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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 타란티노 영화 대사

입력
2017.06.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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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픽션(1994)

액션은 짧고 간결하게

이야기는 최대한 수다스럽게

●바스터즈-거친 녀석들(2009)

20분의 대화와 15초의 총격전

유머러스한 대사가 긴장 극대화

●장고-분노의 추격자(2012)

“악수를 해야 거래가 끝나는 거요”

평범한 대사로 보이지만 으스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첫 번째 영화 ‘저수지의 개들’(1992)을 보던 날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영화는 남자들의 수다로 시작한다. 한 남자가 마돈나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돈나의 노래 ‘라이크 어 버진’이 ‘무조건 큰 걸 밝히는’ 여자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곧바로 다른 남자의 반론이 이어진다. ‘그 노래는 상처받기 쉬운 여자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트루 블루’ ‘보더라인’ ‘파파 돈 프레치’… 남자들은 마돈나의 노래들을 하나씩 거론하면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간다.

화제는 식당의 종업원들에게 줘야 할 팁으로 넘어간다. 한 남자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절대 팁을 낼 수 없어. 내가 커피를 시킨 후로 세 번밖에 리필을 해주지 않았어. 그 시간 동안 여섯 번은 채워줬어야지.” 어떤 남자는 동조하고, 어떤 남자는 비웃는다. 영화의 내용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 같은 대화가 7분 가까이 이어진다. ‘저수지의 개들’을 처음 보았을 때, 오프닝의 비효율에 놀랐다. 일반적으로 영화의 오프닝은 주인공을 멋지게 등장시키거나 주제를 압축한 장면을 보여주거나 사건의 긴박한 순간을 보여주는 데 이용한다. 타란티노는 오프닝 장면으로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오직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영화 '저수지의 개들'.
영화 '저수지의 개들'.

우리는 이야기를 경험할 때 어떤 이야기는 실제 시간보다 짧게, 어떤 이야기는 실제 시간보다 길게 느낀다.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해서 무조건 짧게 느끼는 건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언제 이야기를 지겨워하는지 생각해보자. 말하는 사람이 오랫동안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시계를 들여다보게 된다. 시간을 측량해야 이야기에 들일 집중력을 배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대수롭지 않다고 여길 때 우리는 시계를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 절대 시계를 들여다보게 하지 않는 것. 세상에서 그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아마도 타란티노 감독일 것이다.

‘저수지의 개들’의 오프닝에 등장한 대화가 잡담일 뿐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다음 오프닝을 다시 볼 때 거기엔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다. 인물의 관계, 사건의 비밀이 대수롭지 않은 대화 속에 모두 들어 있다. 중요한 대화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므로, 당연히 우리가 놓친 장면이 있을 것이고, 우리는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볼 수밖에 없다.

영화 '펄프 픽션'.
영화 '펄프 픽션'.

두 번째 작품 ‘펄프픽션’(1994) 역시 식당에서 영화가 시작되고 장황한 대사가 끝없이 이어진다. 주인공들은 살인에 앞서 성경을 읊어대거나 항문에 시계를 넣었던 이야기를 길게 이야기한다. ‘펄프픽션’은 장면과 장면이 이어지는 영화라기보다 대사와 대사가 이어지는 영화다. 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영화 ‘펄프픽션’이 오디오북으로 나와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액션은 짧고 간결하게, 이야기는 최대한 수다스럽고 흥미롭게 만드는 것이 타란티노의 방식이다. 활을 쏠 때와 마찬가지다. 천천히 당기고, 순식간에 놓는다.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바스터즈-거친 녀석들’(2009)의 지하 맥주집 장면은 타란티노의 대사가 얼마나 사람을 숨죽이게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아군과 적군이 뒤엉킨 맥주집에서 타란티노는 최대한 대화를 늘인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여러 상황들이 이어진다. 대화는 무려 20분 동안 계속된다. 우리는 조마조마하며 대화를 듣게 된다. 상황이 종결되는 총격전은 고작 15초다. 주인공이 총격전 직전에 내뱉는 말은 유머러스하면서도 비장하다. “스카치를 낭비하는 놈은 지옥에 가. 곧 죽을 거 한잔 해야겠군.”

영화 '장고: 분노의 추격자'.
영화 '장고: 분노의 추격자'.

‘장고-분노의 추격자’(2012) 역시 명대사들의 전시회장이지만 그중 압권은 캘빈 캔디(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닥터 킹 슐츠(크리스토프 발츠)의 마지막 대화 장면이다. 모든 흥정이 끝난 줄 알았는데 갑자기 캔디가 악수를 청하며 이렇게 말한다. “미시시피에서는 악수를 해야만 거래가 끝나는 거요.” 슐츠는 악수할 마음이 없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외친다. “그냥 악수해버려.”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미는 한 사람과 그걸 거절하는 한 사람의 대화를 이렇게 살 떨리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지구상에 몇 명이나 될까.

너를 죽여버리고 말겠다거나, 반드시 피의 복수를 하겠다거나,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처럼 긴장감 없는 대사가 없다. 실제 삶에서 그 말을 들었다면 오금이 저리겠지만 영화 속에서 그런 대사들은 하품을 유발할 뿐이다. 나 역시 타란티노를 보면서 이야기하는 법을 계속 배우고 있는 중이다. 전에 말하지 않던 방식으로 말하기. 중요한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은 듯 말하기. 긴 이야기는 짧게 말하고, 짧은 이야기는 길게 말하기. 상대방이 짐작하지 못할 때 이야기를 끊어버리기.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들기. 소설가뿐 아니라 직장인들도 타란티노의 영화를 꼭 봐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긴 이야기를 더욱 길게 하고, 지루한 이야기를 더욱 지루하게 설명하는 우리의 상사들에게 타란티노 영화를 추천해 드리자.

김중혁 소설가·B tv ‘영화당’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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