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2003)은 이미 고전이 됐다. 21세기에 나온 모든 한국영화들 중 이 땅에서 가장 넓고 깊게 사랑 받은 작품을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다른 경쟁작을 쉽게 떠올릴 수 없을 것이다. '괴물'(2006)은 기념비적인 충무로 오락영화였다. 1,3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초대형 히트작일 뿐만 아니라, 개성 넘치는 질감이 위력적인 양감에 절묘하게 어울린 작품이기도 했다. 관객에 따라서는 '플란다스의 개'(2000), '설국열차'(2013), '옥자'(2017)라고 답할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편씩 차례로 다시금 곱씹어볼 때, 결국 내게 봉준호 감독의 최고작은 '마더'(2009)가 아닐까 한다. '마더'는 걸작이면서 괴작이다. 횃불 대신 단검을 들고 온 이 어둡고도 매혹적인 이야기는 기어이 마음의 현을 몇 개 끊어내고 나서야 끝이 난다.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이 검은 우물 같은 영화에는 봉준호의 미학적 야심이 시종 선연하다.
김혜자라는 이름의 모성장르 자체를 파격적으로 변주하는 이 작품은 그녀의 춤을 통해 열리고 닫힌다. 적잖은 영화들이 수미쌍관의 형식으로 솜씨 좋게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마주 세운다. 하지만 그녀의 독무로 시작해서 그녀들의 군무로 끝나는 '마더'만큼 오프닝과 엔딩이 소름 끼치도록 탁월하게 조응하는 한국영화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마더’ 오프닝 독무
억새풀밭 사이로 황망하게 걷던 한 여자가 갑자기 멈춰 선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북소리가 들리고 기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몸을 천천히 뒤채며 홀로 어깨춤을 추기 시작한다. 표정은 넋이 빠진 듯 멍해 보이는데 동작은 점점 커진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풀처럼 두 팔을 들어올려 흔들다가 한 손으로 눈을 가리는 순간, 입가에 알 수 없는 웃음이 번진다. 이렇게 보지 않을 수 있으니 기쁘다는 듯이. 그러다 그 손으로 입을 가리며 춤을 출 때는 표정이 기묘하게 굳는다. 이제 말할 수 없으니 끝장이라는 듯이.
그녀에게 그 손은 한약재를 작두로 써는 노동의 손이고, 침을 놓아 낫게 해주는 치유의 손이며, 누군가의 피를 묻히는 폭력의 손이고, 허공 속을 허위허위 젓는 춤추는 손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와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느덧 춤이 그친다. 그녀는 그 손을 자신의 옷 사이로 무심히 넣어 감추려 한다.
이 장면은 후반부에 한번 더 등장하는데, 사실 그녀는 그때 춤을 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더'의 오프닝에서 춤을 추는 그녀를 오래도록 판타지 장면처럼 보여주었던 것은 이 영화에 기이한 무속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춤은 이야기보다 먼저 시작해야 하고, 이야기보다 늦게 끝나야 한다.
‘마더’ 엔딩 군무
모두들 통로로 나가서 신나게 춤추는데, 관광버스 좌석에 그녀만이 홀로 앉아 있다. 그러다 나쁜 기억을 잊게 해준다는 허벅지의 자리에 그녀 스스로 침을 놓자 갑자기 세상의 모든 소리가 일거에 사라지고 정적만이 남는다. 하지만 첫 장면에서와 똑같은 북소리가 들리고 기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면 그녀는 일어서서 춤추는 다른 여자들에게로 합류한다.
춤추는 여자들은 강렬한 석양 속에서 실루엣이 되어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뻗어 올려 흔들어대는 손들은 이제 다시 감춰질 수 있을까. 그녀는 이제 그녀들이 된다. 격렬하게 흔드는 춤사위가 격렬하게 흔들리는 카메라 앵글 속에서 어지럽게 뒤섞여 모두가 한 덩어리처럼 보일 때, 영화는 불현듯 막을 내린다.
드넓은 벌판의 독무로 시작해서 좁디 좁은 관광버스 안의 군무로 끝나는 '마더'는 그 자체로 위무의 거대한 굿판이었을까. 그렇게 가장 속된 몸짓이 해원과 망각의 가장 성스러운 제의가 되는 순간, 어느 기막힌 비극 하나는 한국인들의 한스러운 삶 전체로 녹아 들어간다.
이동진 영화평론가〮B tv '영화당'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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