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를 하면서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편집이 출판을 포괄한다. 출판문화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기성의 틀을 뛰어넘는 다양한 편집 실천들이 일어서서 출판을 새롭게 한다. 올해는 특히 ‘작은 책 열풍’이 거셌다.
‘착한’ 가격에 ‘예쁜’ 디자인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함으로써 주머니 가벼운 청년들을 동네서점으로 끌어들인 ‘쏜살문고’, 10대 초반 아이들이 독서 절벽을 넘어서 이야기의 장대한 대지로 들어서도록 해 주는 ‘소설의 첫 만남’, 1인 출판사 세 곳이 힘을 합쳐 하나의 시리즈물을 만들어 가는 중인 ‘아무튼 문고’가 처음부터 치열한 논의에 올랐다.
한편, ‘추사’라는 한국문화의 거목을 오랜 노고 끝에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데 성공한 최완수의 ‘추사명품’도 출판의 여전한 품격을 보였다는 점에서 마땅한 주목을 받았으며, 딱딱한 통계의 나열에 그치기 쉬운 이 시대의 청년문제를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청춘의 가격’도 당연한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아무튼 문고’가 다른 어떤 편집 실천보다 더욱 도전적이고 참신하다는 엄연함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문고’나 ‘총서’ 같은 시리즈물은 처음부터 대규모 자본을 투여해야 하는 데다 빠른 속도로 목록을 확충해 가야 하므로 자금이나 인력에 여유가 없는 소(小)출판사에서 시도하기 힘든 것이 상식이다. ‘아무튼 문고’는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의 협업을 통해 이러한 난점을 극복하는 데 성공했다.
여러 출판사가 역량을 한데 모아 ‘따로 또 같이’ 출판하는 모델은 오래 전부터 소출판의 대안으로 제시되어 왔다. 하지만 콘텐츠 차원까지 공유하면서 이 모델을 실현에 옮긴 것은 한국 출판사상 초유의 기념비에 해당한다. 게다가 이 문고에 속한 책들 하나하나는 ‘라이프 스타일 인문학’으로 불릴 만한 깊이와 통찰을 담고 있어 명실상부한 기쁨까지 준다. 두고두고 독자들 사랑을 받을 젊은 필자들의 대규모 등장이 반갑고, 이들을 발굴하고 책으로 이끄는 데 정성을 다했을 편집적 노고가 고맙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