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문제 해결 위해 유럽연합 통합제도 마련 시급
처음이 어렵다. 한 사람이 바다에 뛰어들자 두 번째 세 번째 사람이 난간을 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19일간 정박하지 못한 채 지중해에서 표류한 난민구조선 ‘오픈암스’에서 뛰어내린 난민은 최소 14명, 모두 800m가 넘는 거리를 헤엄쳐 육지에 오르려 한 사람들이었다.
단순하게 보면 오픈암스가 2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람페두사섬 항구에 정박하기까지 십 수 일을 표류한 이유는 반난민 정책을 지지하는 이탈리아의 부총리 겸 내무장관이 입항 허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유럽국가들이 난민 수용·관리 절차에 대한 통합 제도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난민사태는 수년 동안 계속된 해묵은 문제다. 2015년 1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유럽으로 유입된 후 매년 난민 수는 감소하고 있지만, 아직도 연 1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매해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도착한다. 지중해 연안국인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에 난민 수용 부담이 쏠리자 유럽연합은 통합 수용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회원국 간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해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말로는 인도주의를 표방하지만 실질적인 책임은 서로 회피하려는 형국이다. 지난 7월에도 프랑스와 독일 주도로 통합 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이 시작됐지만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지 못하고 있다.
합의된 원칙과 제도가 없기에 대규모 난민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각국은 소모적인 외교전에 돌입한다. 이탈리아 정부가 구조선 입항을 불허한 이유도 정박을 허락하면 140명이 넘는 난민을 홀로 부담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구조선의 소속국인 스페인을 비롯한 6개국이 난민을 나눠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분배 비율이나 절차에 관한 합의는 이루지 못한 상황이다.
국제적 기준절차가 없으니 난민들이 국내 정쟁에까지 휘말릴 것은 뻔하다. 무소속 출신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당초 오픈암스의 입항을 허가했다. 하지만 연립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두 당파(오성운동·중도우파연합) 중 우파연합의 수장인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이 이를 거부하면서 구조선은 정치적 알력다툼의 중심에 섰다. 결국 오픈암스를 구제한 것은 입법·행정부와 독립된 검찰이었다. 루이지 파트로나지오 검사는 선박에 사법경찰과 의료진을 파견해 상황을 점검한 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자 탑승객 전원에게 하선을 명령했다.
오픈암스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난민 관련 문제는 오히려 악화될 조짐이다. 그나마 난민에게 우호적인 콘테 총리는 21일 사임했고, 중도우파연합은 물론 진보 성향에 가까운 오성운동 역시 난민 수용만큼은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다. 당장 살비니 부총리의 정적인 오성운동 소속 다닐로 토니넬리 교통부 장관도 스페인 당국에 오픈암스의 선박 등록 취소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무엇보다 유럽연합 차원의 난민 수용 및 관리에 대한 전반적인 합의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는 이상 구조선 표류사태는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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