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 오는 날
고민실
1978년 울산 출생
아주대 컴퓨터공학부 졸업
당선 소식을 집에서 들었습니다. 토요일이었고 탄핵은 가결되었으며 스터디도 없었으니까요. 전화를 받고 마냥 기쁠 줄만 알았는데 그보다 당혹스러운 마음이 더 컸습니다. 맙소사,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일단은 안방에 계신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했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인터넷이 안 된다, 모뎀을 껐다 켜봐라.
가끔 토양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뿌리와 줄기와 잎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좁은 화분에서 용케 내 키만큼 자란 화초를 바라봅니다. 힘없이 배배 꼬인 얇은 이파리를 툭 건드려 봅니다. 끝이 노랗게 시들어 분갈이를 해줘도 빈약한 뿌리로 버틸 수나 있을지 우려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건 그것이 그것 외에는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늦지 않았기를 바라며 이제라도 햇빛이 잘 드는 데로 옮겨 볼까 합니다. 조금이라도 오래 살아남는다면 함께 한 시간이 의미 없지 않을 겁니다.
모뎀을 껐다 켜자 인터넷이 다시 연결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잘됐구나. 며칠 전에 파를 썰다가 엄지를 깊게 베어 설거지를 부탁했을 때도 아버지의 대답은 짧았습니다. 알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깨끗이 씻은 그릇들이 식기건조대 위에 반듯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그만해도 된다고 한 다음날까지. 사실 화초가 그만큼이나 자란 것도 한 뼘 길이일 때부터 살뜰하게 보살핀 어머니와 잊지 않고 꾸준히 물을 부어준 아버지 덕분이라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이기적인 저에게 한없는 사랑을 주시는 어머니와 아버지께 깊이 감사 드립니다. 제 사전에 소설가라는 단어를 새겨주신 해이수 선생님, 갈 길을 잃었을 때 이끌어주신 이영훈 선생님, 감사합니다. 동고동락한 한겨레 문화센터 문우들과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길을 같이 걸어준 스터디 문우들 진, 은, 영, 원, 경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내가 나일 수 있도록 지표가 되어준 친구 임에게도 인사를 보냅니다.
지금까지 소설을 발견하는 삶을 살았다면 앞으로는 소설을 쓰는 삶을 살도록 애써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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