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합의에서 우리 노사정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 근로자의 고용안정과 보호, 장시간 근로의 개선과 아울러 노동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노동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하였으며 이를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하였다. 나아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과 효율성 제고를 위해 사회안전망을 획기적으로 확충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한 정부의 각별한 관심과 조치들이 필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하고 이를 위해 협력하기로 하였다.”
산고 끝에 지난 9월 15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만장일치로 발표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전문 보기) 전문(前文)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각론에서는 “노사정은 불합리한 차별은 금지하는 한편, 상시ㆍ지속적 업무에 대해서는 가급적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인건비 절감만을 이유로 한 비정규직 남용은 억제하도록 노력하여 중장기적으로 비자발적 비정규직 규모가 감축될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또 기간제ㆍ파견근로자 등의 고용 안정 및 규제 합리화와 관련해 “기간제의 사용기간 및 갱신횟수, 파견근로 대상 업무, 생명ㆍ안전 분야 핵심 업무에 대한 비정규직 사용 제한, 노동조합의 차별신청대리권, 파견과 도급 구분 기준의 명확화 방안, 근로소득 상위 10% 근로자에 대한 파견 규제 미적용, 퇴직급여 적용 문제 등”을 추가 논의 과제로 거론하면서 “노사정은 관련 당사자를 참여시켜 공동실태조사,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집중적으로 진행하여 대안을 마련하고, 합의사항은 정기국회 법안 의결시 반영토록 한다”고 했다.
사회안전망 확충과 관련해서도 “실직자의 생활 안정 지원 강화 및 재취업 촉진을 위하여 실업급여제도를 종합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실업급여 지급 기간 연장, 수준 인상, 대상 확대 등 보장성을 강화하는 한편, 실업 인정 심사 및 재취업 지원 강화 등을 통해 효율화를 도모하고 이에 필요한 재원은 노사가 분담하여 조달하는 방안을 강구한다”고 했다.
이 합의문이 발표된 다음 날 새누리당은 5대 노동법안을 발의했고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이 법안 심사가 시작됐다. 노사정 합의문에 따르면 어떻게든 비정규직 확대를 막자는 것이 이 사회적 대타협의 정신이었다. 그러나 이인제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새누리당의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전문 보기)은 35세 이상 근로자의 신청을 조건으로 2년이 한도인 기간제 근로를 2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한도를 채워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한 경우 무기계약 근로자로 전환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예외적으로 이직수당을 지급하고 근로계약을 종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역시 이인제 의원이 대표 발의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전문 보기)을 보면 현재 파견이 허용된 32개 업무 이외에 55세 이상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 뿌리산업에서 금지 업무를 제외한 모든 업무로 파견 대상을 확대하도록 하고 있다. 파견 대상 업종이 봇물 터지듯 늘어나는 것이다.
김무성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고용보험법 일부 개정안’(▶전문 보기)에서는 실업급여의 보장성을 강화한다며 지급 수준을 현재 평균 임금의 50%에서 60%로 높이고, 지급 기간도 최대 240일에서 270일로 확대했다. 하지만 실업급여 혜택을 보기 위해 고용보험에 가입한 기간이 현재 법률로는 18개월 동안 180일 이상이지만 이 기간을 24개월 동안 270일로 높였다. 노동계약이 짧고 고용보험 가입이 취약한 노동자들의 경우 빛 좋은 개살구인 법 개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기간제 근무와 파견법 등 노동시장 갈등의 핵심 쟁점에서 노사정 합의에 역행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새누리당은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입법 강행하려 한다. 야당의 결사 반대로 법안이 표류할 것을 염려한 청와대는 국회의장까지 찾아가 “직권 상정”을 주문했다. 노사정 합의에 참여했던 한국노총은 입법 강행을 ‘노사정 합의 파기’로 간주하고 단위 노조 위원장들이 ‘노사정 합의 파기 요구서’ 서명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노사정 협의에 불참하고 9ㆍ15 합의문도 비판했던 민주노총은 16일 총파업을 한다.
노사정위원회는 무엇 하러 열었던 걸까. 다스려야 할 사회 갈등의 불길에 기름을 붓고 있는 건 누구인가.
“한국 노동시장은 유연성이 넘쳐흐른다. 비정규직이 한국만큼 많은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한국의 비정규직은 노동자의 50%로서 세계 1위다. 아마 2위는 최근 40%를 넘은 일본일 것이다. 유럽에서는 스페인이 30%를 넘는 것으로 악명 높다. 다른 나라들은 이 비율이 10~20%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비정규직은 주로 스스로 원해서 하는 파트타임 노동자들이니 비정규직이라도 별로 불만이 없다.
반대로 한국의 비정규직은 본인이 원하지 않는 타의의 비정규직으로서 이들에게 정규직은 꿈속의 소원이다. 게다가 한국 비정규직의 월급은 정규직의 60%밖에 안되는데, 이렇게 큰 차별을 받는 나라도 별로 없다. 현실이 이럴진대 당연히 비정규직을 줄이고 차별을 줄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한국 노동시장은 비정규직 범람에서 보듯 너무 유연해서 문제인데 정부, 여당은 비정규직을 더 확대하려고 하니 잘못이고, 야당의 ‘유능한 경제정당위원회’의 개혁안이 옳은 방향이다.…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4년으로 늘리고, 파견을 전면 허용하는 노동법을 통과시키면 비정규직은 더 늘어나고 노동자들의 삶은 더 피폐해질 것이다. ‘박근혜 노동법’이라는 괴물이 문을 두드리는데 집안싸움만 하는 야당은 정녕 국민이 두렵지 않은가. 내년 총선에서는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무능하고 독선적인 새누리당이 물론 심판 대상이지만, 사적 감정에 치우쳐 대의를 무시하고 집안 총질하는 사이비 야당도 심판을 면할 수 없다.”(경향신문 12월 11일자 시대의창 ‘노동법, 개혁이냐 개악이냐?’▶전문 보기)
“한국의 노동은 희망이 없다. 임금이 반밖에 되지 않는데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이 세 명 중 한 명꼴이다. 번듯한 기업에서 같은 유니폼을 입고 일하지만 사실은 파견되었거나 용역업체 소속인 소위 간접고용이 170여만명, 열 명 중 한 명이다. 300인 이상 대기업에는 세 명 중 한 명으로 더 많다. 청년 네 명 중 한 명은 아예 일터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고 혹 중소기업으로 취업하면 임금은 대기업의 절반만 받는다. 거기서도 여성이라면 남성에 비해 3분의 1은 덜 받는다. 55세 이상이 되어도 절반은 일한다. 그렇게 일해도 65세 이상의 절반은 가난하다.
한국의 노동은 외롭다. 노동자 스스로 노동을 지킬 수 없다. 노조에 가입한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 헌법에 보장된 단결권을 행사하기가 너무 어렵다. 잘 못하면 국민적 원성은 그렇다 해도 손해배상소송으로 거덜난다. 경영권이나 정부 정책은 교섭의 대상이 아니다. 불법의 덫은 사방에 있다. 국가도 노동하는 이들을 지켜주지 않는다. 전체 일하는 이들의 절반이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가입해도 180일 이상 보험료를 냈어야 하고 해고를 당해야 내가 냈던 보험료에서 급여를 탄다. 그래서 세 명 중 한 명만이 실업 전 임금의 3분의 1 정도를 네 달 받는다. 그 후에는? 국가도 모른다. 대법원이 불법파견이라고 판결을 내려도 수많은 불법파견은 여전히 그대로다. 법치국가 대한민국의 또 다른 일면이다.
그래서 노동은 슬프다. 노동이 기쁘지 않다. 노동을 통해 삶이 살아가지지 않는다. 노동으로 삶을 지키려면 양심, 자존심, 인간다움, 가족, 시간을 버려야 한다.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 산다.
이런 ‘무너진’ 노동 앞에서 다시 노동은 개혁 대상이란다. 기간제를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고령자와 전문직엔 파견인력을 완전히 허용하자고 한다. 성과가 낮은 자라고 규정해 버리면 정규직도 언제든 해고 가능하게 하잔다. 불호령을 내리는 대통령은 모든 것이 ‘기-승-전-노동개혁’이다.”(한국일보 12월 14일자 아침을 열며 ‘대한민국의 노동은 울고 있다’▶전문 보기)
“기간제법과 관련해 노사정이 제3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상황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 공유가 전제되어야 한다. 우선 기간제 근로의 활용이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여러 가지 문제와 결부되어 있지만 우리 노동시장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며, 일부는 존재할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점도 인정되어야 한다. 불가피한 경우라면 노사정위 전문가그룹 공익위원들이 제안한 대로 근로자의 의사를 물어 제한된 범위 내에서 예외적으로 사용 기간을 조정하는 방안도 모색할 여지가 있다. 근로자의 신청에 더해 사업장별로 사용자와 근로자 대표가 서면 합의하도록 하는 경우 사용자 강압으로 당사자 의사가 왜곡될 가능성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고려할 수단이다.
다음은, 기간제 근로가 정규직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기간제 일자리의 질이 상대적으로 열악하고 고용이 불안하다 하더라도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면 현재의 낮은 임금 수준이나 근로 조건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간제 근로기간 동안 다양한 교육 훈련 및 직무 수행의 기회가 제공되어야 하며, 숙련 향상을 위한 제도적 지원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직무 경험이 없는 사람에 비해 정규직 채용 가능성이 높아야 기간제 근로가 가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간제 근로자 사용을 줄이기 위한 수단도 함께 모색되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이면서 부작용이 덜 한 방법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간제 근로자를 줄이고 정규직을 늘리도록 유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임금 및 인사 시스템이 변해야 한다. 현재의 경직된 임금체계와 장시간 노동 시스템으로는 기간제 사용의 유혹을 억제하기 어렵다. 직무와 역할이 임금과 연계되고, 근로시간 단축으로 공급 여력이 커져야 정규직 일자리의 확대재생산이 가능하다.
이상의 제안 외에도 다양한 방법들이 논의되어야 하고, 이에 기반해 사회적 공감이 형성되어야 제도 개선 논의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논의 과정을 배제한 채 ‘그들만의 해법’을 일방적으로 제시했다. 여당이 정치를 포기한 셈인데 이해할 수 없다.”(한국일보 12월 11일자 아침을 열며 ‘기간제법’▶전문 보기)
“정부를 포함한 노사관계 주체들은 노동시장에서 균형과 정의가 파괴돼 있는 상태를 복구하고 정의를 구현해 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 정의로운 노동사회 구현은 한 사회의 지속과 통합을 위한 핵심적인 문제다. 오늘날 보통명사로서 노동개혁의 정당성은 여기에서 찾아진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바, 노동의 투입과 산출 측면에서 형성된 부정의한 모습들을 제거하고 노동기회를 고르게 그리고 노동보상을 균등하게 가져가는 일이다.
지난 9·15 사회협약은 적어도 기본취지 차원에서 이러한 노동정의의 재구성을 명목적으로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 실행방식을 어떠한 식으로 하느냐에 있다. 상징적인 합의는 명목적으로 하고 실행은 자신의 구미대로 재차 힘겨루기로 들어간다면 이는 진정한 합의 정신과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가 구현해야 할 정의로운 노동시장을 위해 가장 우선적인 과제는 무엇인지 상호 진지하게 논의하고 성찰하며, 조심스럽게 그리고 끊임없이 대화에 대화를 이어 가는 태도를 지니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진정한 합의 정신에 부합한다.
2015년 겨울의 문턱에서 한국 노정관계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정의로운 노동시장의 원론적 상과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론을 다시 점검하고 또 점검하는 것은 이 시점에서 아무리 깊게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주먹과 입보다 귀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다.”(매일노동뉴스 11월 26일 박명준의 일자리와 민주주의 ‘정의로운 노동시장을 향한 사회적 대화의 지속을’▶전문 보기)
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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