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년간 ‘미지의 세계’ 우주의 모습을 포착해 온 ‘스피처(Spitzer)’ 우주망원경이 임무를 마치고 우주의 품에 영원히 안겼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는 30일(미국 시간) “스피처에게 ‘퇴역’을 의미하는 안전모드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스피처는 2003년 8월 25일 미국 텍사스주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델타 II’ 로켓에 실려 우주로 향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승용차 크기의 스피처는 적외선 파장을 감지해 태양계 내 행성 및 소행성뿐 아니라 먼 은하와 신생 별 등에 대한 새로운 자료를 수집, 제공해 왔다. 이 같은 정보는 천문학자들이 ‘초기 우주’에 대한 통찰력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NASA의 ‘대형 망원경 프로그램’ 중 네 번째이자 마지막 망원경인 스피처는 설계 수명이 5년인데도 그보다 11년 이상이나 더 오래 임무를 수행했다. 수명 연장도 가능했으나 지구궤도를 도는 다른 우주망원경과 달리 태양을 주위를 돌며 갈수록 지구에서 멀어진 까닭에 망원경의 스위치를 끄기로 결정한 것이다.
스피처는 ‘허블(Hubble)’ 망원경만큼 유명하지는 않았어도 과학적인 성과는 대단했다. 2005년 우리 은하가 ‘막대 나선 은하’라는 가설을 사실로 밝혀냈고, 토성 주위의 얼음 고리를 최초로 확인했다. ‘트라피스트-1(Trappist-1)’로 알려진 별 주위의 지구 크기만한 7개 행성 중 4개가 공전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천문학자인 조지 헬로우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순수하게 기술적인 관점만 고려한다면 스피처는 계속 작동할 수 있지만 이제 임무를 마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시점에 도달한 것도 사실”이라며 스피처의 퇴역을 아쉬워했다.
NASA는 스피처에 앞서 지난 1990년 허블 우주망원경과 1991년 ‘콤프턴(Compton)’ 감마선 망원경, 1999년엔 ‘찬드라(Chandra)’ X선 망원경을 차례로 쏘아 올렸다. 이 중 허블 망원경은 자외선 및 가시광선, 근적외선 스펙트럼을 관찰하며 현재도 가동 중이다.
망원경을 지구 밖으로 올려 보내는 이유는 날씨와 대기의 영향을 받는 지상에선 우주의 정보를 제대로 관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망원경이 포착한 우주의 모습은 평상시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에서 보아 온 신비로운 풍경과 거리가 멀다. NASA 등 각국의 우주탐사기관에 의해 공개된 우주 이미지 대부분은 가시광선을 그대로 포착해낸 ‘사진’이 아니라 각종 데이터와 눈에 보이지 않는 파장을 분석해 만든 가상의 이미지일 뿐이다. 천체사진 촬영 전문가인 전영범 박사는 “다른 은하계나 별자리 사진은 특정 파장을 망원경이 찍으면 그 데이터를 컴퓨터 작업을 통해 칼라 이미지로 변환하는 것”이라며 “행성이나 혜성 충돌 장면 등도 사진이 아닌 상상도”라고 설명했다.
스피처가 떠난 자리는 차세대 망원경 ‘제임스 웹(James Webb)’ 우주망원경이 맡을 예정이다. 열에 극도로 민감한 장비의 처리 문제로 인해 수차례 연기됐지만 2021년엔 발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제임스 웹은 스피처와 같은 적외선 특화 망원경이며 주경이 스피처의 7.5배인 6.5m에 달해 더 먼 우주 공간 속의 다양한 피사체를 더 선명하게 관측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더욱 발전된 기술과 첨단 장비의 등장 덕분에 미지의 세계로만 여겨져 온 우주의 실체가 조금씩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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