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라이벌로 지난달 27일 사망한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 중국 경제 정책을 총괄했던 리 전 총리가 남긴 유산 중 하나로 '커창지수'가 있습니다.
리 전 총리는 2007년 랴오닝성 당서기 시절 전력 사용량, 철도 운송량, 은행 신규 대출로 중국 경제를 판단할 수 있다고 했는데요. 2010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이 세 수치를 지수화해 경기 지표로 제시했습니다. 커창지수의 등장입니다. 특히 커창지수는 중국 국내총생산(GDP) 통계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국제 금융기관들이 중국 경제 보조 지표로 활용하면서 이름을 알렸습니다.
커창지수는 공장이 잘 굴러가고 있는지(전력), 상품 유통이 얼마나 이뤄지는지(철도 운송), 기업 투자는 늘고 있는지(대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실물 경기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셈입니다.
커창지수를 우리 경제에 대입해 볼까요. 우선 한국전력공사가 작성한 '전력통계월보'를 보면 공장 전기 사용량을 측정할 수 있는 산업용 전력 판매량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8월까지 딱 한 번(올해 2월)을 제외하고 모두 전년 대비 감소했습니다.
은행 신규 대출은 한국은행이 매달 집계하는 기업 자금조달 통계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올해 1~9월 은행 기업대출은 전년 대비 67조9,000억 원 늘었는데요. 같은 기간 기업대출 증가액이 72조6,000억 원, 89조9,000억 원이었던 2021년, 2022년에 뒤처집니다. 지난해보다 쪼그라든 전력, 기업대출 통계는 올해 들어 가라앉은 경기와 닮았습니다.
은행 대출에선 경제를 향한 시사점도 발견됩니다. 중소기업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인데요. 대기업 대출 증가폭은 올해 1~9월 28조2,000억 원으로 전년 27조9,000억 원을 웃돕니다. 반면 같은 기간 중소기업 대출 증가폭은 지난해 62조 원에서 올해 39조8,000억 원으로 뚝 떨어집니다. 경기 하강 타격이 중소기업에 몰렸다는 뜻입니다.
물론 커창지수처럼 일부 통계로 전체 경기를 판단하는 건 '확대 해석'의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또 커창지수를 곧이곧대로 우리 경제에 적용하는 일은 더욱 경계해야 합니다. 한국 현실에 맞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예컨대 철도 화물 운송량은 한국의 경기를 파악하는 데 적합하지 않습니다. 중국보다 면적이 작은 한국은 철도보단 트럭, 선박을 이용한 화물 운송이 보편적이어서죠.
다만 GDP 통계가 현실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는다는 커창지수의 문제의식은 흘려들을 게 아닙니다. 경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할수록 더 정확한 경기 판단과 정교한 정책 수립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한은, 기획재정부 등이 GDP 통계를 보완하고, 새로운 경제 지표를 개발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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