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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놀이’ 말고 친해질 방법은 없을까?…대학 복학생협의회 ‘논란’

입력
2017.03.28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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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익명 제보 페이지 ‘C 대학교 대나무숲’ 캡쳐.
페이스북 익명 제보 페이지 ‘C 대학교 대나무숲’ 캡쳐.

지난 25일 사회관계형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의 익명 제보 페이지인 ‘C 대학교 대나무숲’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군복을 입은 남성 20여명이 한 자리에 줄지어 앉아 있는 앞에서 누군가 말하는 사진이다. 제보자는 사진 속 장면이 A학과 모임이라며 “두 시간 반 동안 웃지 못한 채 부동자세로 앉아있고 군대식 신고를 시킨 뒤 실수하면 술을 먹였다”며 “보는 내내 걱정됐다”고 말했다.

사진이 올라온 뒤 하루 새 100개 남짓한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과도한 ‘군기잡기’ 를 비난하는 내용이다.

군 복학생의 적응 돕기 위해 탄생한 ‘복학생협의회’

문제의 사진은 지난 17일 이 대학 A학과 내 복학생협의회의 신고식 장면이다. 협의회는 약 2년 간 군 생활 뒤 돌아온 복학생들이 학교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조직이다.

조직의 탄생 배경에는 우리나라의 어두운 역사가 있다. 1980년대 전두환 정부는 정권에 반대하는 운동권 학생들을 탄압하기 위해 강제 징집하는 ‘녹화사업’을 했다. 이후 일부 대학이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학생들의 적응을 돕기 위해 복협을 만들었다.

세상이 바뀌면서 복협은 이름처럼 복학생들의 친목 조직이 됐다. 역할 또한 학과의 새로운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색한 개그만 날리는 ‘연서복(연애에 서툰 복학생)’ 같은 학생들을 위해 자연스럽게 후배들과 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바뀌었다.

일부 복협은 복지기구 역할도 한다. 강동헌(27) 고려대 총복학생협의회 의장은 “2000년대 이후부터 예비군훈련 때 버스지원을 한다”며 “최근 군 복학생뿐 아니라 모든 복학생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등 취지가 많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제 발로 왔다고 자발적일까

A학과 학생들 역시 문제의 신고식이 복학생들의 친목 도모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지난해부터 신고식에 참석한 유모(24)씨는 “선후배들끼리 서로 알고 친해지기 위해 군복을 입고 모이는 자리를 마련했던 것” 이라며 “일부 학과는 그 자리에서 군기도 잡고 기합을 주기도 하지만 신고식 이후 형 동생 사이로 잘 지낸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고식 참여는 자율이어서 빠져도 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신고식 참여가 학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현실에서 복학생들이 자유로운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은 분위기다. A학과생 김모(24)씨는 “신고식에 빠지고 그 다음 모임부터 참여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신고식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먼저 친해질 게 뻔한데 나가지 않을 수 있느냐”며 “과내 아싸(아웃사이더ㆍ주변인)가 될 게 아니라면 다들 꾹 참고 나간다”고 말했다. 대구 K 대학에 다니는 전모(25)씨도 “남자가 많은 학과여서 복협에 가지 않거나 군대식 문화를 거부하면 소외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단합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20년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청년들이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입학했다는 이유만으로 친해지기란 힘들다. 대학생들이 새터(새내기 새로배움터ㆍOT)나 엠티 회식 등 다양한 단체 활동을 진행하는 것도 쉽게 친해지기 위해서다. 군복 신고식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런 활동이 종종 문제를 일으킨다. 지난달 서울 소재 K 대학은 새터에서 친목 도모를 위해 선배와 새내기들에게 전화번호를 맞춰보라며 술을 먹여 문제가 됐다. 경기 안산 의 H 대학의 한 학과도 선후배 질서를 잡는다며 신입생들을 새벽에 깨워 군기를 잡다가 문제가 됐다. 새 학년이 시작되는 초봄이면 ‘친목과 단합’의 이름으로 반복되는 사건들이다.

빠른 결속만 추구하면 친목모임이 한 순간에 권위적 조직으로 바뀐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한국사회의 조직문화 핵심이었던 권위적 조직은 강한 규율과 상하관계로 묶여 빠르게 결집되는 양상을 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콘크리트처럼 딱딱한 문화로 짜여진 조직은 그만큼 충격에 쉽게 깨질 수 있다. 실제 회사의 조직문화를 단기간에 가르치려고 신입사원들에게 극기훈련을 시켰다가 오히려 사기가 꺾인 경우도 있다(▶관련기사).

진정한 우정을 위해 필요한 것은 ‘액체 조직’이다. 액체같이 느슨하면서 상호 공감이 잘 되는 조직이다. 전 교수는 “신뢰로 엮인 조직은 보기에 느슨해도 충격에 유연하게 대처한다”며 “한 쪽에 강요가 될 수 있는 군복 신고식 보다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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