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내 스마트 플랫폼으로 비장애인 이용자와 택시기사 소통
26세 송민표 대표 “청각장애인 취업시장 ‘게임체인저’ 희망”
취업시장이 얼어붙었다. 비장애인들도 취직이 어려운 마당에 몸의 일부가 불편한 장애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청각장애인들은 일자리를 구할 때 더 큰 고충을 겪는다고 한다. 송민표(26) 코액터스 대표는 “말도 통하지 않을뿐더러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은 겉모습 때문에 취업시장에서 배려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2017년 보건복지부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각장애인들의 취업률은 31.4%에 불과해 지체장애인(45.9%)이나 시각장애인(43.8%)보다도 낮은 수준이었다.
송 대표가 선보인 ‘고요한 택시’는 청각장애인 일자리의 판을 뒤집었다. 차내 설치된 스마트 기기를 통해 승객과 기사가 하고 싶은 말을 문자로 주고 받을 수 있는 택시 플랫폼을 개발한 덕분이다. 말 없이 단말기로만 소통하는 ‘고요한’ 차내 분위기는 ‘고요한 택시’란 이름의 유래가 되기도 했다.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기술’을 꿈꾸는 송 대표는 “’청각장애인은 서비스직에 종사하지 못한다’는 편견을 뒤집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송 대표가 ‘청각장애인의 삶을 바꾸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는 교내 창업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였다. 2016년 3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송 대표는 우연히 취업시장에서 고충을 겪는 청각장애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말이 안 통한다는 이유만으로 단순 노무직이나 제조업 같이 위험한 업종으로 내몰리는 청각장애인의 현실에 주목한 송 대표는 "소통 문제만 해결이 된다면 청각장애인도 얼마든지 서비스직에 종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해외 사례도 송 대표가 택시업에 주목한 계기가 됐다. 미국과 싱가포르에서 청각장애인은 정식 드라이버로 등록된다. 택시를 모는 청각장애인이 미국 각지에 2,000명, 싱가포르에선 300명에 달한다. 반면 국내엔 청각장애인이 비장애인을 상대로 택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없었다. 송 대표는 “소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국만의 비즈니스 모델을 찾으면 우리도 (택시업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업 비전과 아이템을 찾은 송 대표의 발은 빨라졌다. 따뜻한 동행 복지재단이 주관한 ‘장애인 일자리 창출 공모전’에 입상해 받은 상금으로 운영비를 충당했다. 수도권 인근 택시회사의 문을 일일이 두드려야 했고 부지런히 피드백 과정도 거쳤다. 그렇게 송 대표는 동료들과 함께 지난해 4월 ‘고요한 택시’ 서비스를 시작했다.
소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송 대표가 내놓은 해결책은 ‘스마트 기기와 애플리케이션’이었다. 고요한 택시에 올라타면 안내 음성이 탑승한 손님을 반갑게 맞는다. “안녕하세요. 이 택시는 청각장애인 기사님이 운행하는 택시입니다.”
손님은 뒷자리에 설치된 태블릿PC를 통해 자신의 목적지를 입력한다. 단말기에 설치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손님이 입력한 정보가 기사 자리의 PC로 전송된다. 목적지를 확인한 기사는 가벼운 눈인사를 건넨 뒤 출발한다. 기사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마찬가지로 태블릿PC를 활용하면 된다.
송 대표는 기술 업데이트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하루 평균 200명 정도의 승객이 이용한다”며 “좋은 피드백은 바로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코액터스는 테블릿PC 조작에 서툰 노인 승객들을 위한 ‘실시간 자막 서비스’나 목적지를 지도에 직접 지정할 수 있는 네비게이션 도입도 검토 중이다.
코액터스와 택시회사는 서로 돕는 관계다. 코액터스가 앱과 단말기를 택시회사에 제공하면, 택시회사는 코액터스에게 단말기 이용료를 지불하는 식이다. 코액터스는 기사 교육 또한 책임진다. 비장애인과 같은 자격시험을 통해 청각장애인 택시 운전기사를 양성하고 택시회사에 취업시키는 방식이다. 이렇게 해서 2019년 10월 현재 서울, 남양주 등 수도권 각지에서 13명의 청각장애인 택시기사가 고요한 택시 서비스를 활용해 일하고 있다.
사업을 함께 추진할 택시회사를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서울 시내 웬만한 택시 회사로부터 다 거절 당했다”고 말한 송 대표는 그 이유로 ‘장애에 대한 편견’을 꼽았다. 기본적으로 사고율에 민감한 택시회사들은 “‘듣지 못하는 장애인이 운전대를 잡으면 사고율이 올라가지 않겠느냐’며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이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택시회사들이 ‘고요한 택시’ 제안을 수락한 이유가 있다. 기사가 부족해 경영난을 겪던 택시회사에게 송 대표의 제안은 인력을 충원할 좋은 기회였다. 또한 장애인을 고용한 택시회사는 정부로부터 ‘장애인근로지원금’과 같은 보조금도 받을 수 있었다. 송 대표는 “최근엔 오히려 우리 회사도 하고 싶다는 문의전화가 먼저 걸려오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승객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코액터스는 기사들에게 ‘승객 탑승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안전한 운전과 친절한 응대’를 꾸준히 교육해오고 있다. 실제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한 누리꾼은 “일반 택시보다 더 서비스가 훌륭하다”며 “편안하게 이용해서 감사했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송 대표는 뿌듯함과 보람을 느낀 한 가지 일화도 소개했다. 부모와 동승한 어린 꼬마 아이가 ‘(고요한 택시 덕분에) 장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고 일기장에 썼다. 부모는 해당 내용을 SNS에 개재했다. 송 대표는 “(우리의 사업으로)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이 개선되어 감을 느낄 때 뿌듯하고 보람차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청각장애인 택시 기사 100명 취업을 사업 성공의 첫 목표로 정했다. “한국에선 장애인들이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온 전례가 드문 만큼, 더 많은 청각장애인들에게 일할 기회가 주어지는 게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이렇게 일을 하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사회에 던진 송 대표는 “세상을 아름답게 디자인하는 기술로 앞으로도 계속 청각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김민준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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