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에선 ‘힘의 논리’가 목소리 크기를 결정합니다. <한국일보> 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이 보유한 무기를 깊이 있게 살펴보며 각국이 처한 안보적 위기와 대응책 등 안보전략을 분석합니다. 한국일보>
미국이 이라크전쟁에서 압승을 거두고 6주가 지난 2003년 5월 26일, 현지 전투지역에서 예레미아 스미스 미 육군 일병이 숨졌다. 차량 밑에서 일어난 폭발사고가 원인이었는데, 정확히 어떤 살상무기가 그를 사망에까지 이르게 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미 군당국은 “피해자가 폭발되지 않은 병기에 노출됐다”는 모호한 발표를 내놓았다. 폭발사고는 분명하지만 기존 폭탄 작동원리로는 설명이 불가능하자 이런 모순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후 20년 가까이 이라크ㆍ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미군을 벌벌 떨게 한 ‘급조폭발물(IEDㆍImprovised Explosive Device)’ 공포의 시작이었다.
새해 벽두부터 IED가 다시 소환됐다. 미군이 이달 3일 무인기로 폭살한 ‘이란 2인자’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의 죽음이 IED를 전면에 불러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이튿날 “솔레이마니는 죽었지만 그는 소름끼치는 ‘고급 IED’를 유산으로 남겼다”고 전했다. 미국이 솔레이마니를 콕 집어 제거한 진짜 이유는 중동 내 역학관계를 떠나 IED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라크에서만 미군 4,576명을 숨지게 한 상당수 무력 공격의 배후에 솔레이마니가 설계ㆍ제작하고, 또 퍼뜨린 IED가 있다고 미국은 장담한다. 전장(戰場)뿐 아니라 IED는 핵무기 등 첨단전력이 판치는 21세기에 비정규전과 테러를 자양분 삼아 사회안전망을 교란하는 ‘비대칭 위협’ 수단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저비용ㆍ고효율 끝판왕
급조라는 명칭에서 보듯, IED는 쉽게 말해 ‘사제 폭탄’을 총칭하는 용어다. 미 국토안보부는 “작은 파이프폭탄부터 대규모 폭발을 일으키는 정교한 장치까지 인명피해 및 피해를 초래하는 무기”라고 IED를 정의한다. 이를테면 전력(Power)과 뇌관(Initiator), 폭발물(Explosive), 기폭장치(Switch) 등 4가지 조건만 갖추면 무엇이든 IED가 된다. 자살폭탄테러에 흔히 이용되는 조끼ㆍ차량, 기존 폭발물을 개량한 고성능 폭약 등이 모두 IED 범주에 속한다.
때문에 IED는 새로운 무기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실제 전쟁이 아니더라도 굵직한 테러에는 어김없이 IED가 등장한다. 1995년 미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테러 사건의 주범 티모시 맥베이는 질산암모늄으로 폭탄을 즉석에서 제조해 169명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263명의 사상자를 낸 2013년 보스턴 마라톤대회 테러에서는 압력밥솥과 쇠구슬이 활용됐다.
그러나 IED의 두려움은 2000년대 초 이라크ㆍ아프간전을 기점으로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반미 저항세력은 주로 미군이 이동하는 길목에 사제 폭탄을 매설해 놨다가 차량이 도착하면 기폭장치를 가동해 인명을 해치는 수법을 썼다. 통신기술 발달로 ‘원격 조종’이 가능해진 덕분에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폭발물을 터뜨릴 수 있어 정확도도 높아졌다. 땅에 묻어 놓고 적이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지뢰와 가장 큰 차이점도 바로 제어 기술에 있었다.
IED의 최대 미덕은 비용 대비 효과다. “30달러어치 비료로 1억달러짜리 첨단무기를 무력화시켰다. 진정한 ‘현대판 포병’이다.” 마이클 바베로 전 미 육군 중장은 IED의 위력을 이렇게 요약했다. IED는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탱크를 한낱 고철로 만들고 미군의 팔다리를 훼손하기 일쑤였다. 특히 납작한 차체로 유명한 ‘미군의 아이콘’ 험비가 표적이 됐다. 미 일간 USA투데이는 “험비는 바닥 높이가 낮고 무게가 가벼운데다 몸체도 알루미늄 소재가 많아 IED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IED의 위험성은 수치로도 입증된다. 미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이라크ㆍ아프간전 개전 10년간 매설용 IED나 자살폭탄 차량에 의해 3,100명 넘게 사망하고 3만3,000명이 부상했다. 아예 사지를 모두 잃은 미군이 1,800명에 달한다. 미 행정부는 양대 전쟁 사망ㆍ부상자의 절반 이상을 IED 피해자로 본다. 급기야 미국은 2006년 국방부 산하에 IED 대책을 전담하는 ‘합동급조폭발물무력화기구(JIEDDO)’라는 별도 조직까지 만들었다. JIEDDO 국장을 지낸 존 존슨 예비역 중장은 “IED는 미군이 전장을 이동하는 방식에 막대한 영향을 줬다”며 “도로를 피해 헬리콥터 등 항공 수단에 보다 더 의존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솔레이마니의 유산 EFP
사실 미국도 무작정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매년 수십억달러를 들여 IED 해체 인력을 양성하고 대응 체계를 마련했다. 특히 2008년 이후 실전 배치된 IED 맞춤형 장비인 특수지뢰방호차량 ‘앰렙(MRAP)’이 큰 역할을 했다. 앰렙은 험비와 달리 차량 하부를 V자 형태로 두껍게 제작해 폭발력을 분산시켰고 안전성은 한층 강화됐다.
하지만 대당 100만달러나 하는 앰랩마저 어쩌지 못하는 무기가 금세 나왔으니 ‘EFP(Explosively Formed Penetrators)’이다. ‘폭발성형관통자’라는 난해한 이름이 붙은 EFP는 간단하게 관통력을 높인 IED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보면 된다. 만들기도 쉽다. 원통에 들어 있는 작약(폭탄을 파열시키는 화약) 위에 구리구슬 등 금속을 덧대 그 추진력으로 적을 저격한다. 미 사실확인 전문기관 폴리티팩트는 “기존 IED는 모든 방향으로 에너지와 파편을 보내지만 EFP는 대포처럼 한 쪽으로 작동하며 최대 초속 3,000m의 힘과 결합해 목표물을 뚫는다”고 설명했다. EFP의 가공할 만한 위력은 미군의 주력전차 M1 에이브럼스 탱크를 관통할 정도다.
솔레이마니의 이름은 이 때 등장한다. 미 당국은 그간 그가 이끄는 쿠드스군이 이라크 내 친이란 시아파민병대에 자금을 지원하고 EFP 제조법과 물류 등을 제공해 지속적으로 테러를 사주했다고 확신한다. 2007년 발간된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는 이라크 내 EFP 확산과 관련한 이란의 역할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그들(이란)은 인터넷으로 (폭탄) 제조기술을 광고하고 직무별로 개별 계약을 체결하면서 테러 전 과정을 자율로 위장한다. EFP 테러조직은 자금원, 폭탄제조업자, 실행자 등 6~8명으로 구성된다.” 미 국방부는 지난해 4월 “이라크에서 이란군에 의해 살해된 미군은 603명”이라며 구체적인 숫자를 공개하기도 했다. WP는 “미군이 솔레이마니 제거 직전 이란과 가까운 이라크 시아파민병대 ‘카타이브-헤즈볼라’의 군사시설을 공습한 것도 그를 테러총책으로 여겼다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끝나지 않는 IED 악몽
IED가 전쟁의 판도 자체를 바꾸는 건 아니다. 더 큰 무서움은 따로 있다. 파병 장병들은 언제 어디서 폭탄이 터질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이 뇌리에 박혀 죽을 때까지 ‘IED 트라우마’와 싸워야 한다. 대표적 증상이 뇌손상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다. 미 랜드연구소는 2008년 보고서를 통해 “이라크ㆍ아프간 파병 미군 중 19.6%가 IED로 인한 ‘보이지 않는’ 뇌손상에 시달리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직접적인 타격 없이도 폭발로 인한 불안감과 불면증, 인지능력 저하, 심할 경우 알츠하이머까지 다양한 신경학적 장애가 동반돼 평생을 간다는 것이다. 미 다큐멘터리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은 2015년 2월호에서 여러 관련 사례를 소개하며 “IED가 야기한 뇌손상의 미스터리는 풀기 힘든 숙제”라고 지적했다.
정보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IED를 완전히 퇴치하기는 점점 어려워질 것 같다. 미군은 2000년대 중반부터 ‘전자 재밍(전파 방해)’ 방식 등으로 IED에 대응하고 있다. 기폭장치인 휴대폰 신호를 방해해 원격 기능을 봉쇄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2008년 EFP 공격 횟수는 정점에 달했다고 한다. USA투데이는 “두 개의 전쟁을 거치면서 IED는 다른 어떤 무기보다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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