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똑똑한데 가끔 뭘 몰라’
편집자주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는 만화가 일상인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가락 사이로 책장을 끼워가며 읽는 만화책만의 매력을 잃을 수 없지요. 웹툰 '술꾼도시처녀들', 오리지널 출판만화 '거짓말들'의 만화가 미깡이 한국일보를 통해 감동과 위로를 전하는 만화책을 소개합니다.
정원 작가의 출판만화 ‘똑똑한데 가끔 뭘 몰라’는 표지 그림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뭔가 불만이 있는 듯 미간을 찌푸린 얼굴, 밴드로 다부지게 고정한 앞머리, 꼿꼿한 자세. 주인공 김정훈의 포스가 예사롭지 않다. 이 당차 보이는 친구는 지금 뭐가 불만일까.
막 4학년이 된 정훈이의 첫 번째 불만은 선생님이 당연하다는 듯 남녀로 짝꿍을 지어 앉혔다는 점이다. 꼭 여자 남자가 짝을 할 필요가 있나? 친한 친구끼리 앉으면 좋잖아! 정훈이는 철봉에 매달려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우적우적 콩나물을 씹으면서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투덜대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서는 중이다. 집중하는 정훈이의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정훈이의 건의로 짝꿍이 바뀌었다. 가장 친한 석진이와는 함께 앉지 못하게 됐지만, 새 짝꿍의 초대로 놀러 간 준서네 집에서 할머니가 짜장라면을 끓여 주신다. 너무 맛이 없어서 정훈의 미간이 또 확 찌푸려진다. 맛있냐고 묻는 할머니께 맛이 없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도, 맛있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 정훈은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는 최선의 답을 찾는다. 가히 충격적인 맛이었지만 그해 가을 준서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정훈은 슬픔에 잠긴 준서를 찾아가 할머니표 짜장라면을 끓여주며 할머니를 함께 추모한다.
떡볶이집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여기가 인생 떡볶이집이라 자랑하고, 만두 찍어 먹게 국물을 많이 달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아줌마가 국물을 적게 주신 거다. 체면을 구겨 속상한 와중에 한 사람당 두 개씩 먹기로 한 만두를 누군가 더 먹자, 정훈이는 폭발하고 만다. 그럴 수 있다. 어른들도 곧잘 그런다. 정훈이는 떡볶이 국물 때문에 예민했다는 걸 인정하고 다음 날 친구에게 정확하게 사과한다. 이건 어른들도 잘 못하는 일이다. 보면 볼수록 진짜 멋있는 어린이다.
아홉 개의 챕터 제목은 모두 ‘소중해’로 끝난다. 짝꿍은 소중해, 급식은 소중해, 여름방학은 소중해, 강아지는 소중해… 그러니까 이 작품은 정훈이와 친구들이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키느라 골똘한 이야기다. 정훈이는 그래서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것이다. 매사 진지하게 생각하고 힘껏 사랑하느라 그렇게 힘이 들어간 것이다. 그 ‘진실의 미간’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 어린이도, 과거에 어린이였던 사람도 모두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내내 웃다가 마지막 챕터 ‘어린이는 소중해’ 편에 이르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만다. 이 멋지고 웃기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는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가 없다. 맛있는 크림빵을 파는 집은 ‘노키즈 존’이라서 발을 들이지도 못한다. 어린이는 소중한데 과연 소중하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정훈이처럼 매사 진지하게 고민하고, 의견을 말하고, 직접 부딪치면 그래도 세상이 조금씩이나마 변화하겠지? 좋아지겠지?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 나도 미간에 힘 좀 주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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