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대학생, 자퇴생, 직장인 등 배우 27명 모여
“공연 수익 전액 사회에 기부”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 상처를 지니고 있어요. 저희 배우들도 그렇고 관객들도 마찬가지예요. 저희 공연을 보신 관객들이 조금이나마 치유받으셨으면 좋겠어요.”
‘한부모 가정, 교도소에 계신 부모님, 장애인 양부모….’ 저마다 상처를 지닌 청년 배우들이 연극 무대 위에 모였다. 매달 1만원씩 사비를 모아 직접 무대를 꾸미고 공연 수익을 전액 기부하기도 한다. 고등학생, 대학생, 자퇴생, 직장인 등 27명의 청년으로 이뤄진 청년극단 ‘인연’ 이야기다. 지난해 11월 창단한 이래로 세 편의 연극을 선보인 청년극단 인연을 지난달 24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한 연기학원에서 만났다.
“연극제에 나가려면 소속이 필요했어요. 다들 어느 학교 연극부, 어느 학교 연극반 소속이더라고요. 그런데 저희 아이들은 학교가 없잖아요.”
2015년 여름, 학교를 자퇴한 두 명의 연기 지망생이 한 예고에서 연기 강사로 일하던 김순태씨를 찾아갔다. 서울청소년연극제(연극제)에 참가하고 싶었지만 소속 없이는 대회 참여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오랫동안 사제의 연을 맺어온 김씨는 아이들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마지막 끈이었다. “사실 아이들에게 자퇴를 하라고 말한 건 저였어요. 아이들이 실수를 한 건 맞아요. 하지만 중요한 시기인데 저 때문에 사퇴를 하게 된 건 아닌가 싶었죠. 자퇴를 한 대신 열심히 살라고 했어요.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도 했고요.” 그러자 아이들은 “연극제 무대에 서고 싶다”고 대답했다.
“포장되지 않은 아이들이란 의미로 팀 이름을 ‘비포장도로’로 정했어요. 저희 아이들에게도 소속이 생겼죠.”
연극제에 참가하기 위해 두 명의 자퇴생은 연기를 꿈꾸는 다른 친구들을 불러 부족한 자리를 메웠다.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등 다양한 배경의 청년들이 조금씩 합류한 비포장도로는 19명의 배우들과 본격적으로 대회 준비를 시작했다. 비포장도로란 이름으로 참가한 첫 연극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연출상, 최우수연기상, 작품상을 휩쓸었다.
여기서 멈추긴 아쉬웠다. 지난해 11월 비포장도로에서 ‘인연’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정식으로 극단을 세웠다. 19명으로 시작한 인연은 배우를 꿈꾸는 청년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더니 지금은 27명의 단원이 함께 하고 있다. 배우 배수경씨는 “저희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순태 선배와 소중한 인연을 맺었고 옆에 있는 동료들과도 인연을 맺었다. 그래서 ‘인연’이 아닐까 싶다”라며 극단 이름의 유래를 설명했다.
청년극단 인연은 창단 이후 총 세 편의 연극을 선보였다. 5ㆍ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거쳐간 사람들의 ‘삶’을 다룬 ‘3[삶]: about3’, 세월호 참사를 다룬 ‘개나리꽃 필 무렵’ 그리고 자살하기 위해 한 여관방에 모인 사람들의 사연을 담은 ‘그때 거기 그 사람들’이다. 배우 이륜관씨는 세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공감’을 꼽았다. “저희는 정이 많은 극단이에요.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이 사람들이 많이 아팠겠구나’ 무대 위에서 공감하고자 했어요. 사회의 상처에 공감하는 공연 무대들을 꾸몄죠.”
사회의 아픔을 무겁게만 다루진 않는다. 공포 영화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에서 배우가 삐걱거리며 일어나 다짜고짜 비트박스를 선보인다. 3[삶]: about3에선 영화 라이언킹의 주제곡으로 유명한 ‘서클 오브 라이프(Circle of life)’에 맞춰 배우들이 동물 흉내를 내며 현대인의 애환을 표현하기도 한다. 배우 이지연씨는 “생각보다 평범함을 추구하진 않는 것 같다”며 “과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동시에 현재의 이야기도 담았는데 힘들지만 손잡고 힘차게 살아가보자 하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지난달 국제개발협력 비정부기구(NGO)인 ‘지파운데이션’을 통해 독거노인과 쪽방촌 어르신에게 연탄을 후원한 인연은 공연 수익을 사회에 전액 기부한다는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배수경씨는 “돈을 벌기보단 관객과 공감하고 싶다는 인연의 초심을 지키고 싶었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저희에게 몫이 돌아온다면 예술에 대한 저희의 신념이 변질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돈이 조금 더 들어오면 ‘그 돈은 어떻게 할 건데’라는 생각이 들 것 같았어요. 세상과 타협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어요”라고도 했다.
내년 2월 네 번째 무대를 준비 중인 청년극단 인연은 스치듯 지나가는 관객들에게도 작은 위로를 주고자 한다. 관객들에게 인연이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냐는 질문에 이륜관씨가 말했다. “모든 관객이 저희 공연을 이해하고 저희와 공감할 순 없을 거예요. 하지만 맛집 같은 극단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늘 찾아오는 단골들만 와도 좋고 어쩌다 한 번 새로운 손님이 와도 좋아요. 무엇보다 어떤 손님이든 저희 공연을 보고 힘든 세상에 작은 위로가 됐으면 좋겠어요.”
김민준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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