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버, 상사의 성희롱 묵살” 글 올려
창업자 캘러닉 등 20여명 해고 촉발
연예∙정치계 등 미투 운동 번져
성폭력 전력 거물들 사퇴∙해고
2017년은 전 세계적으로 성폭력과 관련해 전례 없는 폭로가 이어진 해였다. 그 결과 할리우드 거물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이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쫓겨났고, 트렌트 프랭크스 미 공화당 하원의원과 앨 프랭컨 민주당 상원의원 등 현역 정치인들이 잇따라 사퇴를 선언했다. 언론계에서는 미 CBS와 NBC 간판 앵커가 해고됐다.
이 같은 흐름의 시작엔 수전 파울러(26)가 있다. 미국의 차량공유서비스 업체 ‘우버’ 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던 파울러는 우버 내 성희롱ㆍ성차별 문화를 폭로, 공동 창업자 트래비스 캘러닉까지 몰아냈다.
지난 2월 파울러는 자신의 블로그에 ‘우버에서 겪은 아주, 아주 이상한 한 해를 회고하며’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이 글에서 파울러는 상사가 팀에 합류한 첫날 성관계를 제안해 회사 인사팀에 알렸지만, 묵살당한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당시 우버가 꽤나 큰 회사였기 때문에 이런 일을 처리하는 데 일정 부분 기대가 있었지만 돌아온 건 실망뿐이었다고 말했다. 인사팀과 회사 경영진이 상사의 행위가 명백한 성희롱이라 하더라도 처음 생긴 일인데다, 상사의 업무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처벌을 하기 어렵다는 말을 되풀이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성희롱이 처음 발생했다는 부분도 거짓말이었다. 파울러는 회사에서 단체로 가죽재킷을 맞추기로 했는데 여성 직원의 수가 적다는 이유로 여성용 재킷은 주문하지 않기로 한 성차별 사례도 함께 폭로했다.
파울러의 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번지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에 따라 우버 내부적으로는 성희롱 조사가 진행돼 20여명이 해고됐고, 평소 여성혐오 및 성희롱 발언으로 문제가 됐던 캘러닉도 투자자들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쫓겨났다. 특히 캘러닉은 2013년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야유회 때 직원간 성관계를 부추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추가로 밝혀지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우버의 투자자인 프레다 카포르 클레인은 “파울러의 글이 전환점이 됐다”라며 “그의 글을 통해 (우버가) 선을 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과감한 결정(CEO 교체)을 내릴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변화의 물결은 우버 밖으로 퍼져갔다. 우선 실리콘밸리에 있는 기업들의 성차별ㆍ성폭력 문제가 수면 위에서 다뤄졌고 문제의 인물들은 회사에서 짐을 싸야 했다. SNS에서는 성폭력 피해를 공개하는 ‘미투(Me, tooㆍ나도 당했다)’ 캠페인이 확산되면서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지난 7월 자신이 겪은 폭력을 온라인을 통해 공개한 한 여성 기업인은 “파울러는 롤모델이었다”라며 “그녀의 글을 통해 우버에서 있었던 일을 알지 못했다면 내가 겪은 일을 폭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녀의 폭로가 있었기에 자신도 부당한 일에 대해 밝힐 용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파울러를 ‘올해의 인물’로 지정한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지금까지 여성들이 수년간 피해 사실을 말해왔지만 믿지 않는 분위기였고 바뀌는 것도 없었는데, 올해부터는 그런 기류가 완전히 바뀌었다”며 “파울러의 폭로로 여성들이 직장에서 받는 대우가 개선될 기회가 생겼다”고 평가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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