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문재인정부 2년 경제ㆍ노동정책 토론회서 지적
이제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9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년 간의 경제정책에 대해 “재벌개혁을 적기에 추진하지 않아 시기를 놓쳤고, 공공부문 개혁은 제대로 시행되지도 못했다”고 밝혔다.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정책으로 꼽히는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에 대해선 “속도와 방법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추진됐다”고 지적했다. 시장이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정책이 ‘과속추진’되며 경제에 충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의장인 대통령에게 경제정책을 조언하는 헌법상 기구로, 대통령의 ‘경제 싱크탱크(think tank)’로도 불린다.
이 부의장은 이날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2년, 경제ㆍ노동정책의 성과와 과제’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다만 이 부의장은 제이(J)노믹스의 3대 정책기조인 소득주도성장ㆍ혁신성장ㆍ공정경제는 한계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계속 유지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이날 토론회는 국민경제자문회의ㆍ경제사회노동위원회ㆍ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등 대통령 직속 기구 3곳이 공동 개최했다.
◇“최저임금ㆍ주52시간 문제 있었다”
이 부의장은 ‘지난 2년간 한국경제의 회고와 나아갈 길’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당시인 2년 전 한국경제 과제로 △글로벌 경기둔화에 따른 내수부양(확장재정) △비정규직 축소 △대ㆍ중소기업 이중구조 개혁(경제력 집중완화) △복지확대 △혁신역량 강화를 꼽았다. 그는 이런 점에서 혁신 인프라를 강화하고(혁신성장), 성장동력을 내수에서 찾고(소득주도성장),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하는(공정경제) 현 정부의 3대 정책기조는 “옳은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3대 기조가) 새로운 아이디어도 아니고, 모든 나라가 이쪽으로 가고 싶어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성과는 미진했다. 이 부의장은 “경제정책의 주요 목표인 일자리 창출의 성과가 미흡하고, 소득분배 어려움은 지속됐다”고 말했다. 취업자 증가 숫자는 2017년 31만6,000명→지난해 9만7,000명으로 축소됐고, 같은 기간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값)은 4.61→5.47배로 악화됐다. 특히 그는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 “경제에 상당한 충격을 주는 조치임에도 속도와 방법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추진됐다”며 “조금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경제가 가라앉는 가운데 단행된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2년간 약 29%)과 주 52시간제가 사용자의 인건비 부담을 키우며 경제에 충격을 가했다는 의미다.
이 부의장은 재벌개혁에 대해선 “적기에 추진하지 않아 시기를 놓친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 같은 개혁과제는 집권 초에 추진했어야 했는데 뒤로 미루다 실기(失機)했다는 것이다. 실제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등을 골자로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 △대주주 의사결정 전횡을 막는 상법 개정안 △금산분리 규제를 강화하는 금융그룹통합감독법 등 ‘재벌개혁 3종 패키지’ 모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또 공무원 채용 확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 정부 역할 확대와 함께 반드시 병행돼야 할 공공부문 개혁은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기관 임금체계를 호봉제에서 직무급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다.
◇”3대 정책기조, 유지하되 보완”
이 부의장은 향후 정책방향과 관련, “경제정책의 틀을 유지하되, 2년간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한계를 보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당면 과제로는 재정 확대를 꼽았다. 그는 “확장 재정을 한다고 해놓고 제대로 못했다”고 했다. 작년 세금이 예상보다 25조원 이상 더 걷히는 등 경기침체에 씀씀이를 늘려야 할 정부가 되려 수십 조원을 곳간에 쌓으며 ‘긴축정책’을 펼친 것을 꼬집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수석을 지낸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위 위원장도 이날 발표에서 “지난해 재정이 경제지표 개선에 상당한 제약 요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이 부의장은 노후 사회간접자본(SOC) 개ㆍ보수, 기초생활보장 등 복지분야를 중심으로 재정을 확대하라고 권고했다.
중장기적 과제로는 분배 개선과 혁신능력 강화를 꼽았다. “(중장기적으로) 불평등한 분배를 교정하면 내수진작 효과도 거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산성 향상도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부의장은 공공부문 개혁도 강조했다. 그는 “공공 일자리 확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필요하나, (동시에 공공 부문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규 채용 공무원은 직무급을 도입하거나, 과도한 공무원 선호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공공부문 정규직의 혜택을 축소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기업 부담 가중” “복지 지출에만 열중”
한편 이날 토론회에선 정부의 경제정책을 두고 외부 전문가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졌다.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은 “현 정부의 정책 리스트를 조사해보니 기업에 부담을 주는 정책이 27건, 도와주는 정책은 2건”이라며 “기업 심리가 최악이라 ‘이젠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얘기가 쉽게 들린다”고 지적했다.
이인실 한국경제학회 회장(서강대 교수)은 “복지를 적극 확대해야 한다고 하는데 지금 (현재 복지 수준이) 그대로 유지돼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까지 도달하게 되며 후세대 부담이 커진다”며 “결국 향후 복지 수준을 어떻게 할지, 조세 부담은 어떻게 할지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데 그저 지금 돈을 쓰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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