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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리빙텔... 언제 방 뺄지 몰라 짐도 안 풀어

입력
2016.01.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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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이민자와 다르지 않은, 서글픈 삶”

중국에 쪽방촌과 셰어하우스가 있다면 한국엔 고시원과 좁아터진 원룸이 있다. 공간을 혼자 쓰니까 쾌적할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도긴개긴이다.

“이 헤드폰, 10년 전에 거금 주고 산 거에요. 지금은 잘 안 쓰지만 당시엔 이거 없인 잠을 잘 수가 없었죠.”

황재용씨가 고시원에 살던 시절 옆 방의 소음을 막기 위해 애용했던 헤드폰.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황재용씨가 고시원에 살던 시절 옆 방의 소음을 막기 위해 애용했던 헤드폰.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황재용(27)씨가 두툼한 헤드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고시원과 리빙텔을 전전하던 때, 옆 방에서 들려오는 원치 않은 소음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 이 헤드폰은 생필품이었다. 2004년 상경해 종로구 창신동의 고시원에 머물던 것을 시작으로, 지금 살고 있는 7평(23㎡)짜리 사당동 반지하 월셋방(보증금 1,000만원, 월세 33만원)에 살기까지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작년 2월부터 이 방에 살았는데, 요새도 종종 방에 들어올 때 감회가 새롭다”며 “상경 11년 만에 처음으로 내 명의로 전입이 가능한 집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도 누나가 보증금을 내 주지 않았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고시원, 친척집, 친구집, 아는 분 집, 기숙사, 리빙텔 등을 전전한 게 11년이에요. 거처를 계속 옮겨 다니다 보니 서울 웬만한 동네에서는 다 살아 봤어요. 창신동, 동대문, 수유리, 가락시장, 방이동, 왕십리, 동인천, 동암, 부천 심곡동…”

끝도 없이 동네 이름을 대던 황씨는 “한 10년 정도 쓰던 여행가방이 있는데, 이사를 하면 짐을 풀지 않고 가방만 열어놓는다”며 “짐 싸고 옮겨 다니는 삶에 이골이 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방 한구석에 가방만 펼쳐놓고, 빨래한 옷은 말려서 다시 가방 안에 정리한다. 언제든 떠날 준비가 가능하도록.

황재용씨의 반지하 월셋방 모습. 짐이 얼마 없어 단출하다. 김주영기자
황재용씨의 반지하 월셋방 모습. 짐이 얼마 없어 단출하다. 김주영기자

“제가 요즘 ‘개선문’(독일 출신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란 소설을 읽고 있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이 파리로 숨어든 독일인 불법 이민자에요. 언제 나치의 검열을 받을지 모르니까 짐 가방만 열어놓고 살더군요. 마치 지금의 저처럼요. 불법 이민자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던 제 행색이 새삼 서글프더군요.”

메뚜기 같은 생활을 하던 황씨에게 그나마 잊지 못할 행복감을 선사했던 곳은 리빙텔이었다. 방에 딸려 있는 조그만 화장실에서 샤워를 할 수 있단 사실이, 그에겐 지난 11년 동안 가장 황홀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남의 불행에서 내 행복을 찾아야 하는 슬픈 현실

“아~~ 이거 어머니가 보시면 안 되는데……. 처음 방 구할 때도 어머니는 슬퍼하셨어요. 전 잘 구했다고 좋아했는데.”

2평(6.6㎡) 남짓한 강병우(27)씨의 방은, 살림살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제외하면 장정 한 명이 약간 여유있게 누울 공간 정도 밖엔 남지 않았다. 대학원생 강씨와 고졸 백수 황재용씨를 비교해보면,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주거환경만큼은 황씨가 비교우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니 방을 구해주는 입장에서 어머니는 슬펐을 법했다.

강병우씨가 사는 원룸은 어른 한 명이 누우면 발 디딜 곳이 없었지만, 강씨는 되레 “요즘 같은 때 전셋집 구한 게 어디냐”며 만족스러워했다. 김주영기자
강병우씨가 사는 원룸은 어른 한 명이 누우면 발 디딜 곳이 없었지만, 강씨는 되레 “요즘 같은 때 전셋집 구한 게 어디냐”며 만족스러워했다. 김주영기자

하지만 강씨는 되레 “이 동네에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 따지면 이 집 만한 곳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씨의 거처는 이래봬도 전세 5,000만원짜리다. 전세 매물 자체가 없으니 전셋집을 구한 것만으로도 다행한 일이다. 전세금은 아버지가 대출을 받아서 마련했다. 강씨는 “이 집에서 언덕 하나를 더 올라가면 7,000만원짜리 전셋방이 있다”며 “여름이면 땀 한 바가지씩 쏟아야 되는데 벽은 곰팡이로 도배된 그 방에 비하면 지금 사는 곳이 훨씬 쾌적하다”고 했다.

대전에서 학부를 나온 강씨는 “서울에 사는 대전 친구들이랑 얘기하면 한참을 웃는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주거 격차 때문이다. “대전에선 5,000만원이면 20평(66㎡)짜리 아파트도 구할 수 있다”며 “친구들과 셋이서 월세 45만원인 투룸에 살았는데, 방 한 개 공간이 지금 이 곳의 세배는 됐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강병우씨가 퇴근 후 방에 돌아와 기타를 치고 있다. 김주영기자
강병우씨가 퇴근 후 방에 돌아와 기타를 치고 있다. 김주영기자

서울에 와보니, 그래도 이 정도면 감지덕지라고 했다. 강씨는 “불만이 있다면 방음이 안 되기 때문에 좋아하는 기타를 맘대로 못 치는 것 정도”라며 “하지만 남들과 비교해 상대적 행복을 찾아야 하는 현실은 몹시 불행하다”고 말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이 기사는 한국일보 특별기획 ‘한중일 청년 리포트’의 일부입니다. ▦취업&창업 ▦주거 ▦결혼 ▦관계 등 총 네 가지 주제에 따라 각각 한국, 중국, 일본 청년들의 사례를 다루어 총 12편의 기사가 연재됩니다. 한국일보닷컴에서 전체 기사를 디지털 인터랙티브 형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 바로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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