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시간 0.02… 기존 제품보다 50배 이상 빨라
LG유플러스와 독점 계약“전 세계 제품 중 최고”
#도심 사무실에 앉아서 수십 ㎞ 떨어진 공사 현장의 중장비를 원격 조정한다. 사무실 모니터에는 공사 현장 영상이 실시간으로 전송된다. 대도시 병원에 있는 의사도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화면을 보면서 멀리 섬 지역에 떨어져 있는 환자를 원격 진료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이 발생한 위험 지역 상공에 띄운 드론이 보내는 영상을 보면서 대책을 강구한다.
4세대(4G) 이동통신보다 최대 20배 빠른 5G 시대가 본격화 되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변화들이다. 지난 4월 5G 이동통신이 상용화 됐지만 기지국 부족 등 인프라 미비로 5G 서비스가 아직 완전히 자리잡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5G 시대 핵심인 초저지연ㆍ초고속 영상 전송 서비스 등은 내년 이후 본격화 될 전망인데, 국내 중소기업 쿠오핀이 초저지연 영상 전송이 가능한 반도체 칩과 모듈을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지난 23일 경기 성남시 쿠오핀 본사에서 만난 이상훈 대표는 “우리가 개발한 초저지연 영상전송 반도체를 활용하면 영상 전송 지연시간이 0.02~0.04초에 불과하다”며 “이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자율주행, 중장비 원격조정, 원격의료 등 다양한 5G 서비스를 가능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쿠오핀은 2004년 설립된 국내 대표 통신용 반도체 개발 업체다. 사업 초기 인터넷 공유기 안에 들어가는 통신칩을 처음으로 국산화 한데 이어, 홈 네트워크용 단말 장치 통신칩, 한 개의 영상을 여러 화면에 동시 전송하는 ‘비디오 연장기’ 무선 기술 등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대표는 “인터넷 공유기 통신칩은 당시만 해도 미국의 반도체 업체들이 시장을 100% 장악하던 시절인데, 우리가 기술을 국산화한 이후 시장 점유율을 30%까지 차지했다”며 “2010년 이후에는 영상 전송 기술 칩을 집중 개발해 4K(UHDㆍ울트라고화질) 영상 전송 반도체 칩 시장에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쿠오핀의 반도체 칩으로 5G망을 통해 영상을 전송할 때 전송 지연시간은 최소 0.02초에 불과하지만 기존 제품의 지연시간은 1~3초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쿠오핀 칩은 영상을 이동통신망에서 무선으로 전송할 수 있지만 경쟁사 제품은 로컬의 제한적인 무선망으로만 가능하다.
쿠오핀이 높은 기술력으로 글로벌 영상 전송 칩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다양한 5G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국내 이통사들도 쿠오핀 기술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특히 LG유플러스는 영상전송 칩을 만드는 전세계 업체들의 제품을 시험해 본 뒤 쿠오핀의 기술력이 가장 높다고 판단해 독점 공급 계약을 맺고, 초저지연 고압축 영상 전송 반도체를 공동 개발하는 협력사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쿠오핀의 초저지연 영상전송 반도체 개발 기술이 가장 우수하다고 판단해 독점 제품 공급 계약을 맺었다”며 “내년부터 LG유플러스가 제공하는 스마트팩토리, 자율주행, 원격의료 등 다양한 5G 서비스에서 쿠오핀 반도체 칩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쿠오핀을 설립한 이상훈 대표는 예상과는 다르게 정보통신기술(ICT) 업계가 아닌 자동차 산업계 에서 20여년 경력을 쌓은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그는 지난 2000년 제조업에서 일한 20년의 경력을 바탕으로 인도의 소프트업체 기술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여기서 회사의 배려로 IT 관련 교육을 받으며 관련 산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인도의 한 IT 업체 한국 지사장으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ICT 업계에 발을 디뎠다”며 “이후 통신용 반도체의 시장성을 알게 돼 쿠오핀을 설립하고 통신용 반도체 개발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중소 반도체 업체가 겪는 어려움도 털어놨다.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업체인 쿠오핀은 반도체 제작을 위해 삼성전자나 대만의 TSMC 같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설을 이용해야 하는데, 중소업체가 대형 파운드리 업체로부터 적극적인 생산 지원을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반도체 산업은 설계부터 제조까지 개발 기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기술력을 가진 중소업체라도 대형 업체와 경쟁하기 쉽지 않다”며 “정부가 최근 중소 팹리스 업체 발전을 위해 정책을 펼친다 하니 국내 반도체 업계가 상생하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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