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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악 줄다리기 그만… ‘노동 협치’로 양질의 일자리를

입력
2016.05.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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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난 2년간 무리한 속도전

기간제 연장ㆍ파견 확대 추진

野ㆍ노동계 반발로 개혁 좌초

여소야대로 독주 더 어려워져

국회차원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

노동개혁 방향 먼저 합의하고

비정규직 고충 줄이는 정책 등

작더라도 실질적 변화 끌어내야

그림 1최종진(왼쪽에서 세번째)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과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네번째)이 2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열고 쉬운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등 국제기준을 위반한 정부 불법지침을 폐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림 1최종진(왼쪽에서 세번째)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과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네번째)이 2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열고 쉬운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등 국제기준을 위반한 정부 불법지침을 폐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가 일자리로 인해 고통 받는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19일 김현숙 청와대 고용복지수석)

“국회도 청년과 중장년, 실직자들의 고통을 헤아려야 한다.”(20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박근혜 정부가 사활을 건 과제는 일자리 만들기다.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를 개혁하겠다”는 명분도 고용 창출이다. 그러나 지난해 정부가 제출한 노동개혁 법안들이 국회 상임위의 문턱도 넘지 못한 채 제19대 국회 마무리와 함께 자동 폐기되면서 정부발 노동개혁호도 좌초했다. 대ㆍ중소기업, 정규ㆍ비정규직 간 격차가 한국 노동시장의 고질적 문제라는 데는 여야의 인식이 같았지만 원인과 해법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20대 국회를 향한 전문가들의 주문은 협치(協治)다.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될 정도로 노동시장의 상황이 악화일로인 데다 여소야대 구도 덕에 여권의 일방 독주가 어려워진 만큼, 개혁이냐 개악이냐 줄다리기만 할 게 아니라 작더라도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구체적 대안을 놓고 합의를 시도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정부 속도전에 좌초한 ‘노동개혁’

박근혜 정부가 노동개혁을 핵심 국정과제로 삼고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8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내에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가 꾸려지면서다. 한국노총이 한 차례 협상에서 탈퇴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9월 ‘9ㆍ15 노사정 대타협’이 이뤄졌지만, 정부의 개혁안은 관철되지 못했다. 대타협 직후 정부가 파견근로자보호법, 기간제근로자보호법 등 합의되지 않은 내용까지 포함해 입법을 추진하는 등 무리한 속도전을 벌인 것이 주요한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노동계와 야당이 강력히 반발하는 와중에 올 초 정부가 일반해고를 가능케 하고 노조 동의 없이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노동자한테 불리한 쪽으로 바꿀 수 있게 하는 2개 행정지침의 강행을 예고하면서 노동개혁은 파국을 맞았다.

20대 국회에서 노동개혁 논의는, 정부의 조급증과 사실상 노동계가 배제된 논의 구조,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노동계 등 19대 국회에서의 개혁 실패 요인들을 분석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노동개혁추진일지.
노동개혁추진일지.

‘노동 협치’로 해결해야

일단 정부ㆍ여당은 19대 국회 때 제출한 법안 골격 그대로 다시 입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기권 장관은 20일 핵심 쟁점이었던 파견법은 물론 기간제법까지 포함한 노동개혁 5법의 일괄 입법을 20대에서도 재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재정 새누리당 수석전문위원도 “일단 종전 그대로 재발의하고 한국노총과의 협력 관계 유지로 동력을 끌어낸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당이 바라는 대로 분위기가 조성되긴 어려워 보인다. 3당 구도에서 캐스팅 보트를 쥔 국민의당이 노동개혁의 핵심 쟁점인 파견 확대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이태흥 국민의당 정책국장은 “파견법이 통과되면 현 정부 바람대로 고용률은 올라갈 수 있겠지만 고용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 함정”이라며 “정규직 자리가 파견 노동자로 채워질 개연성이 크다”고 말했다.

노사정 대화의 틀도 기존 노사정위에서 국회로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주도권을 쥐게 된 야당이 민주노총이 불참하고 있는 노사정위의 효용성에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정길채 더불어민주당 노동 전문위원은 “기존 노사정위가 일방(사용자)의 목표 달성에만 복무하고 사회적 합의 연출 도구로 활용돼 온 게 사실”이라며 “협치가 가능하려면 다른 틀이 구상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흥 국장도 “노사정위와 별도로 성과급 도입 같은 이슈별 논의를 할 수 있는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도 방안”이라며 “조선업 위기와 관련해선 지자체가 중심이 되는 지역별 현안 협의체 가동도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해 8월 한국노총이 노사정 대화에 복귀한 건 정부의 압박과 회유 때문”이라고 돌아본 뒤 “기존 노사정위 틀에서 벗어나 민주노총과 야당, 시민사회단체가 서로 공조ㆍ견인하는 사회적 대화기구가 국회 차원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근혜 정부 추진 5개 노동개혁 법안 주요 내용.
박근혜 정부 추진 5개 노동개혁 법안 주요 내용.

노동개혁 방향부터 합의를

노사정 대화의 틀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혁 방향에 대한 여야와 경영계, 노동계의 합의가 전제돼야 노동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노동개혁의 방향에 대한 여권ㆍ재계와 야당ㆍ노동계의 시각차가 워낙 크다는 판단에서다.

정부ㆍ여당과 경영계는 고용ㆍ임금을 유연하게 해야 일자리가 생긴다는 논리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과도한 정규직 보호 약화시키고 비정규직 규제도 완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사가 합의해야 정규직 축소가 가능하단 규정을 법에 넣는 식으로 비정규직 팽창 우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야당과 노동계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지나친 고용 유연화, 재벌의 경제력 독점이 노동시장 양극화와 청년 취업난을 부추겼다고 반박한다. 조돈문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기업 협력업체 정규직으로 집계되는 하청직까지 포함하면 1,000만명이 넘는 비정규직을 더 늘린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교착 상태를 해소하려면 노동개혁으로 어떤 가치를 실현할 것인지부터 합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양측의 의견 접근이 가능한 의제부터 합의하는 것도 해법이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내유보금 과세나 고용 창출 투자 지원 등을 통해 대기업이 청년 등 소외계층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꾸준히 만들어낼 의무를 다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의 입법을 국회가 했으면 한다”고 제언했다.

개혁을 안착시키기 위해선 국회가 더 타협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갖춰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당장 비정규직을 폐지할 수 없는 만큼 현실적으로 중요한 건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충 먼저 덜어주자는 실용주의적 관점”이라며 “정치 프레임에 개혁을 가두지 말고 노사갈등을 예방할 수 있는 선제 입법에 매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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