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정말 국가가 책임지고 있습니까] (하) 여전한 돌봄 고통
“중증치매인 엄마와 24시간을 함께 있으면 숨이 막히는 순간이 때때로 찾아와요. 고왔던 엄마가 거친 욕설을 쉴 새 없이 내뱉을 때, 밥 대신 막걸리만 드실 때, 갓난아이를 보며 막무가내로 소리 지를 때…. 이상행동이 절정에 달할 땐 그저 좌절할 뿐입니다.”
서울에 사는 이순영(59ㆍ가명)씨는 알츠하이머형 치매를 앓는 친정 어머니(85ㆍ장기요양 2등급)를 8년째 가정에서 돌보고 있다. 이씨의 친정 아버지도 치매를 앓았는데 주간보호센터에 다녀오다가 넘어지면서 뇌출혈이 발생해 몇 달 전 돌아가셨다.
이씨는 진행 단계에 따라 시시각각 증상이 변하는 치매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치매 초기 어머니는 평소 입에 대지 않던 술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정신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고, 중기로 접어들며 공격성이 강해져 이씨를 때리거나 옷을 잡아 뜯는 일이 많았다. 현재 어머니는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운 상태다. 음식도 씹기 어려워 하루 종일 두유만 먹을 때도 있는데 누워만 있으니 대소변 처리가 가장 힘든 일이다.
치매를 간병하는 가족은 ‘숨겨진 환자’라 불릴 정도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는다. 이씨도 “엄마의 이상행동이 잦아들지 않을 땐 물리적으로라도 엄마와 분리되고 싶을 때가 있다”고 했다. 정부가 치매국가책임제 일환으로 치매가족휴가지원제도를 대폭 확대한다고 했을 때 기대가 컸다. 치매노인을 돌보는 가족을 위해 1년에 6일 범위 내에서 국가가 단기보호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거였다. 이씨는 “고작 6일에도 환자 가족들의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던 건 그만큼 휴식이 절실했다는 애기”라며 “하지만 내가 사는 곳은 엄마를 맡아줄 단기보호센터가 없고 24시간 돌봐줄 요양보호사도 구하기 어려워 제도는 무용지물이었다”고 말했다.
◇ 치매 지원 늘어도 혜택 체감 어려워
치매국가책임제가 환자 가족들의 마음을 울린 것은 ‘돌봄’의 짐을 국가가 나누겠다고 나섰기 때문. 하지만 1년이 넘게 지나도 가족들은 돌봄의 굴레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치매가족휴가지원제도가 확대됐지만 이순영씨 사례처럼 지역에 단기보호센터가 없어 활용 자체가 불가능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 2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린 한 청원자도 “창원시 내에 치매환자를 맡길 수 있는 단기보호센터가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을 닫아 가족이 휴식시간을 갖고 싶어도 어머니를 맡길 곳이 없다”며 “아파서 병원에 입원할 때도 어머니와 함께 입원실에서 지내야 했는데 울고 싶은 심정”이라고 호소했다. 작년 말 현재 단기보호센터는 전국에 218개소. 2015년 299개소, 2016년 267개소 등 해마다 크게 줄어드는 추세다. 복지부 관계자는 "대신 24시간 방문요양기관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가족들은 "24시간 돌봐줄 요양보호사를 구하는 일이 더 어렵다”고 말했다.
65세 이상 치매환자는 장기요양제도 인정등급(1~2등급 시설입소, 3~5등급 재가급여)에 따라 요양서비스를 차등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정부는 치매국가책임제를 시행하며 사각지대에 있던 초기 치매환자의 증상 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월 12회 주간보호센터 이용이 가능한 인지지원등급을 신설했다.
하지만 가족들이 절실히 원했던 건 등급 확대보다 서비스 이용시간 확대였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경증치매인 시어머니를 돌보는 박민옥(62ㆍ가명)씨는 “경증환자여도 어머니를 홀로 두는 것은 걱정되는데 일주일에 사흘 센터를 보내면 이틀은 돌봐줄 사람이 마땅치 않다"며 "방문요양보호사를 부를 수 있는 4등급 이상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 중증일수록 돌볼 곳 없는 현실
치매환자와 가족들은 지역사회에서 적절한 돌봄 서비스를 받기 어려워 요양시설이나 요양병원 입소를 고려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충남 부여군에 사는 김준호(60ㆍ가명)씨도 치매(3등급)를 앓고 있는 어머니(87)를 가정에서 돌보고 싶었지만 요양병원에 모시고 있다. 재가요양보호사를 하루 3시간 부를 수 있는데, 농사를 짓는 김씨가 집을 비우는 시간은 그보다 훨씬 길기 때문이다. 김씨 어머니는 시설이용이 인정될 만큼 거동이 불편한 상태가 아니어서 장기요양제도로 시설 이용을 할 수 없다. 차선책으로 요양병원에 보냈고 치료 비용과 간병비로 매달 70만원을 내고 있다. 돌봄이 부담돼 ‘사회적 입원’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상행동이 심해 돌봄 부담이 큰 치매환자 가족일수록 이용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 최강훈(47ㆍ가명)씨는 4년 전부터 환시가 보이는 루이소체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가정에서 돌보기 어려워져 요양원에 모셨지만 두 달 만에 퇴소 권유를 받았다. 최씨는 “요양원에 치매 노인만 지내는 게 아닌데 어머니가 주변 분들을 꼬집고 할퀴거나 밤에도 배회 행동이 심해 다른 노인들의 민원이 많다더라”며 “어머니 증상을 설명하면 돌봐줄 곳을 찾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중증 환자를 요양시설이 꺼려하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몇 달 전까지 지역의 한 요양원 시설장으로 근무한 강병기(51ㆍ가명)씨는 “요양병원에서는 수면제를 처방할 수 있지만 요양원은 불가능하다”며 “그럼에도 돌보기 힘들면 결국 퇴소를 권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치매전담시설 부족하고 민간시설 믿기 어렵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치매국가책임제에서 치매전담형 장기요양기관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갈 길이 멀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국의 치매전담형 시설은 지난 8월 기준 작년 말에 비해 △노인공동생활가정 3개소(14명 수용) △노인요양시설 40개소(687명 수용) △주야간보호시설 25개소(596명 수용)가 각각 늘어나는 데 그쳤다. 올해 개소 목표치의 40% 수준이다.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를 지켜보면서 치매환자 가족들도 ‘노인요양기관을 믿을 수 없다’는 불안이 커지지만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노인요양기관은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운영비의 80%를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수가로 받는다. 복지부가 올해 상반기 요양기관 320곳을 조사했더니 94.4%(302곳)가 허위청구, 급여지급 위반 등으로 적발됐다. 치매환자 가족인 황교진(48)씨는 “시설들의 비리가 끊이지 않고 돌봄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가족들이 죄책감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며 “국가가 뭘 책임지고 있는 건지 체감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오세훈 기자 comingh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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