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 비친 세상]
‘왕의 남자’ ‘곡성’ 등 영화 촬영스태프로 17년 일한 A씨는 최근 동업자나 마찬가지인 촬영감독이 병으로 쓰러지면서 일감이 끊겼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려 가족과도 별거하는 등 처지를 비관하던 A씨는 5월 서울 중구 한 주상복합빌딩에서 술을 마시다 홧김에 지하주차장에 불을 질렀다. 3시간여 만에 진화됐지만, 빌딩 내 사우나 이용객 등 150여명이 대피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 돌기둥에 머리를 부딪혔고, 거주민 13명이 연기를 마셔 병원 치료를 받았다.
검찰은 “주거용 건물을 불에 태워 사람을 다치게 했다”라면서 A씨를 현주건조물방화치상 혐의로 기소했다. A씨 측은 “만취해 심신미약 또는 병적인 충동 상태에서 우연히 범행을 저질렀다”고 호소했다. 형법상 주거용 건물에 불을 지른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 이로 인해 사람이 다친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심은 “650여명이 거주하는 아파트와 300여 점포로 구성된 지상 17층 규모 주상복합아파트에 대한 방화 범죄로 위험성이 매우 크며, 조기에 진화되지 않았다면 더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라며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자동차 문이 열렸는지 확인하며 방화 대상을 물색한 것으로 보아 심신미약 상태는 아니었다”고 봤다. 또 양형 가중 요소인 ‘다수의 인명 피해를 발생시킨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인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부장 차문호)는 최근 “술에 취해 주차장에 쓰러져 자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처음부터 방화를 계획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간 것은 아니다”라며 징역 3년으로 감형했다. “화재가 확대되고 연기가 건물 안으로 쉽게 유입된 데에는 스프링클러와 자동화재탐지설비가 장기간 작동하지 않았던 점도 원인으로 작용했다”라면서 “대부분의 피해자가 입은 상해는 연기 흡입 정도로 양형 감경 요소인 ‘실제 피해가 경미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봤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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