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국내외 주요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리포트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교통은 도시의 성장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철도를 이용한 물류 및 이동은 도시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역사가 오래된 도시들에 등장한 철도는 ‘중앙역’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이 중앙역은 한 도시의 관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비교적 기존 도심과 근접하면서도 시 경계의 접점에 위치한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서울역은 당시 도심인 광화문에서 다소 떨어진 곳인 지금의 자리에 있다. 이는 도심보다 덜 번화하기 때문에 이동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시는 성장하고 규모가 커진다. 외곽 시설들이 도시 중앙역 근처로 들어와 금세 번화한 곳이 되고, 교통 정체 등 도시 공간 효율성·생산성에 문제가 생긴다. 심지어 철도나 고속화 도로가 장벽처럼 작용해 이를 경계로 도시가 양분화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다고 이미 중요한 교통 허브 역할을 하는 역을 외곽으로 이동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이유로 일부 신설 철도의 경우 지하에 건설된다. 문제는 기존 철도가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하공사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인접한 대지의 여유가 없고, 공사기간 동안 운행을 중단하기도 쉽지 않다.
서울 역시 이런 문제에 봉착해 있다. 1970년대부터 서울의 집중 과밀화는 정책의 주요 과제로 꾸준히 언급됐다. 그리고 수많은 해법과 대안, 다양한 정책이 적용됐다. 동대문의 고속버스 터미널을 반포로 옮기고, 지하철을 대대적으로 증설하고, 고속화 철도의 거점 역사를 경기 광명 등지에 만들었다. 하지만 집중 과밀화 현상은 끄떡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서울은 더 확장되고 밀도는 높아졌다. 아울러 경부선 철도 등으로 인해 도시공간 생산성과 효율성 저하로 상대적인 손실은 커져 버렸다.
서울역의 상징성
통일 여부를 떠나 서울역은 한반도의 교통 중심지에 위치한 시설이다. 기존의 철도뿐만 아니라 공항철도 등 신설 노선 역시 상당수 서울역을 경유하고 있거나 종착역으로 하고 있다. 해외 방문객이 영종도 및 김포공항을 출발해 처음 도착하는 곳이기도 하다.
기능성과 상징성을 모두 가진 대한민국 대표 역사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위국의 얼굴이라 하기엔 아쉬운 점이 많다.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서울역사는 건축적 가치와 굴곡진 한국 역사를 담고 있지만, 규모의 한계로 이미 수십 년 전 고속철 역사로 대체된 상태다. 민자로 유치된 상업 시설 역시 한국의 대표 역사와 함께 있기엔 건축 수준이 너무 낮아 창피할 정도다. 현재 서울역 앞의 상황도 어수선하기 그지없고 서부역 방향 역시 소외된 도심 노후 지역으로, 21세기 서울의 격을 오히려 떨어뜨린다.
이런 서울역에 대한 문제 제기와 대대적 변화에 대한 필요성은 이미 30년 전부터 언급됐고, 2000년대부터는 다양한 제안과 복합 개발계획이 발표됐지만 본격적으로 추진되지 못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누적 방문객이 1억 명이 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무런 목적과 기능도 없이 건축적 완성도와 미학으로 만들어진 DDP는 해외에서 서울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 건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사례를 보면 서울역 일대의 대대적 변화를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 윤곽을 잡을 수 있다. 단지 건물 몇 개 정도가 아니라 공간의 재구조화와 통일시대 이후까지 예상해 보다 근본적인 계획이 추진돼야 한다. 또 국가적 상징과 예술적 가치까지 품은 건축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철도·도로 지하화, 해외에선?
서울의 도시공간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서울역 및 경부철도 일부 구간의 지하화가 제안된 지 10여 년이 넘었다. 서울역의 기능을 분산하기 위해 서울시는 물론 정부 기관과 학자들이 다양한 해법과 제안을 했고 많은 방안이 추진됐지만, GTX·공항철도 등 오히려 서울역의 기능이 늘어난 상태다. 종합적 접근이 아닌, 부분적 접근이 더 복잡한 난맥상으로 이끌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는 중앙역을 지하화해 새롭게 생긴 철도 위 유휴 부지를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슈투트가르트 21 프로젝트)을 추진 중이다. 1994년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공사에 착수, 본격적인 운영은 2025년 12월부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발표와 사업 착수부터 운영까지 약 30년이란 시간이 소요됐다.
캐나다 토론토 레일파크 계획은 토론토 시내를 관통하는 철도 위를 덮어서 공원 및 개발 부지로 활용하는 정책이다. 2016년 부지 전체를 공원화하는 정책을 발표했으나 비용 문제 및 여러 저항에 맞닥뜨리면서 ‘부지의 3분의 1은 개발 용도로 전환’하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이 사업은 크게 여섯 가지 목표를 가지고 추진됐다. △토론토 전역에 공원 제공 △연결성 및 접근성 향상 △시민이 함께하는 축제와 행사의 공간 △탄력성과 친환경 인프라 구축 △레일 지원 및 통합 △철도용지의 역사 존중과 보존 등이다.
프랑스의 ‘마세나 프로젝트’도 주목할 만하다. 총 130㏊에 달하는 ‘파리 리브고슈 사업’의 일부분으로, 파리 국립도서관 인근의 폐철도 및 쇠락 지역을 재개발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마세나 지역은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크리스티앙 드 포잠박(프랑스)이 건축 코디네이터로 참여, 전체 블록을 오픈 블록개념으로 디자인하고 건축적 다양성을 유도했다. 블록 내부 건축들을 각기 다른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점도 특징이다.
미국 보스턴 시내를 관통하는 도심 고속도로 I-93을 지하화하는 ‘보스턴 빅딕 (BIG DIG) 프로젝트’도 있다. 1991~2006년 무려 148억 달러가 투입됐다. 수중 터널과 사장교(斜張橋) 비대칭 교량 건설도 동시에 진행됐다. 고속도로가 지하화되면서 지상엔 약 30에이커(약 12만1,400㎡)의 공간이 생겼고, 로즈 피츠제럴드 케네디 그린웨이라는 이름의 녹지 광장과 공원이 조성됐다. 특히 고속도로로 단절됐던 보스턴 일부 지역이 연결되면서 활력을 잃었던 항구 지역이 활기를 되찾는가 하면, 공원화 등으로 인해 친환경 성과도 나타났다.
경부철도 지하화, 과제는?
서울역을 경유하는 철도 노선은 KTX, 일반 철도, 천안·인천 급행 등 4개나 있다. 또 서울역 외부 도로 지하에는 지하철(1·4호선)이 운영되고 있는데, 철도-지하철 간 간격이 300m 이상이며 환승 동선도 매우 복잡해 이동이 상당히 불편하다. 여기에 용산 영등포 등 서울을 관통하는 경부철도는 서울의 공간을 단절시키고 있다. 서울역에서 시작되는 경부철도 양쪽 지역은 마포구와 용산구로, 도시 경제 기능이 커지는 데 반해 생산성과 효율성은 제한받고 있다. 경제적 관점뿐만 아니라 거주·생활 측면에서도 공간 단절은 다양한 문제점을 야기한다. 결국 땅을 만들 수도 없는 상황에서 기존 도시 공간의 재구성은 필연적이다.
‘경부 철도 지하화’ 이슈는 2014년 경기 안양시에서 처음 문제를 제기해 관심을 받았다. 이후 서울역 용산역까지 확장된 개념으로 발전했다. 국토교통부는 이 문제에 다소 부정적이었지만 2016년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에 언급해 가능성은 열어뒀다.
역시 사업에 필요한 막대한 예산이 가장 큰 문제다. 철도 지하화에 필요한 재원 마련이 중요한데, 철도 용지는 매각이 불가하다. 그러므로 지하화된 철도 위를 덮어서 새롭게 확보한 지상 부분에 대한 경제적 권한을 주는 공중권 부분의 점용허가권을 민간에 매각해서 재원을 마련하는 것도 유용한 방법이다.
이 경우 매각이 가능한 부지는 서울역 일대만 하더라도 북부역세권 약 3만511㎡, 서울역 구간은 약 13만8,000㎡에 달한다. 또 이 지역 공공소유 부지(공원, 도로, 광장 등)는 약 9만3,000㎡다. 영국 런던의 엔터프라이즈 존(Enterprise zone) 개념을 도입해 국가전략비즈니스 지역화한다면 다국적 민간자본 유치도 가능하다.
또 열차 운행 시간과 공사 작업 시간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기차가 다니지 않는 시간에 공사를 진행하거나 △철로와 철로 사이의 공간에 기둥(마이크로 파일 등)을 설치해 건물 무게를 지탱하게 한 뒤 공사를 하는 방안 등이 있다. 하지만 이 경우 하루 작업 시간이 1~4시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경부철도 지하화가 추진된다면 공사 기간 우회 철로를 확보하는 방식이 가장 적합해 보인다.
홍성용 박사는?
건축사사무소 NCS lab 대표다.
다양한 관점에서 건축물을 바라본 '공간(스페이스) 마케팅', 도시경쟁력 개념을 녹여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를 출판했다. 특히 건축물을 영화와 접목하거나(영화 속 건축 이야기·1999) 건축가의 여행 이야기를 알기 쉽게 풀어내(건축가의 특별한 여행법·2000) 주목받았다.
우영미 사옥(서울 광진구) 건축 설계로 2023년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건축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또 경부선 가산디지털 역사 현상설계 등 다수의 건축설계 작품이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