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이민자와 다르지 않은, 서글픈 삶”
중국에 쪽방촌과 셰어하우스가 있다면 한국엔 고시원과 좁아터진 원룸이 있다. 공간을 혼자 쓰니까 쾌적할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도긴개긴이다.
“이 헤드폰, 10년 전에 거금 주고 산 거에요. 지금은 잘 안 쓰지만 당시엔 이거 없인 잠을 잘 수가 없었죠.”
황재용(27)씨가 두툼한 헤드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고시원과 리빙텔을 전전하던 때, 옆 방에서 들려오는 원치 않은 소음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 이 헤드폰은 생필품이었다. 2004년 상경해 종로구 창신동의 고시원에 머물던 것을 시작으로, 지금 살고 있는 7평(23㎡)짜리 사당동 반지하 월셋방(보증금 1,000만원, 월세 33만원)에 살기까지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작년 2월부터 이 방에 살았는데, 요새도 종종 방에 들어올 때 감회가 새롭다”며 “상경 11년 만에 처음으로 내 명의로 전입이 가능한 집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도 누나가 보증금을 내 주지 않았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고시원, 친척집, 친구집, 아는 분 집, 기숙사, 리빙텔 등을 전전한 게 11년이에요. 거처를 계속 옮겨 다니다 보니 서울 웬만한 동네에서는 다 살아 봤어요. 창신동, 동대문, 수유리, 가락시장, 방이동, 왕십리, 동인천, 동암, 부천 심곡동…”
끝도 없이 동네 이름을 대던 황씨는 “한 10년 정도 쓰던 여행가방이 있는데, 이사를 하면 짐을 풀지 않고 가방만 열어놓는다”며 “짐 싸고 옮겨 다니는 삶에 이골이 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방 한구석에 가방만 펼쳐놓고, 빨래한 옷은 말려서 다시 가방 안에 정리한다. 언제든 떠날 준비가 가능하도록.
“제가 요즘 ‘개선문’(독일 출신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란 소설을 읽고 있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이 파리로 숨어든 독일인 불법 이민자에요. 언제 나치의 검열을 받을지 모르니까 짐 가방만 열어놓고 살더군요. 마치 지금의 저처럼요. 불법 이민자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던 제 행색이 새삼 서글프더군요.”
메뚜기 같은 생활을 하던 황씨에게 그나마 잊지 못할 행복감을 선사했던 곳은 리빙텔이었다. 방에 딸려 있는 조그만 화장실에서 샤워를 할 수 있단 사실이, 그에겐 지난 11년 동안 가장 황홀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남의 불행에서 내 행복을 찾아야 하는 슬픈 현실
“아~~ 이거 어머니가 보시면 안 되는데……. 처음 방 구할 때도 어머니는 슬퍼하셨어요. 전 잘 구했다고 좋아했는데.”
2평(6.6㎡) 남짓한 강병우(27)씨의 방은, 살림살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제외하면 장정 한 명이 약간 여유있게 누울 공간 정도 밖엔 남지 않았다. 대학원생 강씨와 고졸 백수 황재용씨를 비교해보면,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주거환경만큼은 황씨가 비교우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니 방을 구해주는 입장에서 어머니는 슬펐을 법했다.
하지만 강씨는 되레 “이 동네에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 따지면 이 집 만한 곳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씨의 거처는 이래봬도 전세 5,000만원짜리다. 전세 매물 자체가 없으니 전셋집을 구한 것만으로도 다행한 일이다. 전세금은 아버지가 대출을 받아서 마련했다. 강씨는 “이 집에서 언덕 하나를 더 올라가면 7,000만원짜리 전셋방이 있다”며 “여름이면 땀 한 바가지씩 쏟아야 되는데 벽은 곰팡이로 도배된 그 방에 비하면 지금 사는 곳이 훨씬 쾌적하다”고 했다.
대전에서 학부를 나온 강씨는 “서울에 사는 대전 친구들이랑 얘기하면 한참을 웃는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주거 격차 때문이다. “대전에선 5,000만원이면 20평(66㎡)짜리 아파트도 구할 수 있다”며 “친구들과 셋이서 월세 45만원인 투룸에 살았는데, 방 한 개 공간이 지금 이 곳의 세배는 됐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서울에 와보니, 그래도 이 정도면 감지덕지라고 했다. 강씨는 “불만이 있다면 방음이 안 되기 때문에 좋아하는 기타를 맘대로 못 치는 것 정도”라며 “하지만 남들과 비교해 상대적 행복을 찾아야 하는 현실은 몹시 불행하다”고 말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이 기사는 한국일보 특별기획 ‘한중일 청년 리포트’의 일부입니다. ▦취업&창업 ▦주거 ▦결혼 ▦관계 등 총 네 가지 주제에 따라 각각 한국, 중국, 일본 청년들의 사례를 다루어 총 12편의 기사가 연재됩니다. 한국일보닷컴에서 전체 기사를 디지털 인터랙티브 형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 바로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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