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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일기장 펼친 듯 내밀한 풍경... 아날로그 시절을 소환하다

입력
2018.11.16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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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출판사 제공
사계절출판사 제공

11월 중순, 가을 낙엽들도 사라져 스산해지는 거리에 부쩍 쌀쌀해진 바람이 분다. 이 해도 한 달 반 남짓 남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초조해져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계절의 질감을 어떻게 느끼고 살아왔는지 되돌아보는 것은 한가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매일같이 소화해야 하는 일정과 약속들, 집안의 대소사…. 출장이라도 가야 하면 차를 운전하거나 KTX 기차를 타고 하루 만에 지방을 주파하고 돌아올 수도 있다. 해외로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떠나서도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있으면 국내에 있는 것과 다름없이 업무를 볼 수가 있다. 편리한 인터넷 환경이 어찌 보면 일상이라는 연장선에서 도망칠 수 없는 족쇄가 될 수도 있겠다. 삶의 활동 폭은 넓어졌지만 정보들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공유되는 사이, 정작 자신을 반추해 볼 수 있는 여백의 시간들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여기 작가의 일기장을 펼쳐 든 것 같은 내밀한 풍경들이 다소 우울한 빛으로 그려진 그림책이 있다. 그림을 그린 요안나 콘세이요는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그림책 작가다. 서정적이면서도 우수 어린 풍경들을 담아내는 폴란드 출신 화가이다. 글은 맨부커상을 수상한 올가 토카르축이 썼다. 화가는 오래된 종이의 질감을 살리고자 스탬프 숫자가 찍혀있는 낡은 회계장부에 연필과 색연필로 드로잉을 했다. 책갈피 사이에 그려 넣은 빛 바랜 사진들과 편지들…. 익숙한 오브제들이 아날로그 시절의 추억들을 소환한다. 왼쪽 페이지는 소년의 어린 시절을 펼쳐 놓은 공간이다. 눈 내린 공원풍경, 벤치에서 자신을 안아주던 부모, 춤추는 마을사람들, 파도에 밀려온 나뭇가지를 가지고 놀던 바닷가, 황혼 빛이 비껴 드는 열차 차창 안…. 한편 오른쪽 페이지는 한 남자가 테이블에 앉아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의 흐름을 말해주듯 남자의 머리와 수염은 덥수룩해 지고 화분에는 천천히 식물들이 자라난다.

사계절출판사 제공
사계절출판사 제공

잃어버린 영혼

올가 토카르축 글∙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이지원 옮김

사계절 발행∙48쪽∙1만8,000원

그림책의 주인공은 반복된 일상 속에서 바쁘게 살고 있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남자다. 출장 길에 오른 그는 호텔방에서 숨이 막힐 듯한 기분에 깨어나 자기가 누구인지, 여기 왜 와있는 것인지, 자신의 이름마저도 기억해내지 못한다. 현명한 의사가 내린 진단은 ‘영혼상실’이다. 그의 영혼은 주인의 삶의 속도를 미처 쫓아 가지 못해 길을 잃고 어디선가 떠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특별한 처방은 없다. 그저 영혼이 다시 찾아와 주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라고 했다. 남자는 도시 변두리 작은 방을 구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영혼을 기다리기 시작한다. 어느 날, 창밖에 한 아이가 찾아온다. 긴 여정에 지치고, 세상에 상처받고 할퀴어진 아이가 마침내 그를 만나러 온 것이다. 둘은 가만히 서로를 응시한다. 그립고 따듯한 눈빛으로.

‘누군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 세상은 땀 흘리고 지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그리고 그들이 놓친 영혼들로 가득 차 보일 거예요….’

바쁘게 내달린 시간만큼 나의 영혼도 나를 놓치지 않고 따라와 있을까 가끔씩 뒤돌아보자.

만일 보이지 않는다면 당황하지 말고 어디선가 헤매며 애타게 주인을 찾고 있는 21g이 찾아올 수 있도록 차분히 앉아서 기다려 보자.

소윤경 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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