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프린팅ㆍ간편결제 시스템
신기술 사업 2년 넘게 막혀
“그냥 일본 가서 시작합니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과를 전공해 시제품을 만드는 일을 주로 해오던 김민규(27)씨는 3차원(3D) 프린팅이 급부상하던 3년 전, 중국산 제품을 구매해 사용하다 창업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모두가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을 뽑아낼 수 있도록 부품을 판매하는 사업을 하면 3D 프린팅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성장성 높은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고 그는 판단했다. 그렇게 김씨는 2014년 삼디몰을 창업해 연매출 6억원을 향해 달려가던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삼디몰이 안전확인신고를 하지 않고 불법으로 전기용품을 제조, 전기용품안전관리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삼디몰은 3D 프린터 부품을 판매하는 업체다. 소비자가 원하는 실물을 뽑아낼 수 있도록 입맛대로 부품을 골라 구매한 뒤 조립해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김씨는 “우리를 일반 프린터 제조사로 분류한 것”이라며 “안전 인증을 이미 받은 부품만 파는 건데 완제품에 대한 인증을 또 받으라는 건 이중 규제”라고 호소했다. 그는 “완제품 인증을 받으려면 제품당 400만원 정도 드는데 사용자가 조립할 경우의 수를 모두 예상해 하나하나 인증을 받을 순 없는 일”이라고 털어놨다. 김씨는 검찰로부터 벌금 300만원 약식기소 처분을 받은 뒤 1심에서 유죄 선고 후 항소해 2심 절차를 준비 중이다.
3D 프린팅은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이자 우리 정부도 신성장 동력으로 판단한 분야다. 김씨는 “4차 산업혁명은 개인 맞춤형 시대를 의미한다”며 “부품 공급으로 이용자를 늘려 플랫폼이 형성되면 이를 기반으로 제품 판로 연결 등 사업을 키워나갈 수 있는데 이를 불법이라고 하면 사업도 못하게 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창업 생태계를 활성화하겠다며 정부는 각종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곳곳에 남아있는 낡은 규제와 부처간 이견 등 때문에 씨도 뿌리지 못하는 상황이 생겨나고 있다. 핀테크 스타트업인 한국NFC의 황승익(44) 대표는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황 대표는 신용카드를 휴대폰 뒷면에 갖다 대기만 하면 근거리무선통신(NFC)으로 본인인증이 되는 기술을 개발했다. 2014년 11월 금융위원회로부터 신용카드 접촉 방식 본인 확인이 가능하다는 유권 해석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서비스를 시작도 못했다. 신용카드 본인인증을 주민등록번호 대체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방송통신위원회 소관의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본인확인기관으로 지정을 받아야 하는데, 이 요건이 엄격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 대표는 “한 문턱을 넘으니 또 다른 부처에서 충돌한 것”이라며 “해결방안을 찾아 다니느라 시간만 흘려 보냈다”고 설명했다. 방통위가 주민등록번호 대체수단으로 신용카드를 활용하는 시범사업 공고를 낸 시점은 올 2월이다. 그는 “이마저도 신청 기간이 2주로 촉박하고 신용평가사도 컨소시엄으로 포함시켜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워 진행이 힘들다”며 “본인 확인 절차를 단축하면 간편결제 시장이 폭발할 수 있는데 이렇게 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2년 넘게 걸리면 어떤 스타트업이 버티겠느냐”고 하소연 했다. 그는 “일본에선 문제 되지 않아 4월에 바로 상용 서비스에 들어간다”고 덧붙였다.
비단 두 스타트업의 운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유전자 정보 빅데이터를 활용해 맞춤형 제품을 추천하는 서비스는 일부 항목을 제외하고는 민간의 유전자 정보 활용을 제한하는 법에 가로막혔고, 생체 움직임 정보로 개인별 재활 치료가 가능한 헬스케어는 원격진료가 허용되지 않아 상용에 애를 먹고 있다. 드론, 개인간 대출 등 적지 않은 신산업이 정부 규제에 막혀 정체 상태에 빠진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너무 촘촘한 규제로 피해보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기업이 신청하면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정지시키는 영국의 ‘규제 샌드박스’와 같은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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