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맞춤의료 시대 이끌 신테카바이오
음악파일 2억4000만개 저장 용량
슈퍼컴 ‘마하’로 통합 플랫폼 구축
美 이틀 걸릴 분석 4시간 내 가능
“상상도 못할 일” 세계가 깜짝 놀라
2. 임상시험 없는 신약개발도 눈앞
클릭 몇 번으로 수천명 시험 대체
약의 부작용도 현저하게 줄여
‘파킨슨병 신약’ 제약사와 제휴
“빅데이터가 진료ㆍ치료 다 바꿀 것”
지난달 27일 대전 용산동 대덕테크노밸리에 있는 신테카바이오의 유전체 데이터 통합센터. 대전과 청주, 용인, 서울에 분산돼 있는 총 용량 1.4페타바이트(14억메가바이트ㆍ사진이나 음악파일 2억4,000여만개 저장분)의 슈퍼컴퓨터 ‘마하’를 조종하는 이 기업의 심장부다. 30여명의 직원들은 마하를 24시간 가동하며 세계 어느 슈퍼컴퓨터도 아직 해내지 못한 유전체 빅데이터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 직원은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바이오 구글’이 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바이오업계는 올해 유전체 빅데이터 혁명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 중국 과학자들이 혁명의 최전선에 섰다. 그들은 “병원과 제약사들이 줄 설 날이 머지 않았다”며 미소 짓고 있다. 8년에 걸쳐 비즈니스를 설계한 정종선 신테카바이오 대표는 마하를 바라보며 “올해를 기점으로 제약과 의료 환경이 급격히 달라질 것”이라고 힘을 줬다.
마하에는 26가지 인종 6,000여명의 유전체 데이터가 들어 있다. 유전자는 4가지 화학물질(염기)로 구성되고, 한 사람의 전체 유전자 염기는 30억개에 달한다. 6,000명이면 18조개다. 그런데 염기 배열 순서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변이). 어느 유전자의 어느 염기에 변이가 존재하느냐에 따라 외모나 건강 상태 등에 차이가 생긴다. 한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유전자 변이는 300만~1,000만개. 18조개 염기가 제각각 변이를 만들어낸다. 유전자와 단백질, 단백질과 단백질은 긴밀하게 정보도 주고받는다. 과학은 이 중 극히 일부만 파악한 상태다.
바로 여기에 유전체 빅데이터의 특수성이 있다. 숫자나 글자, 그림에 한정된 여느 빅데이터보다 훨씬 방대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 바이오업계는 빅데이터의 가능성에 일찌감치 눈떴다. 2000년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로 처음 공개된 200기가바이트 용량의 1인 30억개 염기 정보는 ‘맞춤의료’ 시대를 열어줄 노다지로 여겨졌다. 병으로 고통받는 시간이 확 줄고, 자신에게 꼭 맞는 약이 나올 것이란 기대가 커졌다. 그러나 이런 특수성 때문에 곧 벽에 부딪혔고, 맞춤의료는 여전히 먼 상황이다.
마하는 유전체 빅데이터의 특수성을 고려해 개발된 바이오 전용 슈퍼컴퓨터다. 신테카바이오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국제 공동연구로 확보한 6,000명의 유전체 데이터를 마하에 넣고 한꺼번에 분석할 수 있는 통합 플랫폼을 구축했다. 이와 유사한 플랫폼을 보유한 기관은 미국 브로드연구소와 중국 베이징유전체연구소뿐이다. 정 대표는 “미국과 중국이 이틀 걸릴 분석을 4시간 안에 할 수 있고, 오차도 5~10배나 적다”고 말했다.
신테카바이오는 지난해 9월 미국에서 열린 국제암유전체협력단(ICGC) 심포지엄에서 마하 플랫폼을 깜짝 공개했다. 정 대표는 “회의장이 술렁거렸다”며 “이름도 생소한 한국의 작은 기업이 미국과 중국을 치고 나갈 거라곤 아무도 상상 못한 것”이라고 회상했다. 참가자들은 마하의 위력에 놀랐다. 지금은 개인별 유전자 정보를 ‘표준’이라 불리는 특정인의 유전체와 단순 비교한다. 그보다 암에 걸릴 위험이 좀 높다거나 피부 관리에 신경을 쓰라고 알려주는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마하 플랫폼에선 개인 유전자를 6,000명의 유전체, 특히 그 안에 숨은 수많은 변이와 동시에 비교 가능하다. 특정 약물이 들을지 안 들을지 미리 알 수 있고, 어떤 병을 어떻게 예방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준비할 수 있다.
마하 플랫폼을 미국 마이클 제이 폭스 재단이 알아봤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배우 폭스가 만든 이 재단은 파킨슨병 환자 600명의 유전체 데이터를 보내왔다. 이를 근거로 마하 플랫폼은 6,000명의 유전체를 파킨슨병 약에 대한 반응에 따라 60개 그룹으로 나눴다. 이어 파킨슨병 신약을 개발 중인 바이오기업 카이노스메드와 손 잡았다. 신약 후보물질이 60개 그룹에서 각각 어떤 효과나 부작용을 보일지를 예측하는 작업이 요즘 마하가 집중하는 일이다.
작업은 올 상반기 완료될 예정이다. 성공하면 제약사들은 너도나도 ‘러브콜’을 보낼 것이다. 비싼 임상시험 없이 유전체 빅데이터 분석으로 약의 부작용을 현저히 줄이고 신약개발 성공률도 확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동물 대신 컴퓨터를 사용하는 임상시험을 허가했다. 마하 플랫폼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김태순 신테카바이오 경영총괄 사장은 “클릭 몇 번으로 수천명 임상시험을 대체하고, 결과도 기존 임상보다 훨씬 정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오 빅데이터는 유전체 말고도 단백질, 지질, 영상, 논문 등 수없이 많다. 이들을 마하 플랫폼과 연계하면 ‘바이오 구글’이 가능하다. 시간과 돈을 쏟아부을 필요 없이 원하는 의료정보를 ‘클릭’으로 얻어낼 수 있게 된다.
바이오기업 휴레이는 그래서 신테카바이오와 협업하기로 했다. 강북삼성병원에 서버를 운영하고 있는 휴레이는 당뇨병 환자들의 혈당 수치나 식단, 복약 상황 등을 스마트폰 응용프로그램(앱)으로 받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다. 이른바 ‘라이프로그’(생활기록)다. 휴레이 관계자는 “유전체와 라이프로그 빅데이터가 만나면 맞춤의료를 넘어 ‘정밀의료’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별 유전자뿐 아니라 생활습관과 환경까지 치밀하게 따져 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세계 정밀의료 시장 규모는 지난해 290억달러(약 35조원)에서 연평균 11.2% 증가해 2025년 1,126억달러(135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유전체 빅데이터는 인공지능 자리까지 넘볼 태세다. 제아무리 IBM 인공지능 ‘왓슨’이라도 지금은 진단에 참고만 될 뿐이다. 김 대표는 “유전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결합하면 의사와 직접 소통하며 실시간으로 정밀의료 진단과 치료를 하는 시스템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전=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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