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 분담 문제 연애고민 3위 안에 들어
돈 문제도 솔직하게 터놓고 대화해야
한강 소풍ㆍ벽화마을 걷기ㆍ등산 등
서울 도심 속 공짜 데이트 코스 즐비
더치페이ㆍ번갈아 내기 등
커플들끼리 상황에 맞는 기준 찾아야
“애정의 크기와 지출의 크기가 비례한다고 보는 건 유치한 발상이죠. 사랑은 자랑하기 위해서, 보여주기 위해서, 비교하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학기 초엔 수강신청 1순위, 학기 말엔 강의평가 1위를 놓치지 않는 대학 교양수업이 있다. 아동ㆍ가정학자인 장재숙(46) 박사가 10년째 맡아 온 동국대 ‘결혼과 가족’ 수업이다. 학기 중 3회 이상 ‘연애 실습’ 과제를 내는 것으로 유명한 강의의 인기 비결은 ‘하라는 공부는 안 시키고 연애를 권장하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이론과 실습을 토대로 ‘지나친 특별함에 대한 집착’을 덜어내기, 사랑을 통해 진짜 삶의 주인공이 되기, ‘우리’ 이전에 ‘나’와 ‘너’를 이해하고 존중하기 등을 차근차근 익혀 나간다.
호평 속에 ‘대학판 우리 결혼했어요’라는 별명도 얻었고, 2013년에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SBS가 선정한 ‘100대 좋은 대학강의’에 선정됐다. 학생들의 요청으로 경희대에서도 4년 째 ‘즐거운 연애, 행복한 결혼’ 수업을 진행 중이다. ‘지금 사랑을 시작하는 그대에게’(RHK코리아)의 저자이기도 한 장 박사와 최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연애비용 분담 문제는 ‘고민 베스트 10’에 늘 꼽히는 주요 이슈”라면서도 “성에 대해서도 꺼내놓고 말하는 게 건강한 것처럼 돈 문제도 솔직하게, 터놓고, 대화하고 협의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연애 실습 수업이라니.
“가족 문제 외에 연애가 수업 내용의 50% 이상이다. 이론과 도구로만 배울 게 아니라 역동적으로 참여하면서 와 닿게 가르치고 싶었다. 짧게라도, 가상이라도 해보게 하자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반응이 좋고 10년이나 계속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사랑과 연애도 결국 배워가며 해야 한다는 사실이 학생들에게 새로웠던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
“예전에는 짝꿍이 되고 싶은 친구를 적어낸 뒤 배정하는 방식으로 학기에 3회 짝꿍을 바꿔 실습을 했다. 지금은 제비뽑기 방식으로 4번, 예전 방식으로 2번 총 6번 짝꿍을 바꿔 실습을 한다. 적어내도록 하다 보니 이상형의 틀에서 잘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바꿨다. 본인이 생각지도 않은 사람, 미처 몰랐던 사람과 의외로 잘 맞을 수도 있고 함께일 때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경험해보기 위해서다. 그래서 실제 커플이 수강신청을 해도 다른 친구와 실습하게 한다. 근본 목적은 데이트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다양한 친구를 이해해보는 거다.”
-미션이 따로 있나.
“5,000원 이하 학식 같이 먹기, 계절을 담는 데이트 해보기, 함께 캠퍼스 3,000보 걷기, 비용 0원의 데이트에 도전하기 등 매번 주제를 제시한다. 하고 나면 결과를 홈페이지에 올려 다른 친구들과 공유한다. 더 재미있게 올리기 경쟁도 붙고, 같은 주제지만 각기 다른 결과와 감정을 보며 실제 연애 계획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비용을 줄이는 미션이 많아 보인다.
“수업 중 ‘연애고민 베스트10’을 다루는 과정이 있다. 열 가지 고민을 적어내고, 전체 목록을 공유한 뒤, 원하는 고민을 선택해 자신이 생각하는 해결법을 발표한다. 늘 3위 안에 들 정도로 많은 고민이 데이트 비용 문제다. ‘돈 없으면 연애도 못해요’, ‘연애 쉬어보니 정말 돈이 많이 굳어서 취업 전까진 안 할 거에요’하는 학생들이 많다. 서로 마음만 맞으면 비용을 줄여도 즐거울 수 있다는 걸 한 번쯤 생각해볼 기회를 마련해 본거다.”
-반응은 어떤지.
“비용 제로에 도전하기 미션은 늘 반응이 좋다. 주변 정보를 이용하면 차비를 제외하곤 돈을 이렇게까지 아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들 한다. 한강 소풍, 시즌 별 시군구의 무료 문화체험, 등산, 벽화마을 걷기 등 다양한 결과물을 가져온다. 식사는 각자 간단한 도시락을 싸와 해결한다. 요즘 공기가 좀 안 좋아서 그렇지 서울처럼 걷기 좋은 도시가 없고, 즐길 게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현실에선 연인끼리 돈에 대해 말하기 껄끄러워 한다.
“돈을 줄이자거나, 공평하게 내자는 얘기를 잘 못 꺼낸다. 더치페이 문화가 꽤 정착이 됐다곤 해도, ‘남자가 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는 남학생들도, 같은 생각을 하는 여학생들도 소수지만 존재한다. 이 경우 특히 힘들어한다. 한숨이 나온다고들 한다.”
-어떻게 풀어가나.
“이미 많이 하고 있는 것은 더치페이다. 아니면 번갈아 내기. 정답은 없고 비교하지 말고 논의와 협의를 통해 둘에게 맞는 기준을 찾아나가는 게 좋다. 뭐가 옳다는 절대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 다른데 어떻게 하나의 기준을 모든 연인이 따를 수 있겠나.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기준이 없거나 마음에 안 든다면, 어렵지만 솔직하게 말하는 게 최선이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결론은 솔직하게 말하라는 것이다. 늘 비싼 데이트를 해야 한다거나, 상대방이 모든 비용을 다 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그 잘못된 기대를 뻔히 알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틀린 태도다. 사랑한다면서 상대방이 자기 잘못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마음이 잘 맞으면 좋겠지만, 마음이 잘 맞지 않는다면 솔직하게 ‘서로 사랑하는데 비용도 분담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현실에 비춰 부담이 되니 아꼈으면 좋겠다’고 말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내가 이 사랑 더 행복하게,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기꺼이 받아들여 준다면 가장 바람직할 테고, 만약 그 상황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네가 남잔데? (여잔데?)’라고 나온다면 그런 사람과의 사랑은 더 진전시켜도 의미 없다고들 학생들 스스로 말한다.”
-그래도 터놓고 말하는 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겠다.
“말 안 하고 알아주기를 바랄 수는 없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은 늘 쉽지 않은데 협의하고 의논하는 과정은 생략돼 있고 그저 내가 막연히 알고 있던 ‘남자들의 생각’, ‘여자들의 생각’에 비춰서 혼자 판단하고 행동에 옮기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사랑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지 않으려면, 늘 배워야 한다. 동료 간의 사랑,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연인 간의 사랑 등 모든 인간 대 인간의 사랑은 결국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배움의 영역이다.”
-사랑과 지출의 크기를 동일시하는 경우도 있는데.
“교환론의 대표적 폐해다. ‘내가 상대를 위해 이 정도 비용을 지불했는데 적어도 이런 보상은 돌아 오겠지’라는 심리, 교환론에서는 이런 심리가 있다고 본다. 그 보상에는 물질, 매력 등이 다 포함된다. 이런 생각에 빠지면 늘 남과 자신의 사랑을 비교하게 된다. 내 연인이 돈을 덜 쓰면 ‘나는 그만큼 사랑을 덜 받고 있다는 건가?’ ‘내가 못났다는 건가?’하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한테 보여주기 위해서, 자랑하기 위해서, 비교하기 위해서 연애하고 사랑하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자랑한다. 하지만 사랑한다면 비교는 절대 금물이다. 연애를 하는 진짜 이유는 너와 내가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아닌가. 다른 사람과 절대 비교하지 말자.”
-비용 외에 학생들이 고민하는 최대 문제는.
“이성 사람 친구 문제다. 내 남친의 여자 사람 친구, 내 여친의 남자 사람 친구에 대해서 어디까지 이해해줘야 하냐를 고민한다. 학생 발표에서 ‘내가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힘들어 할수록 나,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만 힘들어질 뿐’이라는 성숙한 답변을 스스로들 내린다. 가끔은 깜짝 놀란다. 요즘은 ‘도대체 이 수업을 왜 신청했어? 이미 정답을 가지고 있는데’라고 되물을 때도 많다”
-과거 수강생들에 비해 더 성숙해졌나.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대를 견뎌내고 있는 청춘이라서 그런지 정말 성숙하고 생각이 깊다. 사려 깊고 배려심도 많고. 요즘 청년들이 버릇없고 이기적이라고? ‘대체 누가 그런 소릴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10년 전에 비해 ‘실패한 사랑’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발전했다. ‘네가 지금 실패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었고, 이별이 반드시 실패라곤 할 수 없을 거야’라는 생각들을 많이 한다. 10년 전엔 1위 고민이 ‘사랑에 실패한 경험이 있어 다신 못하겠어요’였는데 큰 변화다. 이별을 성숙하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변화한 배경이 있을까.
“아마도 다양한 커뮤니티, 소모임, SNS 등을 통해서 익명으로라도 개인의 영역에 깊이 감춰져 있던 이야기들을 열어놓고 공유하고 나누는 영향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늘 또래의 관점에서 다양한 생각을 주고 받고 배울 수 있다는 게 장점 아닐까.”
-앞으로 계획은.
“간혹 그런 ‘연애나 하는 수업’이라는 얘기도 듣는다. 삼포 세대라고 하는데 학생들 스스로도 많이 포기한 듯한 느낌도 받는다. 하지만 혼자이면 혼자서, 함께이면 함께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우리는 늘 배워야 한다. 사실 비연애주의 담론이 나올 때도 반가웠다. 모두가 결혼해야 한다, 결혼은 필수다라고 외치는 시대에 원하지도 않는데 엉겁결에 결혼해야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불행했겠나. 연애에 대해서도 이해가 넓어졌구나 싶어 좋았다. 다만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나를 지금 애써 가두지 말고 유연한 사고로 나와 남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돕고 싶다. 올해 가을엔 10년 전 첫 수업 수강생의 부탁으로 주례를 맡게 됐다. 이런 청년들이 사랑을 시작하는 첫 자리에서 늘 조언을 아끼지 않으려 한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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