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 미국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책이라지만, 그에 못지 않게 우리나라도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미국의 반지성주의’(교유서가 발행)는 뉴딜 이후 불어 닥친 매카시즘 광풍, 그리고 1952년 공화당의 대선 승리라는 우경화 현상을 ‘반지성주의’의 관점에서 설명한 책이다. 출간 이후 퓰리처상 등 여러 상을 휩쓴 고전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 역사와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는 책이어서 “많이 언급되지만 번역되긴 힘든 책”으로 꼽혔다. 이런 책일수록 시간이 지나면 번역될 가능성은 더 떨어지는 셈이다. 번역가 유강은(48)씨는 2년여의 시간을 매달렸다.
역시나 쉽진 않았다. “내용 자체만으론 아주 흥미진진하지만 역사적 연원을 더듬어가는 책이에요. 옛 역사의 사고방식을 추출한 뒤 그게 지금 현시대에 갖는 의미를 풀어내는 방식이죠. 가령 기독교 근본주의를 분석하기 위해 18세기 미국 기독교계의 여러 사건에 대해 얘기하는데, 저자는 참 손 쉽게 해내거든요. 긴 역사의 유장한 흐름을 한 호흡으로 잡아내는, 그 호흡을 살려내는 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이 책에 비치는 한국의 모습도 흥미로웠다. “가령 미국 기독교계는 외따로 떨어진 서부개척민들을 상대로 순회 전도사가 돌아다니는 형식으로 전도합니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유럽과 달리 부흥집회, 통성기도 같은 순간적 열광이나 카타르시스 쪽으로 기울거든요. 우리 교회의 모습과도 별반 다르지 않지요.” 이외에도 시민에게 라틴어교육 대신 농사기술을 가르쳐야 한다는 실용주의의 승리, 유럽식 교양에 대한 경멸, 현세적 성공에 대한 찬양, 자수성가형 인간에 대한 예찬 등도 닮아 있다.
유씨는 번역계에서 국제문제 전문 번역가로 알려져 있다. 도올 김용옥의 책 ‘여자란 무엇인가’에 반해 종교학과에 진학했다. “그 때 놀기만 한 걸 정작 번역가가 된 지금은 뼈저리게 후회한다”고 웃으면서도 그 당시 꾸준히 관심을 가졌던 건 다자간 무역협상 같은 국제관계 문제였다. 이상하게 관심이 쏠렸다.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같은 진보 단체 활동가로 지내기도 했다. “요즘과 달리 당시에는 괜찮은 번역서가 없어서” 필요한 책이 생길 때 이런저런 번역을 손수 했다. 그러다 2002년 미국의 진보지식인 하워드 진의 자서전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를 번역하면서 ‘본격 번역가’가 됐다. 유럽 좌파의 150년 역사를 집대성한 ‘더 레프트’, 하워드 진이 쓴 ‘미국민중사1ㆍ2’ 등이 그간 내놓은 유씨의 번역서다.
알려졌다시피 번역가의 삶은 팍팍하다. 유씨는 그걸 택시운전사에 비유했다. 손님이 끊임없이 갈아타야 하듯, 번역가 역시 “1년에 3~4권씩 작업하되 딴 생각할 틈 없이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번역이 좋다. 유씨는 확언했다. “해보세요. 정말 재미있어요.”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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