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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비친 세상] 통장 빌려준 사람도 보이스피싱 피해 배상책임 있다

입력
2018.08.27 17:24
수정
2018.08.27 18:5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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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지모(32)씨는 2016년 10월 ‘수고비로 하루 200만원을 주겠다’는 구인광고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H사에서 세금을 줄이기 위해 판매대금을 대신 입금 받아 회사에 전달해 줄 사람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지씨는 H사가 실제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문자메시지에 적힌 오모 과장 연락처로 전화해 자신의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3일 뒤에는 오 과장 지시에 따라 3차례에 걸쳐 3,270만원을 인출해 H사 직원이라는 김모씨에게 직접 전달했다.

지씨는 돈을 전달한 다음날 은행으로부터 전화를 받고서야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된 사실을 알게 됐다. 수고비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H사 직원이라던 인출책 김씨는 경찰에 붙잡혀 지난해 5월 2심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됐다. 단순 통장 대여자인 지씨는 참고인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보이스피싱 피해자 김모씨는 “지씨도 사기를 방조한 불법 공동행위자로 피해액 2,000여만원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지난해 3월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단순 통장 대여자인 지씨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보고 피해자 김씨 청구를 기각했다.

2심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언론 보도가 많아, 다른 사람에게 그런 용도로 계좌를 빌려줄 경우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될 수 있음을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지씨가 입금된 돈을 직접 출금해 인출책 김씨에게 전달해 범행을 용이하게 했다"라며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 피해액 2,000여만원의 80%인 1,600만원 상당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지씨가 범행 당시 성인인 점 ▦예정된 수고비가 일당 200만원으로 지나치게 많은 점 ▦보이스피싱 범죄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불법 행위에 사용될 것임을 알았던 점 ▦회사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인출한 돈을 전달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지씨의 상고로 대법원이 사건의 최종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정반석 기자 basen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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