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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사회에선 ‘힘의 논리’가 목소리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한국일보> 는 매주 금요일 세계 각국이 보유한 무기를 깊이 있게 살펴 보며 각국이 처한 안보적 위기와 대응책 등 안보 전략을 분석합니다. 한국일보>
8월 초 동아프리카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8명이 숨지고 14명이 다치는 차량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오랜 내전을 겪은 소말리아에서 무장단체의 폭탄 공격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사용된 차량이 문제였다. 테러범은 일본 자동차업체 도요타가 만든 미니밴 ‘노아’를 개조해 폭발물을 잔뜩 싣고 군 검문소를 향해 돌진했다.
30년 전에도 그랬다. 소말리아 내전이 한창이던 1990년대 초 반군은 도요타의 픽업트럭 ‘하이럭스’ 뒤에 M2 중기관총과 무반동포를 장착하고 불쑥 나타나 미군 특수부대를 공격한 뒤 유유히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미군은 기동성과 화력을 두루 갖춘 반군의 게릴라 전술에 엄청난 타격을 입고 결국 소말리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2001년 개봉한 영화 ‘블랙호크 다운’은 실패한 미군 파병으로 기록된 모가디슈 전투를 잘 그리고 있다.
이후에도 중화기로 중무장한 이 트럭들은 리비아ㆍ예멘 내전, 이라크ㆍ아프가니스탄전쟁, 이슬람국가(IS) 창궐, 시리아 내전에 이르기까지 분쟁지역에 빠짐 없이 등장한다. 이른바 ‘테크니컬(Techinical)’로 불리는 비군용 무장 트럭의 전성시대다. 미국 국방부 중동정책 최고담당자를 지낸 앤드류 엑섬은 미 시사주간 뉴스위크에 “테크니컬은 AK-47의 차량용 버전”이라고 비유했다. 1947년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후 1억정 넘게 팔리며 현대 전쟁사를 바꾼 자동소총 AK-47과 맞먹는 가치를 지녔다는 얘기다. 테크니컬은 핵과 미사일, 드론 등 첨단 무기가 판치는 21세기에도 전장을 종횡무진 누비며 가난한 군대의 ‘현대판 기병’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전쟁터 어디에나 도요타가 있다
테크니컬의 정의는 따로 있지 않다. 대략 무게가 가벼운 민수용 트럭에 기관총 등을 단단히 고정할 수 있도록 개조한 뒤 소규모 인원으로 적진을 들쑤시는 즉석 전투차량쯤으로 보면 되겠다. 역사는 생각보다 꽤 길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도 영국 특수부대 SAS가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미국제 지프를 개조해 독일군과 싸웠다고 한다.
테크니컬은 ‘리비아-차드 국경 분쟁(1986~87)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당시 차드군은 누가 봐도 전력에서 밀렸지만, 도요타 랜드크루저에 대전차미사일과 로켓포 등을 싣고 다니면서 ‘치고 빠지기’식 전술로 구 소련제 장갑차로 무장한 리비아군에 압승할 수 있었다. 테크니컬의 위력이 얼마나 컸던지 미 시사주간 타임이 “도요타 전쟁”이라 명명할 정도였다.
몇 년 뒤 테크니컬의 개념은 소말리아 내전을 통해 완전히 정착됐다. 테크니컬은 당초 1990년대 국제인권단체들이 현지 구호 및 치안유지 등을 명목으로 소말리아 반(反)정부 세력에게 건넨 일종의 뇌물, ‘기술지원자금(Technical Assistance Grants)’을 일컫는 용어였다. 그러나 반군이 이 돈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트럭, 무기를 대량 구매ㆍ개조하는 데 쓰면서 민간 무장 차량을 뜻하는 말로 굳어졌다.
2000년대 들어 테크니컬은 비정규 무장단체의 필수품이 됐다. 2001년 11월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 보도를 보면 당시 아프간 탈레반 최고지도자 물라 오마르는 미 제너럴모터스(GM)의 SUV 쉐보뤠 서버번을, 알카에다 수장 오사바 빈 라덴은 랜드크루저를 각각 즐겨 탄다는 기록이 나온다. NYT는 소말리아 해적을 추적하기 어려운 이유로 “하이럭스가 해적의 필수 이동 수단이 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테크니컬은 2011년 아프리카ㆍ중동 민주화운동인 ‘아랍의 봄’을 거치며 황금기를 맞았다. 대표 사례가 리비아 내전이다. 리비아 정부군이나 반정부 시위대나 테크니컬을 적극 활용한 것까지는 같았다. 차이는 화력과 기술에 있었다. 반군은 원래 공대지로 개발된 구 소련제 S-5 로켓과 보병 장갑차 BMP-1 포신을 잘라 수백대의 트럭에 탑재했다. 반군 지도자 후삼 나자이르는 회고록에서 “우수한 연비 등 반군에게 부족한 화력을 테크니컬이 보완해준 덕분에 수도 트리폴리로의 진격이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규군에 뒤지지 않는 기술 혁신과 무기의 대형화를 이뤄낸 것이다.
값싸고 튼튼하고 구하기도 쉬워
테크니컬이 각광받는 전장을 유심히 살펴보면 개발도상국이나 제3세계 저개발국가가 대부분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값싸고 구하기 쉬워서다. 납작한 차체로 유명한 미군의 대표 수송차량 ‘험비’가 대당 19만달러(2억2,000만원ㆍ2011년 기준)인 반면, 테크니컬은 개조 비용을 포함해도 수백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특히 밀수는 테크니컬이 만연하는 데 한 몫 했다. 2015년 10월 IS가 중동지역에서 급격히 세를 불릴 당시 미 재무부는 도요타에 한 가지 이상한 요청을 했다. IS가 왜 그렇게 많은 도요타 테크니컬을 보유하게 됐는지 설명하라는 것. 그도 그럴 것이 IS의 시리아 거점 락까에서 조직원들이 하이럭스와 랜드쿠르저를 타고 깃발을 휘날리며 카퍼레이드를 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됐다. 심지어 2014ㆍ2015년 최신형 모델까지 있었다.
IS는 밀수로 다량의 테크니컬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됐다. 미 공영 라디오방송 ‘퍼블릭 라디오’는 2014년 국무부가 도요타 트럭 43대를 시리아 반군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는데, 해당 차량이 거간꾼을 거쳐 IS에까지 흘러 들어갔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올해 4월에는 국제인권단체 ‘글로벌위트니스’가 수단 준군사조직 RSF가 소유한 1,000대 넘는 도요타 트럭들의 유통 경로를 추적해 봤더니, 걸프만 국가에서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요타 차량이 IS 브랜드 중 하나가 됐다(미 ABC방송)”는 분석이 허언은 아니었던 셈이다.
한국 브랜드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봉고, 포터 등 국산 중고트럭들이 다연장로켓포나 중기관총 등을 장착한 전투 차량으로 변신한 사진은 지금도 군사 커뮤니티 등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요르단 등이 국내 중고차의 주요 수출처인 만큼 중동 내 밀수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도 역시 테크니컬의 최대 미덕은 뛰어난 내구성과 기동성. 테크니컬이 얼마나 튼튼한지를 보여주는 실험이 있다. 2006년 영국 BBC방송의 차량 TV쇼 ‘탑 기어’는 18년 동안 30만㎞ 이상 주행한 하이럭스를 바닷물에 5시간 담근 뒤 3m 높이에서 떨어뜨렸다. 그것도 모자라 차량에 불을 지르고, 마지막엔 철거되는 건물 옥상에 방치했다. 결과는 경이로웠다. BBC는 “하이럭스를 다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건 망치와 렌치뿐이었다. 예비 부품도 필요하지 않았다”고 감탄했다.
연비도 중무장 군용 무기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미 온라인 자동차플랫폼 드라이브트라이브에 따르면 미 육군 주력전차인 M1A2 에이브럼스가 ℓ당 0.26㎞ 움직이는 데 반해, 하이럭스는 무려 16.6㎞를 갈 수 있다. 가볍고 작은 차체로 비포장도로와 사막, 고지대 등 등 못 가는 곳이 없고 은닉도 용이하다.
테크니컬은 계속 진화 중이다. 미 외교안보 전문블로그 ‘워온더록스’는 최근 시리아 내전 현장에 반군 기술자가 만든 ‘수제 전차’가 등장했다고 전했다. 탱크에 적재된 기관총은 일본 소니의 비디오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조종장치에 의한 원격제어 기능까지 구비했다. 물론 테크니컬이 공중ㆍ미사일 화력이 압도하는 전면전에서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비대칭 전력의 균형추를 맞추는 보완재로서의 효용 가치는 분명히 있다. 매체는 “대규모 재래식 전쟁보다 국지전이 많아진 근래에 별다른 장비와 훈련이 필요하지 않은 픽업트럭 전술은 높은 효율성을 증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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