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남성들은 대부분 대학교를 졸업한 후 곧바로 취업을 한다. 몇 년간의 사회생활 후 결혼적령기가 될 즈음에는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을 갖추게 된다. 이 때문에 신혼집 마련 등 결혼비용에 대해 부담이 큰 중국ㆍ 한국 남성과는 달리, 일본에서 만난 젊은 남성들은 결혼에 대해 크게 걱정을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오히려 남자들이 결혼을 ‘필수’에서 ‘선택’으로 여기자 타격을 받은 것은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여성이었다. 이 같은 현상은 되레 여성들이 ‘결혼 활동’에 더 적극성을 띄게 만들었다.
일본 여성은 사회에 진출하더라도 상당수가 비정규직이고 경제 문제로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도 많다. 일본 총무성의 경제활동 인구 조사에 따르면 2010년 25~34세 남성의 13.2%, 여성의 41.6%가 비정규직에 종사했다. 1990년엔 각각 3.2%와 28.2%였다. 35~44세의 남녀 비정규직 비율은 3.3%와 49.7%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2011년 아사히신문의 ‘독신 여성, 세 명 중 한 명은 빈곤’보도와 2014년 NHK의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 심각해지는 젊은 여성 빈곤’이라는 다큐멘터리는 여성 빈곤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다루고 있다. 싱글 여성들의 수입은 십 수년 전에 비해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싱글 여성들의 힘겨운 삶을 대변하는‘걸스 푸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특히 30대 자녀를 둔 부모세대가 은퇴하면서 수입이 급감한 2000년대 후반부터 결혼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파라사이트 싱글’ 자녀에게 부모가 더 이상 지원을 해 줄 수 없게 된 것이다. 부모의 경제력이 약해지자 젊은 비정규직 여성들은 다시금 결혼이라는 전통적 해법을 찾아 나섰다. 청년 스스로의 욕구가 아니라 부모에 의해 등 떠밀려 결혼 상대를 찾아나서는 형국이 됐다.
곤카쓰(婚活), ‘취집’을 꿈꾸는 여성들
‘결혼 활동’이라 해석할 수 있는 곤카쓰(婚活)는 2008년 ‘곤카쓰의 시대’라는 책이 출판된 이후 급격히 유행했다. 이 책은 결혼을 하려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이는 부모세대의 욕구가 투영된 결과라 볼 수 있다. 실제로 2011년 일본 내각부가 20~30대 남녀 1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혼자의 63.7%가 ‘사귀는 사람이 없다’고 답할 만큼 일본 청년들은 결혼을 위한 노력에 인색했다.
자의든 타의든 일본 사회에서 결혼은 ‘파라사이트 싱글’ 여성들의 삶을 바꿀 대안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이는 젊은 여성들에게 ‘취업(일) 대신 결혼’이라는 가치관을 갖게 하는 부작용으로도 작동됐다. 2012년 일본 내각부 조사에 따르면 20대 여성의 44%가 ‘아내가 가정을 지켜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이는 3년 전보다 16%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후쿠시마 미노리 도코하대 교수는 “여대생을 포함해 전업주부를 꿈꾸는 20~30대 여성이 증가하고 있다”며 “이는 ‘일벌레 남편’과 ‘가정주부 아내’라는 부모세대의 젠더화된 생존 전략이 다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신문기자 출신으로 현재 와코대 교수인 다케노부 미에코(竹信 三惠子)는 ‘현대사상’ 2013년 9월호에 실은 글에서 곤카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남녀가 경제적으로 평등하지 않은 일본에서 남성 고용이 악화돼 가는데도 여성이 진출할 수 있는 장소는 없다. 그러면 결국 남자를 찾을 수밖에 없다. ‘결혼할까 말까’가 아닌 ‘결혼할 수 있을까, 없을까’가 된다. 결혼 이외에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좁은데, 예전처럼 결혼할 수 있는 남자들은 확 줄었다. 그 결과 결혼의 장벽은 대단히 높아졌고, 좁은 문을 뚫기 위한 필사의 곤카쓰가 생겨난 것이다.”
곤카쓰의 숨은 두 번째 키워드, ‘관계’
젊은 여성의 빈곤이 곤카쓰에 숨어 있는 첫 번째 키워드라면, 두 번째는 관계다. 2011년 발생한 도호쿠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에서 가족의 가치는 눈에 띄게 자주 언급된다. 미디어는 ‘가족의 끈’을 강조하며 개인화하고 있는 일본 사회에 변화를 요구했다. 더불어 저널리스트인 시라카와 모모코(白河 桃子)가 2011년 출간한 책에서 언급한 ‘지진혼(震災婚)’이라는 말도 유행했는데, 이는 결혼에 적극적이지 않던 미혼들이 대지진을 계기로 결혼을 위해 행동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혼자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관계 형성으로 극복하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그러나 마음을 먹었다고 다 뜻대로 되진 않는 법. 일본의 많은 청년들이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토로하는 현상은 결혼 상대자인 이성과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곤카쓰를 소재로 한 여러 일본 드라마를 보면 결혼 정보회사를 통해 만난 남녀가 서로에 대한 이해나 사랑 없이 조건만 놓고 결혼을 위한 만남을 이어간다. 또 만남을 이어가기 어려운 경우에는 두 사람이 소통을 통해 해결하기보다 컨설턴트에게 개인 레슨을 받아 돌파구를 찾는다. 문제의 원인과 해법은 관계가 아닌 개인 차원으로 수렴된다. 어찌 보면 곤카쓰는 일본 청년들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사회가 던진 하나의 화두인 셈이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사진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이 기사는 한국일보 특별기획 ‘한중일 청년 리포트’의 일부입니다. ▦취업&창업 ▦주거 ▦결혼 ▦관계 등 총 네 가지 주제에 따라 각각 한국, 중국, 일본 청년들의 사례를 다루어 총 12편의 기사가 연재됩니다. 한국일보닷컴에서 전체 기사를 디지털 인터랙티브 형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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