보다 더 실사 같은 고화질의 4K 모니터 회사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현대건축도 기존 건축의 어둡고 엄격했던 색에서 벗어나 건축물의 개성과 건축가의 설계 의도에 맞춰 다양한 색채로 갈아입고 있다. 이제 건축은 색채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이른바 컬러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콘크리트 회색, 천연 나무 갈색, 붉은 기와와 적벽돌에서 새하얀 백색, 노란 원색, 심지어 형광 주황과 네온 연두색의 건축까지 과감하게 탈바꿈해 눈이 부실 지경이다. 왜 현대 건축가는 색으로 이야기하게 된 걸까.

건축에서의 색채

건축에서 색채의 사용은 생각보다 보수적이다. 건축 형태와 공간 구성을 만드는 원리라기보다는 건축물의 최종 단계에서 외피에 덧대어져 특정 효과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건축 재료 자체의 색이 건축물에 그대로 드러나기에 일반적인 건축물의 색채는 재료에 의해 결정된다. 목조 건축의 경우는 대개 나무의 색이다. 석재의 경우는 화강암이나 편마암, 화산석, 대리석으로 목조보다 다양하지만 어두운 검은색에서 밝은 흰색의 무채색이 많으며 간혹 적색과 녹색 정도가 가능하다.

금속패널과 플라스틱 등 건축 재료가 다양해지면서 색채 선택의 폭이 넓어진 건 최근 일이다. 현대건축은 여기서 더 나아가 마치 색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추상화가라고 할 정도로 색채를 진지하게 다루고, 천연 재료의 색에서 탈피해 건축물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색채로 변신하고 있다. 선으로 형태를 그리고 색을 칠하는 데카르트의 지성주의 시대 회화와 달리 선과 형태가 아닌 색으로만 가득한 세잔의 회화를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의 본질인 보이지 않는 살이 보이는 색채로 전환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사고는 최근 현대건축의 공간에서 색채 중심이라는 개념으로 확장되고 적용된다.

회색의 노출콘크리트, 미메시스 미술관

경기 파주 출판단지 내에 위치한 미메시스 미술관.

경기 파주 출판단지 내에 위치한 미메시스 미술관.

포르투갈의 북부 지역 포르투를 중심으로 건축 활동을 하는 알바로 시자는 안양 예술공원 내 알바로 시자 홀과 파주 출판 단지 내 미메시스 미술관을 통해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건축가다. 단순한 기하학적 공간과 과도한 장식의 배제, 공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공간의 순수성 표현, 장소가 가지는 의미 부여, 단순함 속에 숨겨져 있는 잠재성의 노출 등 미니멀리즘의 백색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라 할 수 있다.

그의 건축물은 형태나 공간의 구성도 좋지만 군더더기 없는 공간은 특히 인상적이다. 그 공간을 꽉 채우는 것은 화려한 장식이나 덧칠한 것이 없는 공간의 본질 자체다. 포르투갈의 전통건축을 모더니즘과 현대건축에 접목한 시자는 다양한 역사적 건축의 특성과 의미를 이용해 지역적 특색을 강하게 드러내면서도 보편성을 지닌 건축을 선보인다. 건축의 색채도 그 특성 중 하나다. 흰색의 지역적 건축 특성을 차용하기도 하지만 근현대건축 재료인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해 전통건축의 백색과도 유사한 분위기를 만든다. 미메시스 미술관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햇볕이 내리쬐는 노출 콘크리트는 원래의 회색이 아닌 흰색처럼 빛난다. 이곳은 건축 재료가 가지고 있는 색과 거칠기만으로 원하는 공간을 표현해낸다.

빨간 처마, 갤러리 라파예트 메스

파리 유명 백화점의 분점인 갤러리 라파예트 메스의 모습.

파리 유명 백화점의 분점인 갤러리 라파예트 메스의 모습.

프랑스 현대 예술을 대표하는 전시 공간인 퐁피두 센터는 프랑스 동부 로렌 지방의 크지 않은 도시 메스에 분관을 세웠다. 자연을 대표하는 건축 재료인 나무를 엮어서 만들어낸 독특함은 새로운 예술을 선도해 나가는 퐁피두답다고 할 만하다. 퐁피두 센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도시를 대표할 만한 건축물이 또 하나 있다. 파리 유명 백화점의 분점인 갤러리 라파예트 메스다. 언뜻 보면 그저 작은 도시의 분점이려니 생각할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건축물이 예사롭지 않다. 이곳의 형태는 보통 백화점과 유사하나 전면부에는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빨간 캐노피가 달려 있다. 캐노피 자체는 그늘막을 만드는 어닝과도 같은데 마치 빨간 색종이로 종이접기를 해서 붙여놓은 듯하다. 형태도 독특하지만 강렬한 색을 사용해서 더욱 인상적이다. 주변과 차별화하려 무언가를 강조하다 보면 폭력적이다 싶을 정도로 강력한 방식을 쓰는 게 보통인데 이곳은 여러 건축적 장치를 이용해서 강력함을 세련되게 보여준다. 그중 원색의 색채도 한몫하는데 강렬한 색채와 함께 건축물의 매스와 대비되는 얇고 날렵한 캐노피의 위치, 약간씩 다른 각도로 접히는 캐노피의 형태, 그리고 캐노피의 색 등 다양한 요소를 이용해 완성도 높은 강렬함의 도시 풍경을 만든다.

파란 공간, 성 슈테판 성당

화가 마르크 샤갈이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든 성 슈테판 성당.

화가 마르크 샤갈이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든 성 슈테판 성당.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멀지 않은 도시 마인츠에는 내부가 온통 파란 빛과 색으로 충만한 특별한 성당이 있다. 화가 마르크 샤갈이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든 성 슈테판 성당이다. 성당은 종교 공간이니 대부분은 엄숙하거나 경배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진다. 주로 석재나 벽돌을 이용하니 색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찬란하고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은 공간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라기보다는 신앙의 발현을 위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성 슈테판 성당은 규모도 크지 않고 도심의 성당도 아니지만, 내부 공간의 그 푸름 때문에 다른 성당과는 완전히 다른 성당이 된다. 성당 내부 공간 전체를 휘감아 도는 파랑의 공간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휘감는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색채 속에서 우리는 샤걀 그림의 주인공이 되어 파란 성당의 공간을 떠다니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예배와 성경의 구절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몸으로 직접 종교를 대면할 수 있는 공간이다.

시시각각 변화는 공간의 색, 마인츠 버스정류장

다색 유리를 이용해 색이 바뀌는 마인츠 버스정류장.

다색 유리를 이용해 색이 바뀌는 마인츠 버스정류장.

현대건축은 새로운 건축 재료와 신기술을 이용해 기존과는 다른 공간과 건축을 만들어낸다. 유리의 투명과 건축 재료의 불투명함의 중간치인 반투명함도 만들어내고, 색채도 단일한 색채가 아니라 여러 색이 동시에 나타나기도 하며 색이 주변 상황에 따라 변화하기도 한다. 평소에는 투명한 공간인데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가면 불투명한 흰색으로 바뀌는 최첨단 현대식 탈의실에서의 경험은 놀랍기까지 하다. 도시의 일상을 만드는 버스정류장의 유리 박스가 시시각각 바뀌는 곳이라면 어떨까. 마인츠에는 다색 유리를 이용해 주변의 상황에 따라 색이 바뀌는 버스정류장이 있다. 무지개처럼 여러 색이 동시에 나타나고 색이 상황에 따라 바뀌니 이곳의 색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버스정류장이 특별한 곳임을 금방 알 수 있다. 한 가지로 결정된 단일 색이 아닌, 한순간도 고정된 색의 조합이 아닌 색채의 다양함 속에서 우리는 환상적인 공간의 파티를 즐길 수 있다.

한국 단청과 건축의 색채

다섯가지 색을 기본으로 문양을 그려넣은 창덕궁의 단청.

다섯가지 색을 기본으로 문양을 그려넣은 창덕궁의 단청.

서양 현대건축에서 나타나는 환상적인 색채의 향연은 한국의 전통건축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통건축은 주로 나무로 짜 맞추는 가구식 구조인데 석재에 비해 환경에 노출됐을 때 수명이 짧다는 약점이 있다. 그런 건축 재료를 최대한 보존하려 했던 여러 방식 중 하나가 비바람에 나무가 썩지 않도록 하는 단청이다. 단청은 오행설에 근거해 청, 적, 황, 백, 흑을 기본으로 하면서 일정한 규칙에 따라 문양을 그려 넣는다. 한국의 단청은 건축 재료 보호라는 기능적인 역할에서 확장해 종교적이며 정치·사회적 권력의 기호가 된다. 즉 단청의 화려함이 신분을 상징하게 되면서 색채는 권력을 가지게 된다. 이제 건축에서 색채는 단순한 색을 넘어 다양한 패턴이 되고 3차원의 공간이 되며 사회적인 관계의 공간으로 확장한다. 도시와 건축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정도 되면 색으로 산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글·사진=정태종 단국대 건축학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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