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몽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된 것은 ‘하몽하몽’이라는 영화를 통해서였다. 꼽아보니 무려 30여년 전, 어리디 어린 페넬로페 크루즈와 하비에르 바르뎀의 싱그러운 육체에 우선 넋부터 빼앗겨, 하몽이 어떤 맛일지 상상하는 일까지는 나아가지는 못했었다. 다만 ‘나의 하몽’이라는 말이 ‘너를 욕망한다’의 의미,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하몽만큼’이라는 답변, 성적 쾌감의 정점에 올랐을 때 터져 나오는 ‘하모나하모나’와 그에 응답하는 ‘하몽하몽’. 달콤한 허니 따위와는 체급과 등급이 다른 성적인 언어. 짐작컨대 하몽은 굉장히 육감적인 맛일 터였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서는 굳이 찾아 먹어보자는 생각이 사라져 버렸다. 거기에서 하몽은 언어라기보다는 살인무기였다.
여차저차한 치정의 과정은 일단 생략하자. 널 죽이겠어, 달겨드는 호세. 그에 맞서 싸우는 라울. 호세와 라울이 각각 무기로 손에 쥔 것은 하몽. 그런데 하필이면 호세가 잡은 것은 거의 다 잘라먹고 남은 앙상한 하몽 뼈다귀였고, 라울이 방어하다 잡은 것은 창고에 걸려 있던 새 하몽이었다는 것. 하몽 다리 하나 무게가 10kg에 육박한다는 걸 감안하면, 처음부터 승패가 정해진 싸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회초리와 몽둥이의 대결. 감자오믈렛을 좋아하는 우유부단 마마보이 대 하몽과 마늘로 단련된 야생의 사나이와의 대결. 만약 호세가 뼈다귀 하몽이 아니라 튼실한 하몽을 무기로 삼았더라면, 그 얽히고설킨 치정의 비극적 결말을 피할 수 있었을까? 돼지 뒷다리에 머리통을 맞아 삶을 마감한 인생이라니. 어쨌거나 입맛 싹 사라지는 결말이었다.
하몽은 저장식품이지만 전투식량이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휴대성이며 간편성이며 영양공급 면까지 염장건조고기만 한 게 어디 있겠는가. 말안장에 걸어놓고 다니다가 배고프면 쓰윽 쓱 썰어 먹고, 살을 다 발라먹고 남은 뼈다귀들은 푹 고아 국을 끓여먹을 수도 있으니. 뼈다귀탕에 대해서는 하몽선생에게서 들었다. 다리 하나를 사서 하몽커팅을 배우고 난 다음이었다. 친절하게 뼈다귀를 잘게 잘라 포장해주면서 하는 말. 한 반나절 푹 끓여, 뼈에 붙은 살이 다 우러날 거야, 거기에 채소를 넣고 매운 파프리카 가루로 맛을 내면 아주 기가 막혀, 감자 양파 이집트콩 뭐든 괜찮아, 내 어머니는 아욱을 넣고 끓이지, 한번 해봐, 레알 하몽하몽이야. 설명을 들으니 그야말로 감자탕. 싸준 하몽 뼈다귀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친구 어머니에게 드렸고, 그녀는 정말 신선한 뼈다귀를 가져왔다며 진심으로 반겨주었다. 아, 아욱 넣고 끓여달라고 부탁이나 한번 해볼걸.
그러고 보니, 산초가 가장 맛있게 먹었던 술안주는 다름 아닌 하몽 뼈다귀였다. 총독직을 반납하고 바라토리아섬을 떠나왔을 때, 순례자 무리에 섞인 변장한 이웃사람과 마주친다. 그는 기독교로 개종한 무어인으로 국왕의 추방령에 따라 고향에서 추방돼 아프리카와 독일 프랑스 등등 전전하다가 고향이 그리워 변장을 하고 돌아온 사람이다. 순례자와 추방자와 벌거벗은 통치자의 만남. 그들은 음식을 꺼내 풀밭 위에 술상을 차린다. 빵, 소금, 호두, 잘게 자른 치즈, 캐비어, 물기가 없지만 심심풀이로 먹기 좋은 올리브, 그리고 ‘씹어 먹을 수는 없어도 빨아먹기에는 좋게 생긴 매끈한 하몽 뼈다귀’ 그들은 한동안 가죽 술부대 주둥이에 입을 댄 채, 하늘을 향해 총을 조준하는 것처럼 들어올리고, 머리를 이쪽저쪽으로 흔들며 흥겹게 술을 마신다. 술 부대가 바싹 말라붙을 때까지. 얼마나 쓸모가 많은가, 하몽 뼈다귀는. 쪽쪽 빠는 것으로 술맛을 돋울 수도 있으니. 한 다리를 돌려가며 빨아먹었는지, 각자 한 다리씩 들고 빨아먹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언젠간 한번 해볼 테다. 한 손엔 뼈다귀를 또 한 손엔 술병을 잡고, 번갈아 쪽쪽. 머리를 흔들. 다음날 해장은 뼈다귀탕으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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