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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말을 하자면'

입력
2024.01.0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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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당선자 김영은

캘리그라피 백연수

캘리그라피 백연수

우리 모두 형우다.

나는 피켓 문구를 바라보았다. 검정 바탕에 흰 글씨로 쓰인 문구가 단단하게 느껴졌다. 그 아래에는 정의연대연합 마크가 찍혀있었다. 너는 목이 말랐던지 음료를 단숨에 마셨다.

“자기소개서는 잘 쓰고 있어?”

나의 물음에 너는 그럭저럭이라고 대답했다. 너는 경쟁률이 높기로 소문난 H신문사에 입사 준비 중이었다. 경기도 본가에서 생활하는 너는 가끔 나의 자취방에 놀러오기도 했지만 졸업을 앞두고 해야 할 일이 많아지면서 뜸해졌다. 나는 네 소식을 SNS로 자주 접했다. 매번 피드에 올라오는 네 글에선 너의 말투가 그대로 느껴졌다. 단호하고 직설적인 말투. 물론 일상적인 이야기도 있지만 정치적 이슈들을 다루는 글이 더 많았다. 캣맘 사건, 민식이법, 스쿨 미투, 동성결혼합법화 등에 대한 너의 소신은 많은 이의 지지를 받았다.

“너야말로 어떻게 지내? 소식도 뜸하고.”

너는 피켓을 의자 한편에 고이 세워두며 물었다. 소식이라 하면 SNS 활동을 말하는 것이다. 나의 활동은 두 달 전에서 멈춰있었다. 음료를 열 잔 이상 마시면 여행용 캐리어를 주는 시즌 사은품 사진이었다. 날씨가 더워 자주 카페를 가게 되었고 여행용 캐리어를 받았을 땐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마침 네 게시글이 업로드되었다는 알람이 울렸다. 공정무역과 케냐 어린이노동착취, 플라스틱으로 오염된 바다 사진들이 가득한 글이었다. 그 뒤로 업로드를 하지 않았다.

“졸업 전시 준비하느라 바쁘지.”

나는 가루와 먼지로 더럽혀진 티셔츠를 매만졌다.

“고생이 많아.”

너는 남은 음료를 쭉 들이켰다. 그리고 SNS에 게시된 글 하나를 보여주었다. 블루칼라의 blue라는 제목으로 시작해서 산업노동자의 노동 현실을 고발하고 있었다. 너는 연합 사람들과 함께 작성했다고 했다. 형우를 알고 지낸 친구들과 유가족 인터뷰, 직접 보고 들은 공장 노동자의 실태에 대한 고발이 있었다. 형우는 노후된 기계에 팔이 잘렸고 접합 수술을 시도했지만 쇼크사로 죽음에 이르렀다. 기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공장 측의 문제이며 형우 개인의 실수로 몰아가는 대기업에 맞서야 한다고 굵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응원한다고 댓글을 달았다.

“너도 참여할 거야?”

네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그 찰나가 네게 망설이는 것으로 비춰질까 재빠르게 답했다.

“어디서 해?”

내 말에 너는 글 아래에 나와 있다고 했다. 시청역 사거리. 오후 3시. 너는 들를 곳이 있다며 먼저 일어섰다. 뒷정리를 할 틈도 없이 피켓을 챙겨 나섰다. 손을 흔들고 멀어지는 너를 바라보며 날이 너무 덥다고 생각했다. 눈언저리가 따끔따끔했다.

*

너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나는 학교 작업실에서 철야 중이었다. 졸업전시에 필요한 재룟값만 해도 한 학기 등록금을 훌쩍 뛰어넘었기에 예민해져 있었다. 글루건 때문에 끈적이는 손가락을 비비며 휴대폰으로 네가 보내준 기사 링크를 클릭했다. 짤막한 기사 내용을 몇 번이고 읽어볼 때도 도대체 무슨 일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그거 형우래. 너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형우? 내가 되묻자 너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기억 안 나? 작년에 같이 공장에서 일했잖아. 그제야 A군(23)이란 지칭이 눈에 들어왔다. A군(23)의 사고사도. 그 순간 형우의 얼굴보다 일 년 전 공장 기숙사 앞 허름한 정자가 먼저 떠올랐다.

여름 방학 무렵 너는 삼촌 소개로 구미 휴대폰 공장 아르바이트를 하자고 제안했다. 업무는 휴대폰 카메라 렌즈를 육안으로 검사하는 것이었다. 숙식이 제공되고 두 달만 일해도 한 학기 등록금은 거뜬히 벌 수 있었다. 너랑 함께 있으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네 말에 나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공장은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했다. 하얀 LED 전등이 수도 없이 켜져 있었다. 이곳을 드나드는 직원들은 위생모와 위생마스크, 위생비닐 작업복으로 무장했다. 공장에서 오십 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기숙사가 있었다.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서 만들었다는 기숙사는 방과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곳에서 무탈하게 먹고 자고 일만 하면 수중에 돈이 들어와 있을 것이었다. 오십대답지 않게 다부진 체격의 작업반장은 돈 셀 겨를 없이 일하게 될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눈알이 빠져라 카메라 렌즈를 보고 나면 금방 피로해졌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공장 기숙사로 향하기 바빴다.

너와 나는 대학 기숙사 룸메이트였다. 단발머리에 자그마한 키. 한눈에도 앳되어 보이는 외모의 너는 처음부터 나와 통하는 것이 많았다. 화장실에서 머리카락을 말리는 것, 늦게 잠드는 것, 올드팝을 즐겨 듣고 야식으로 회를 좋아하는 것 등등 사소한 것까지 잘 맞았다. 게다가 둘 다 졸업을 앞둔 터였다. 서로의 학번을 확인하고 새내기와 같은 방을 쓰지 않아 다행이라고 손뼉을 쳤다. 인터넷에서 최악의 기숙사 룸메이트를 만난 이야기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서로를 행운으로 여겼다. 너에겐 아기자기한 면이 있었다. 복숭아 캐릭터 인형으로 침대를 꾸미고 달 모양 조명을 책상에 두었다. 화장실에 라벤더향 디퓨저와 변기 커버까지 따로 두었다. 일 년만 사는 기숙사이지만 머무는 동안 최대한 잘 살아보겠다는 게 너의 생각이었다.

너는 인생에 대해서도 계획이 있었다. 언론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어릴 적부터 기자가 꿈이었다고 똑 부러지게 말했다. 대화를 하다보면 정의, 인권, 노동권과 같은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분명 요즘 재미있는 영화가 무엇이냐는 대화 주제였는데 어쩌다보니 대기업 상업영화산업의 문제에 대한 입장을 듣고 있었다. 아마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네가 활동하고 있는, 일종의 취업스터디인 신문사설 학회가 정의연대연합으로 명칭을 바꾼 것은.

나는 네 이야기가 좋았다. 네가 말하는 사회 이슈, 기업과 노조 간의 갈등, 인권 문제, 복지 사각지대는 딱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입시 미술학원 정물화 수업이 떠올랐다. 사과 한 알을 두고 명암, 관점, 각도에 대해 훈련했다. 연필로 각도를 맞추고 어느 방향에서 빛이 들어오는지를 파악하고 나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면밀히 파악해야 했다. 완성작들을 모아보면 조금씩 다른 모양의 사과들이 있었다. 사과 한 알. 그것은 하나의 사회였고 어느 편에 이젤을 두고 앉아 있느냐가 각자의 위치를 말해주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젤은 마음대로 옮길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여기 사람들 참 대단하다.”

작업 첫날, 침대에 뻗은 네가 중얼거렸다. 나는 뒷목을 주물렀다. 이럴 때 쓰려고 가져왔지. 너는 장난스러운 말투로 파스를 꺼내어 흔들었다. 우리는 나란히 어깨와 다리에 파스를 붙였다. 식당, 피시방, 카페, 학원 등등 아르바이트 꽤나 했다고 자부했지만 한자리에 서서 몇 시간이고 카메라 렌즈만 들여다보는 것은 고역이었다. 두 달만 버티면 사백이야. 나는 손가락 네 개를 펼쳤다. 한 개씩 접으면서 이 돈으로 무엇을 할지 이야기했다. 하나는 생활비, 하나는 노트북, 하나는 졸업전시 비용, 남은 하나는 세부 항공권! 세부는 너와 내가 계획한 해외여행이었다. 그때의 나는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너는 딱 한 번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 그곳이 바로 세부라고 했다. 너의 부모는 세부를 다녀오고 얼마 뒤 이혼했다. 그런 말을 할 때면 너의 입가엔 얼마간 씁쓸함이 맺혔다. 하지만 나 또한 부모가 지긋지긋할 정도로 싸웠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엄마가 하루에 몇 번씩 하소연을 할 때마다 왜 이혼하지 않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지지고 볶고 싸우는 것보다 깔끔하게 헤어지는 게 나아. 너는 특유의 쿨한 제스처로 손을 휘저었다. 나는 그 어떤 때보다 깊이 공감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했다. 파스를 붙이고 잠드는 일상이 계속되었다. 공장에서 제공되는 식사는 부실하진 않지만 맛있지도 않았다. 대학 기숙사에서 나눠 먹던 맥주와 치킨이 간절했다. 하지만 공장부지 근처는 허허벌판이었다. 차를 타고 이십 분 정도 나가야 편의점이나 식당, 은행이 있었다. 개인 차량이 없기 때문에 발이 묶인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간혹 반장이나 다른 직원들이 음식을 사오기도 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뿐이었다.

“여기 사람들 참 대단해.”

침대에 누워 중얼거리는 네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옆방에서 큰소리가 났다. 편하게 언니라고 부르라던 이모의 방이었다. 이모는 밤마다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했다. 엉엉 우는 날도 있었다. 사랑싸움 같았다. 처음에야 호기심이 일었지만 날이 지날수록 시끄러워졌다. 참다못한 네가 방문을 두드리며 조용히 해달라고 하자 다음 날 이모는 작업 중에 괜한 트집을 잡았다. 네가 머리를 제대로 묶지 않았다고 했다. 어차피 모자 쓰잖아요. 너의 퉁명스러운 반응에 이모가 대드는 거냐고 소리쳤다. 너와 나는 사무실에 불려갔다. 작업반장은 일하러 왔지 싸움하러 왔느냐고 잔소리했다. 아르바이트생이지만 엄밀히 직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여기가 만만해 보이냐고도 덧붙였다. 너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는 화장실에서 머리를 질끈 동여매며 쌍년이란 말만 중얼거렸다. 나는 씩씩대는 너의 옆에서 맞장구치며 욕을 해주었다. 우리는 손가락을 세며 결의를 다졌다. 다음 달. 사백. 세부. 이것만 생각하자고 했다.

그날도 퇴근 후 공장 기숙사 앞 정자에 앉아있었다. 너와 나는 이전에 사두었던 맥주 한 캔을 나눠 마셨다. 열대야 때문인지 맥주가 미지근했다.

“누님들. 여기서 뭐해요.”

형우였다. 그의 손에는 검은색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형우는 조립 라인에서 작업하는 직원이었다. 누님이라는 올드하면서도 살가운 호칭에 너와 나는 얼떨떨했지만 어느새 옆자리에 앉아 말을 걸어오는 형우의 태도에 곧 녹아들었다. 형우는 검은색 비닐봉지에서 캔맥주 묶음과 과자, 젤리, 빵 따위를 꺼냈다. 아까 반장님 따라 나갔다가 편의점 들렀어요. 새롭게 출시된 자몽맛 캔맥주였다. 나 이거 마셔보고 싶었는데! 네가 두 눈을 둥그렇게 뜨며 반색했다. 내가 또 누님들이랑 마시려고 사왔지. 형우가 능글맞은 웃음을 띠었다. 자몽맛 맥주는 차갑고 달콤했다.

“여긴 젊은 사람들이 없잖아요.”

형우가 운을 뗐다. 그는 실업계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곧바로 취업해 삼 년 차에 접어들었다. 죽을 것 같았지만 참고 견뎠다고 했다.

“누님들은 대학생이죠?”

형우는 캔맥주를 부딪치며 말했다. 너와 나는 어떻게 알았냐고 했다. 형우는 척 보면 안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로 많이 오니까요. 하는 일이 많진 않지만 그래도 공장인데 힘들겠다 싶었어요.”

너와 나는 형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네가 말했다. 자몽맛 캔맥주는 금방 동이 났다. 형우는 다음번엔 두 묶음을 사오겠다고 했다.

그날 이후로 형우와 맥주를 나눠 마시고 기숙사 뒤편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는 동안 형우에 대해 조금씩 알아갔다. 줄곧 엄마와 함께 살아왔고 두 살 터울인 형은 트럭 운전을 하며 일찍부터 독립했다는 것. 그런 형이 얼마 전에 아빠가 되었다며 휴대폰 사진첩에 저장된 조카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형우는 사회생활이라는 단어를 즐겨 썼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게 돈이에요.”

형우는 담배꽁초를 흙바닥에 문지르며 말했다.

“솔직히 대학 등록금 존나 비싸잖아. 취업이 잘되는 것도 아니고. 저는요, 그렇게 어중이떠중이로 살 바엔 돈 모아서 차도 사고 집도 살 거예요. 여기서 잘만 하면 대기업 정규직 전환도 되거든요.”

형우는 정규직 전환에 힘을 주었다. 소위 서울권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사람들이 자기 밑에서 일을 배울 때 일머리가 없다고 했다. 우리가 대학생이란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 형우가 눈치 없다고 생각했지만 밉지는 않았다. 형우는 공장 직원이었고 우리는 떠날 사람이었다.

*

시청역 앞 사거리에는 서른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긴팔 티셔츠를 입고 모자와 마스크를 쓴 채 노동자의 권리를 외쳤다.

“덥지?”

어느새 내 옆으로 온 네가 얼음 물병을 건넸다. 나는 반쯤 녹은 물을 들이켰다. 뒷목이 당길 정도로 차가웠다. 너는 사람들 틈에 뒤섞여 앉았다. 사람들은 구호와 박차에 맞춰 주먹을 앞뒤로 흔들며 외쳤다. 너는 맨 앞줄에 앉은 사람들이 유가족이라고 속삭였다. 한낮의 열기 속에서도 그들의 낯빛은 창백했다. 형우는 엄마도 아빠도 형도 닮지 않았다. 너는 준비한 피켓을 힘껏 들었다.

“우리 모두 형우다! 형우다! 형우다!”

네가 외쳤다. 형우는 이제 형우가 아니게 된 기분이었다. 네 입에서 흘러나오는 형우라는 이름이 정의, 연대, 시민과 권력 같은 적확하지만 동시에 모호한 단어로 느껴졌다. 형우는 이제 형우가 아니고, 형우를 형우라고 부르는 이들은 남은 이의 몫이었다.

스피커에서 형우가 좋아했던 록 밴드 노래가 흘러나왔다. 경쾌한 리듬에 꿈을 찾아 떠나는 가사였다. 너는 피켓을 흔들며 가사를 따라 불렀다. 정의연대연합 사람들이 나눠준 팸플릿에 형우에 대한 소개가 적혀있었다. 팸플릿 속 형우는 다재다능한 착한 막내아들이었다. 음악을 좋아했지만 집안 형편 탓에 공장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힘든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착실히 살아왔다, 또래들과 달리 유독 성숙했고 철들었다, 그 대가는 죽음이었다… 나는 팸플릿 읽기를 그만두었다. 선크림을 바른 얼굴이 축축했다. 얼음물이 녹아 미지근했다. 너는 휴대폰 카메라로 시위 현장을 담았다. 곧 너의 SNS에는 사진과 짧은 영상들이 게시될 것이다. 휴대폰 렌즈가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사방이 렌즈들로 가득한 것만 같았다.

언젠가 형우가 술이 덜 깬 채로 작업장에 나타났다. 전날 작업반장을 포함한 다른 직원들과 회식을 가졌다. 나와 너는 말라비틀어진 고기 몇 점만 먹고 곧바로 기숙사로 향했다. 우리를 정식 직원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없기에 붙잡히지 않았다. 형우는 비몽사몽한 채로 작업을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자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역시 해장은 공장 밥이지. 형우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런 날이면 형우는 전날 자신이 얼마나 마셨는지에 대해 말했다. 은근한 자부심이 섞인 말투였다. 형우에겐 소위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윗사람에게 싹싹했고 나로선 거부감이 드는 농담들도 재치 있게 받아들였다. 작업반장은 형우가 술잔을 채워줄 때마다 넌 진짜 잘될 놈이야, 내가 본 놈들 중에 가장 잘될 거야, 따위의 덕담을 했다. 그가 술에 취해 고꾸라지면 형우는 기숙사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러다 가끔씩 나에게 연락을 했다. 나와 너는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는 기분으로 정자로 향했다. 어둠 속에서 형우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보였다.

“여기 자몽맛 맥주도 챙겼지.”

형우는 술과 안주가 담긴 검은 봉지를 흔들었다. 모기에 다리를 뜯겨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연애담도 털어놓았다. 형우에게는 일 년 사귄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절친한 친구와 바람이 났다고 했다.

“그때부터 여자는 안 믿어요.”

형우의 말에 너는 일반화하지 말라고 했다. 형우가 잠깐 너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이내 웃었다. 아니, 뭐, 그렇다고요, 하고 얼버무렸다. 형우와 너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연애하고 싶다. 만날 여기 처박혀서 일만 하잖아요.”

형우가 장난스럽게 한탄했다. 너는 대꾸하지 않은 채 휴대폰만 바라봤다. 나는 형우가 민망해할까 봐 일부러 고개를 끄덕였다. 형우는 구구절절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곧 군대를 다녀와야 하는데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푸념은 군대와 정치 이야기로 옮겨갔다. 군대와 정치와 연애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형우의 말들은 모두 이곳 남자직원들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 같았다. 공장은 남자들을 위한 곳이고, 여자들은 툭하면 힘들다고 그만두기 때문에 안 맞는다고도 했다. 형우가 말을 하는 내내 나는 너에게로 온 신경이 쏠렸다. 너는 오징어를 툭툭 뜯으며 묵묵히 맥주만 들이켰다.

“현숙 누나도 힘들다고 나가버리잖아. 그럼 남은 사람들이 똥 치우는 거라고.”

현숙 누나는 옆방 이모였다.

“진짜, 여자들도, 군대, 가야 돼.”

형우가 말을 하는 중간중간에 침을 뱉었다. 맥주를 마시는 속도도 빨라졌다. 네가 형우를 향해 빈 캔을 집어던졌다.

“너 같은 놈들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거야. 멍청하면 배우기라도 하든가, 배우기 싫으면 멍청하단 티를 내지 말든가.”

네가 벌떡 일어났다.

“고졸 새끼 주제에.”

너는 나의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잠깐 돌아보니 형우가 멍한 표정으로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기숙사실에 들어와서도 쉽게 진정하지 못했다. 침대에 앉아 형우의 말이 얼마나 차별적인지에 대해 말했다. 나는 네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졸음이 몰려왔다. 다섯 시간 뒤에 출근해야 했다. 쉽게 피로가 풀리지 않으니 조금이라도 더 자야 했다. 너는 무식하고 폭력적인 사람들과 한순간도 같이 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 어차피 우린 떠날 사람이잖아… 나는 이불을 턱 끝까지 올리며 중얼거렸다.

“여기서 나가자.”

네가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피로가 어깨를 짓눌러왔다.

“우리 돈 벌기로 했잖아. 우선 자고 내일 생각해보자.”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눈이 반쯤 감겼다. 너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너는 없었다. 너의 짐도, 신발도 없었다.

너는 그날에 대해 불합리함에 저항한 것이라 말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으냐고 나를 혼자 내버려두고 온 것은 배신이라고 따져 물어도 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가 네 판단을 두고 이래라저래라 할 순 없잖아. 나오고 싶으면 빨리 나와.”

말문이 턱 막혔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네 목소리가 낯설었다. 무단퇴사에 작업반장은 길길이 날뛰었고 형우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직원들 모두가 내 앞에서 너의 험담을 일삼았다. 너의 무단퇴사는 무미건조하고 별다른 일이 없는 공장에 큰 재미를 주었다. 직원들은 피라냐처럼 너의 표정, 말투, 생김새, 옷차림 하나하나 면밀하게 뜯어먹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잠을 자면서 사백만 원이란 금액만 곱씹었다. 그러다 문득 화가 치솟아 베개로 텅 빈 네 침대를 내리쳤다.

“무책임한 인간들이 너무 많아.”

형우가 정자 한가운데에 앉아 말했다. 나는 그 앞에 엉거주춤하게 섰다. 작업반장과 저녁을 먹고 오는 길이었다.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피곤했다.

“아니, 우리도 이런 일 한두 번 겪는 건 아니지만. 그 누님 사회생활 안 해본 거 티 내네.”

형우가 언제부터 반말을 했더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운동화 앞코로 흙바닥만 팠다.

“아까 반장님 나한테 하는 거 봤지? 나도 이제 찍혔어.”

형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보기엔 작업반장은 늘 똑같았다. 술은 무조건 원샷이고 자신의 파란만장한 공장 생활을 읊은 뒤 장성한 딸 사진을 보여주며 로스쿨 출신 변호사임을 강조했다. 검은 봉지에는 맥주와 과자 대신 소주병이 있었다. 사실 한 달 일한 값만 벌고 나가버릴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졸업 전시 비용이 막막했다. 학자금 대출에 생활비 대출까지 받아둔 상황이라 갚아야 할 것이 많았다. 어딜 가나 돈이 문제였다. 가끔은 내가 정말 의지가 부족해서 작은 일에도 힘들어하는 나약한 인간인가 싶었다. 남들 다 이렇게 살아왔다는데 말이다. 무책임한 인간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다가도 손바닥 뒤집듯 다 포기해버리고 싶었다. 언젠가 너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너는 책임도 책임 나름이라고 했다. 네가 죽겠는데 어떻게 해. 네 잘못 아니야. 머릿결을 쓰다듬는 듯한 너의 부드럽고 다정한 말투에 울컥했던 것도 같다.

“네 잘못도 아닌데 뭐.”

나는 형우에게 대뜸 이런 말을 했다. 형우를 위로하고자 한 말도, 맥락에 어울리는 대답도 아니었다. 그냥 그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신경 끄라고, 나에게 욕해서 어쩌라는 말까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더 짜증 난다는 거야. 잘못한 인간들은 따로 있는데.”

형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이상하게 벌을 받는 기분이었다. 형우와 함께 맞장구치며 네 욕을 할 수도 없었다. 내가 별다른 말이 없자 형우는 누나는 너무 착해,라고 중얼거렸다. 누님이 아닌 누나라는 말엔 어딘가 어리광이 섞인 듯했다. 형우가 소주를 한 모금 마시고 내게 건넸다. 나도 한 모금 마셨다. 쓰지 않았다. 나는 형우 옆에 앉아 과자를 천천히 녹여먹었다. 형우와 나는 소주병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어둡고 조용했다. 부지 한편에 철판 묶음과 모양이 제각각인 파이프들만 쌓여있었다.

*

거리 행진이 시작됐다. 시청역에서 광화문까지 이어지는 길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피켓들을 살펴봤다. 어느새 너는 맨 앞줄에 서서 유가족과 함께 걷고 있었다. 나는 자꾸만 뒤쳐졌다. 형우의 증명사진이 붙은 피켓이 보였다. 단정한 차림새로 정면을 응시하는 형우의 눈이 정확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몰랐다. 모두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허공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기억하는 형우의 마지막 표정은 무미건조했다. 형우에게서 미안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날 밤 정자에서 손등과 손가락 사이사이를 어루만졌던 것에 대해. 귓가에 대고 누나는 너무 착해, 너무 착해…라고 중얼거린 것에 대해. 느닷없이 입을 맞춰온 것에 대해. 형우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끝까지 모른 척했을 뿐이다. 나는 작업반장에게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작업반장은 커피를 마시며 헛웃음을 쳤다. 개념 운운하는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어차피 나는 이곳을 떠날 사람이고, 떠나버리면 그만이고, 지금 당장 떠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공장을 나오면서 그 기억을 덮어두었다. 하지만 네게서 형우 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습한 공기가 가득했던 그날 밤부터 떠올랐다. 손등 위를 개미가 기어가는 것 같아 손톱으로 벅벅 긁었다. 그런 불쾌한 감각은 형우만 남긴 것이 아니었다. 너의 것이자, 나의 것이기도 했다.

나는 네가 자꾸만 신기루처럼 보였다. 아무리 걸음을 재촉해도 맨 앞에 서 있는 너에게 닿을 수 없었다. 그저 너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데. 더위를 먹은 것처럼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웠다. 팔다리가 축축 처졌다. 록 밴드 노래가 반복되어 흘러나왔다. 광화문 근처에 다다르자 다른 소음들과 뒤섞였다. 모두들 마스크를 낀 채로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다. 공정과 권리와 국가와 개인을 위해 투쟁하고 있었다. 태극기와 여러 연합 마크가 새겨진 깃발들이 흔들렸다. 저마다 다른 구호를 외치며 더 높이 더 많이 흔들었다. 쏟아지는 소음들은 공허했다. 너의 목소리도 외침도 들리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대열에서 이탈해있었다. 이쪽과 저쪽의 구분이 없었다. 대열에서 나왔어도 대열 안에 있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토록 커 보이던 형우의 증명사진 피켓도 눈에 띄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쥐고 있는 손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액정화면에 네 이름이 떴다.

“어디야?”

네가 물었고 나는 광화문이라고 답했다.

“광화문 어디?”

나는 주변을 훑어보고 태극기가 보인다고 했다.

“태극기? 태극기가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알아?”

나는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보자고 했다.

“우리 지금 거기랑 멀어. 네가 이쪽으로 와.”

너는 조금 더 목소리를 높이며 위치를 설명했다. 그리 멀지 않았다. 하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더위 먹었나 봐.”

“뭐라고?”

“더위, 먹은 것 같아.”

말을 하고 나니 토기가 쏠렸다. 해는 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작열하는 한여름의 대낮은 똑바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

“기다려 봐.”

네가 말했다.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려 했지만 이미 전화가 끊겼다. 어느샌가 네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얼린 물병을 감싸고 있던 손수건을 풀어 내 이마에 가져다 댔다.

“집에 갈 수 있겠어?”

너의 이마가 땀으로 젖어있었다. 마스크로 가려져 있지만 두 뺨도 충분히 발갰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어지러웠다. 햇볕에 그을린 탓에 살갗이 가려웠다. 손톱으로 팔뚝을 긁었다.

“안 되겠다. 병원 가자.”

네가 내 손목을 잡으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의연대연합 사람이었다. 너는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근처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내가 괜찮다고 연거푸 거절했지만 너는 완고했다. 너는 나를 이끌어 택시를 잡았다. 순간적으로 네가 나중에 이 소식을 SNS에 띄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의연대연합 사람들에게 함께 운동하다 쓰러진 친구로 포장해 전할지도 몰랐다. 혹은 정말 내 상태가 걱정된 것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오해일 수도 있다.

“나 혼자 갈게.”

나는 네 손을 뿌리쳤다. 너는 조금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황당한 듯했다.

“왜 그래. 같이 가.”

네가 한 발자국 더 다가왔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덧 퇴근 시간에 접어들고 있었다. 직장인들이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횡단하고 있었다. 광화문역 출구에도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지고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팸플릿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당장이라도 여길 떠나고 싶었다. 집이나 학교 작업실이나 이곳이 아닌 그 어떤 곳에라도 가고 싶었다. 사람들의 외침과 노래와 행진이 아스팔트 위 아지랑이처럼 지글지글 끓어올랐다.

“나 때문에 여기까지 왔잖아.”

네가 말했다.

“나도 형우 추모하려고 왔어.”

내 입에서 튀어나온 추모라는 단어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너는 잠깐 나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들썩이다가 이내 다물었다. 그런 너를 등지고 걸었다. 빈 차 표시등을 켠 택시 한 대가 보였다. 택시 안은 시원하고 쾌적했다. 줄곧 손에 쥐고 있던 팸플릿을 펼쳤다. 그곳에 기록된 형우의 짧은 생애를 다시 읽어보았다. 문장과 문장 사이가 유난히 멀게만 느껴졌다.

그때, 뒤늦게 공장을 나온 나는 이 불편하고 불쾌한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형우를 아는 사람도 없었고 내밀한 속내를 꺼낼 만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 내가 너를 만나 형우의 입맞춤에 대해 말했을 때 너는 뭐 그런 놈이 다 있느냐며 만나면 주먹으로 패주겠다고 했다. 너와 나는 맥주잔을 맞부딪치며 형우 욕을 실컷 했다. 걔는 그럴 줄 알았다고, 싹수가 보이는 애였다고, 어디서 감히 고졸이, 따위의 말을 하며 공장에서 번 돈 다 쓰자며 먹고 죽자고, 언제 그런 다툼을 했냐는 듯 굴었다. 술집과 노래방을 들락거리며 동이 틀 때까지 술을 마셨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어서 너와 나는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그런 네가, 또 내가 어떤 마음으로 무슨 생각으로 이곳까지 왔는지 잘 모르겠다. 인정에 호소하면 금방 눈물짓는 여린 사람이라서?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이라서? 네가 말하는 정의와 연대와 권력과 부당함은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 것일까? 너는 왜 저렇게 열심일까? 나는 왜 여기에 왔을까?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렀다. 나는 기사에게 멀미가 심하니 라디오를 꺼달라고 했다. 기사는 백미러로 나를 흘끔 바라보더니 손가락으로 전원 버튼을 툭, 눌렀다. 사방이 고요했다. 광화문을 빠져나오면서 어떤 외침들이 들렸지만 그마저도 희미해져 멀어질 뿐이었다.


김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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