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 초콜릿 ‘트리투바’ 김병현 대표
2일 서울 동대문의 현대시티아웃렛 지하 1층. 나라별 수십 가지 와인들이 진열된 매장 옆에 특이한 판매 가판대가 있었다. 와인과 찰떡 궁합인 이탈리아식 훈제 소시지 ‘살라미’를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듯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살라미가 아니다. 그럴싸하게 살라미 흉내를 낸 화이트 초콜릿이 아닌가. 이름하여 ‘화이트 살라미’다. 포장을 뜯으니 아몬드 등 각종 견과류와 크렌베리, 오렌지 등 건조 과일들이 촘촘하게 박힌 화이트 초콜릿이 들어있다. 썰어먹는 재미는 덤이다. 그런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한 개당 8,500원. ‘프리미엄 수제 초콜릿’이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출시한 ‘화이트 살라미’는 10년 간 수제 초콜릿을 고집해 온 김병현(40) ‘트리투바’ 대표의 작품이다. 초콜릿을 “아트”라고 표현할 정도로 김 대표는 초콜릿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화이트 초콜릿에 들어가는 모든 원료를 제 눈으로 직접 보고 공수한 겁니다. 에콰도르로 날아가 소 젖을 짜서 우유를 내고, 사탕수수 농장에 가서 설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봤지요. 가장 중요한 카카오 농장을 방문해 농민들과 이야기도 나누고요. 왜 프리미엄 수제 초콜릿이라고 부르는지 아시겠지요?”
김 대표는 국내 수제 초콜릿 시장을 개척한 1세대다. 2009년 서울 신사동에 수제 초콜릿 카페와 아카데미를 오픈해 첫 발을 디뎠다. 그는 “그 때만해도 국내 수제초콜릿 카페는 우리 가게와 서울 홍대 인근에 하나, 단 두 개 밖에 없었다”며 “수제 초콜릿을 만들어 판매하는 사람도 10명이 안 됐을 정도로 척박한 시장이었다”고 회상했다.
시장을 개척하는 입장이었던 김 대표도 사기를 당하는 등 힘든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신사동에서 6년간 이어오던 카페 사업도 현재는 접은 상태다. 대신 경기 남양주에 90평(약 298㎡) 부지 초콜릿 공장을 지었다. 그곳에는 카페와 초콜릿 공장 체험 공간도 만들었다.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공장을 방문하는 고객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공장을 고객들에게 공개한 것은 원료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김 대표는 에콰도르, 콜롬비아, 과테말라, 멕시코 등 남미와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지역을 발로 뛰며 좋은 카카오를 공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다 찾은 곳이 에콰도르다. 김 대표는 에콰도르의 한 농장주와 계약을 맺고 질 좋은 카카오를 들여오고 있다.
회사명인 트리투바(Tree to Bar)에는 그의 경영 철학이 고스란히 담겼다. 카카오 나무의 열매부터 초콜릿 바에 이르기까지 전 공정을 책임지겠다는 의미다. 초콜릿을 만드는 사람이 현지에 가서 원하는 카카오 품종을 직접 수입하고, 로스팅부터 초콜릿 제조까지 직접 관리하는 것이다. 그가 ‘카카오 메이커’, ‘카카오 헌터’, ‘초콜릿 메이커’ 등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이렇게 들여온 카카오를 초콜릿 제품으로 만들어 온ㆍ오프라인을 통해 판매도 하고, 초콜릿을 다른 거래처에 공급하고 있다. 화이트 살라미를 비롯해 ‘초콜립스’, ‘아몬드초코’, ‘카카오그래놀라’, ‘카카오 빈’ 등 10여 가지 제품을 회사 홈페이지와 쿠팡, G마켓, 위메프 등 온라인몰에서 판매 중이다. 아몬드초코는 현재 홍콩에 30여개의 직영점을 둔 한 대형마트에 수출하고 있다.
그는 초콜릿 사업에 대한 컨설팅과 메뉴 개발, 브랜드 아이덴티티 작업 등 초콜릿과 관련한 전반적인 업무를 총괄해주는 일도 하고 있다. 요즘 뜨고 있는 서울 성수동의 수제 초콜릿 카페 ‘피초코’는 매장 자리부터 메뉴 개발, 브랜드 아이덴티티 작업 등 전 과정을 트리투바에서 진행했다. 김 대표는 “좋은 입지를 위해 부동산 중개업소까지 뛰어다니며 1년여를 매달렸다”고 했다. 뿐만 아니다. 기업들도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SPC그룹이 운영하는 카페 ‘패션5’와 남양유업의 ‘백미당’은 김 대표가 초콜릿을 이용한 메뉴 개발 및 브랜드 컨설팅을 해준 곳이다. 이른바 ‘배용준 카페’로 불리는 ‘센터커피’도 메뉴에 그의 손길이 닿았다.
김 대표는 원래 초콜릿과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연예계에서 이병헌 황보라 등 배우의 매니저로 7년간 일했다. 이병헌과는 영화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촬영을 함께하며 4년간 동고동락한 사이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 조미애씨가 호주에서 초콜릿 관련 공부를 하며 김 대표를 이끌었다. 그렇게 초콜릿 사업을 한 지 어느덧 10년이 됐지만, 그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초콜릿은 ‘내가 먹는 것보다 선물하는 문화’가 강합니다. 그런 문화를 바꿔보고 싶어요. 제대로 만든 좋은 초콜릿을 자신을 위해 먹는 문화를요. 유럽처럼 초콜릿이 식사대용으로 정착되는 날을 빨리 이루고 싶습니다.”
한 가지 더 물었다. 다시 연예계로 돌아올 생각은 없느냐고. “국내에서 수제 초콜릿사업을 하는 1세대로서 이뤄야 할 일이 더 많다”면서도 “굳이 매니저를 해야 한다면 (이)병헌이 형님이라면 생각해보겠다”며 웃었다. “형과의 좋은 추억이 너무 많아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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