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조선의 소는 극동 지방에서 가장 몸집이 컸다. 1885년 러시아의 다데슈칼리안 공후는 조선산 황소를 보고 “힘과 인내력이 뛰어난데다 몸집도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힘 좋고 덩치 좋은 조선한우는 세조 7년(1461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도입한 물소와 전통 한우를 교배한 결과물이다. 김동진 한국교원대 강사는 조선시대가 소 품종 개량에서 “가장 극적인 성공을 거둔 시기”라고 말한다.
그의 저서 ‘조선의 생태환경사’(푸른역사 발행)는 생태학의 렌즈를 통해 본 조선사다. 당대 왜 호랑이의 씨가 말랐는지, 소의 덩치는 어쩌다 커졌는지, 문익점의 목화씨는 어떻게 산림을 밭으로 바꿨는지 등 사료 분석을 통해 조선의 발전상을 조망한다. “조선은 늘 정체되고 낙후한 사회로 묘사됩니다. 이는 일본의 도움 없이는 조선의 근대화가 불가능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직결됩니다. 그러나 사료에 따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책은 식민사관에 대한 반박에서 출발했다. 한국사 국정교과서 문제로 떠들썩했던 2015년, 선배 연구자와 식민사관 문제에 대해 논의하던 그는 생태환경 연구를 통해 그 오류를 밝혀야겠다고 결심했다. “한 시대를 제대로 알려면 당대 핵심산업을 봐야 합니다. 조선한우가 그렇게 클 수 있었던 건 품종개량술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삼 재배술이나 발효기술도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활발하고 역동적이었던 사회를 정체됐다고 하는 건 황당하고 편협한 주장입니다. 이를 반박하기 위해선 정확한 데이터 분석이 우선돼야 했습니다.”
그러나 3년에 가까운 원고 집필 기간은 저자에겐 암흑 같았다. 문화ㆍ예술계 블랙리스트는 역사학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고, 식민사관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연구에 지원을 받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는 지원을 포기하고 강사 월급과 아내가 주는 돈을 받아 연구에 매진했다. 원고를 넘긴 건 지난해 9월이다. “역사학자로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했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진실에 의해 돌아가고 그걸 밝히는 게 학자의 사명이라 생각하며 책을 썼습니다.”
몇 달 뒤 상황은 급변했다. 지난해 12월 9일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고 올해 3월 10일 대통령이 탄핵되는 사이, 2월 11일 책이 출간됐다. 그는 “정권이 이렇게 빨리 무너질 줄 몰랐다”고 말했다. 책이 거센 반박에 부딪칠 거란 예상과 달리 반응은 호응 일색이었다. 그는 애초에 주제로 삼았던 8가지 중 4개를 이번 책에 소화하고, 나머지를 차례로 펴낼 예정이다. 내년 3월에 나올 ‘소고기의 문화사’(가제)에선 조선인들의 유난했던 소고기 사랑을 분석한다. 그는 이념 싸움으로 뜨거운 한국 사회에 대해 “학자들이 제 몫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념에 따라 적당히 끼워 맞추고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일이 학계에 횡행합니다. 국민은 학자의 말이라니 믿고 또 그걸 갖고 싸우죠. 하지만 거짓말을 가지고 싸우는 게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학계가 먼저 자성하길 바랍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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