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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표범 엄마가 선녀 엄마보다 비정하다고?

입력
2015.10.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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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글, 그림

나무꾼의 아들은 엄마가 날개옷을 찾을 때까지 엄마가 선녀인 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엄마 품에 안겨 창졸간에 하늘나라로 올라갔을 때 그 소년의 심정은 어땠을까. 마냥 좋지만은 않았을 듯하다. 아빠와 헤어진 것이 슬프지 않았을까. 아빠와 짧은 재회 후 영영 이별한 후에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인간도 아니고 천상인도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살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선녀의 아들의 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독일 그림책이 있다.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는 북유럽의 ‘셀키 전설’을 새롭게 쓴 그림책이다. 셀키는 바다표범의 모습을 한 요괴 혹은 요정이다. 육지에 올라와 가죽을 벗으면 인간이 된다. 여자 셀키가 벗어놓은 가죽을 인간 남자가 훔치면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 남자와 결혼한다고 한다. 이 그림책은 여자 셀키가 인간 남자와 낳은 아들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후일담이다.

한국의 민담 '선녀와 나무꾼'과 유사한 북유럽의 셀키 전설.
한국의 민담 '선녀와 나무꾼'과 유사한 북유럽의 셀키 전설.

외딴 바닷가에 어부와 아내 그리고 어린 아들이 살았다. 아빠가 고기 잡느라 며칠씩 집을 비우면 엄마는 소년에게 바다 밑 이야기를 해 준다. 어느 날 밤 소년은 아빠가 반짝이는 꾸러미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며칠이 지나 결국 찾아낸다. 그것은 바다표범 가죽이었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입었던 옷을 곱게 개놓고 사라진다. 바다표범 가죽도 사라졌다. 이따금 바위 위에 갓 잡은 고등어 두 마리가 놓여 있다.

이 이야기는 인간 남자가 가죽/날개옷을 숨겨 요정/선녀와 결혼하고 결국에는 그 결혼이 비극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한국 민담 ‘선녀와 나무꾼’과 비슷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선녀/셀키의 아들에 대한 태도이다. 선녀는 하늘로 떠날 때 두 아이를 데리고 갔다. 나무꾼이 선녀와 아이들을 못 잊어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왔을 때 선녀는 나무꾼과 다시 살기도 했다. 나무꾼과 선녀가 영영 이별하는 것은 나무꾼이 지상으로 가서 한 실수 때문이다. 선녀의 아들은 아버지를 잃은 것이 슬프겠지만 엄마를 원망할 수는 없다.

바닷가 바위 위에 놓여있는 갓 잡은 고등어 두 마리.
바닷가 바위 위에 놓여있는 갓 잡은 고등어 두 마리.

셀키의 아들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가 충분히 원망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소년은 셀키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다. 엄마의 존재를 마음속에서 지워버리지도 않는다. 한국과 독일의 정서 차이 때문일까. 한국적 정서로 본다면 그리움과 한이 절절히 맺힐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작가 하이델바흐가 창조한 이 소년은 엄마와의 갑작스런 이별을 받아들인다. 엄마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가슴 아픈 사실도 정면으로 인식한다. 이 책의 앞표지에는 모래톱에 서서 짙푸른 바다를 응시하는 소년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야기를 모르고 봤을 때는 심상하였으나 이야기를 다 읽고 난 후에 다시 보면 소년의 양 허리춤에 손을 올린 자세가 퍽 미덥다. 자기 몫의 운명을 감당해 보겠다는 단단한 마음이 느껴진다. 뒷표지의 바위 위 고등어 그림은 엄마에 대한 소년의 그리움을 절제된 방법으로 표현한다.

셀키 엄마는 선녀 엄마보다 비정하다. 아무래도 셀키가 진실을 숨겨온 남편에 대한 배신감을 선녀보다 더 크게 느꼈던 듯하다. 그러나 셀키 엄마의 비정함을 탓하기에 앞서, 꼼수를 부려 결혼한 후 바다표범 가죽을 장소를 옮겨가며 숨겨온 어부의 비겁함과 이기심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다. 어부는 셀키에게 구애하고 동의를 구할 자신은 없는데 결혼은 하고 싶으니 바다표범 가죽을 훔쳐서 숨겼다. 나무꾼도 마찬가지다. 옷을 훔쳐 여자를 궁지에 몰아 결혼한 것은 사기결혼 혹은 약탈혼에 가깝다. (그런데 어부와 나무꾼이 가죽/날개옷을 아예 불태워 없애 버리지 않고 몰래 간직한 의도가 살짝 궁금하다)

<그림 1,2> 평범한 인간 주부의 삶을 살고 있는 셀키의 눈동자엔 생기가 없다, <그림 3>아들에게 바다표범 가죽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 그의 눈동자엔 번뜩 빛이 돈다. 넓고 동그란 이마와 빗어넘겨 늘어뜨린 젖은 듯한 머리카락 등 셀키 엄마의 외모는 바다표범과 퍽 닮았다.
<그림 1,2> 평범한 인간 주부의 삶을 살고 있는 셀키의 눈동자엔 생기가 없다, <그림 3>아들에게 바다표범 가죽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 그의 눈동자엔 번뜩 빛이 돈다. 넓고 동그란 이마와 빗어넘겨 늘어뜨린 젖은 듯한 머리카락 등 셀키 엄마의 외모는 바다표범과 퍽 닮았다.

셀키는 결혼생활이 때때로 불행했을 것이다. 그리워도 돌아갈 수 없는 바다에 남편은 고기를 잡기 위해 며칠씩 가있기 일쑤다. 아들을 사랑하지만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누를 길 없다. 선녀는 아들을 안고 하늘로 날아갈 수 있었지만, 셀키가 아들을 데리고 바다로 들어간다면 아들이 죽고 말 것이다. 셀키가 아들을 사랑하지 않아서 아들을 떠난 것이 아니다. 바위 위의 고등어는 셀키가 바다로 돌아가서도 아들을 잊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셀키의 비정한 선택 덕에 역설적으로 아들은 한뼘 더 성장한다.

하이델바흐는 셀키의 내면을 서술하지 않았다. 소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독자는 그저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전지적 시점이나 셀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서로 다른 종족의 어긋난 사랑과 배신의 이야기가 고갱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 하이델바흐가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다른 데에 있다.

소년은 바닷물에 발도 안 담가 봤다면서 바다 밑 이야기에 훤한 엄마를 놀라워했다. 아빠가 숨겼던 바다표범 가죽을 찾아낸 후에는 아빠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 했다. 그리고 스스로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애쓴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라는, 인생의 근본적인 수수께끼를 맞닥뜨린 것이다. 소년은 처음에는 아빠가 바다표범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그 비밀을 말하게 되고 결국 엄마와 이별하게 되면서 비로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된다. 하이델바흐는 셀키 아들의 시점으로 전설을 재구성해 남녀의 사랑이 아닌 인간의 정체성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년은 마지막에 “난 크면 뱃사람이 될 거야. 아니면 바다표범이 되거나”라고 다짐한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와 “나는 누구인가”라는 수수께끼를 거쳐 필연적으로 당도한 곳은 “나는 어떻게 살고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다. ‘뱃사람’은 아빠의 정체성이다. ‘바다표범’은 엄마의 정체성이다. 뱃사람이 돼야 하나? 바다표범이 돼야 하나? 뱃사람이면서 바다표범이 될 수는 없을까? 어머니와 아버지의 국적이 서로 다르거나, 다른 나라로 입양되었거나, 이민을 간 사람이 평생 할 수 있는 고민이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부재를 알게 된 소년.
엄마의 갑작스러운 부재를 알게 된 소년.

짙푸른 바다의 스산한 기운을 품은 그림이 이야기의 관조적인 서늘함을 완성시킨다. 하이델바흐는 환상과 일상 양쪽 다 기묘하고 낯설게 그린다. 화사하고 따뜻한 그림책을 선호하는 독자가 하이델바흐의 그림을 본다면 어딘가 모르게 신랄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이델바흐는 어린이를 귀엽게 그리지 않는다. 그의 전작인 ‘엘리베이터 여행’의 주인공은 영리하고 주체적이지만 뿌루퉁하고 살짝 건방진 소녀이다. ‘여왕 기젤라’에서는 그림책 사상 가장 이기적이고 안하무인인 재수없는 소녀가 등장한다. 언제나 사랑스럽지만은 않은 어린이들의 양면성을 제대로 그려냈다. 이 어린이들의 빠꼼한 눈동자는 어른들이 숨기고 있는 인생의 비밀을 조금은 아는 듯하다. 어른들이 강요하는 귀여움에 질린 조숙한 소년 소녀들은 하이델바흐의 어린이 캐릭터에 공감할 것이다.

셀키 엄마가 들려준 바다 속 기묘한 생물들. 가로 200cm 세로 25cm의 어마어마한 펼친그림이다.
셀키 엄마가 들려준 바다 속 기묘한 생물들. 가로 200cm 세로 25cm의 어마어마한 펼친그림이다.

인어 아가씨, 바닷가재 소녀, 구눈박이 장어, 죽음의 해파리, 바다 수도승, 앵무조개 신사, 왕집게발 소년, 도둑 달팽이, 이불 문어 등 셀키 엄마가 들려주는 바다 속 신기한 생물들은 일곱 페이지에 걸쳐 이어지는 거대한 그림으로 공들여 묘사돼 있다. 독버섯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색깔, 몸에서 돌출된 눈알과 흐느적대는 촉수 등 기묘한 이미지의 향연이 소년이 잠든 침대로 유영해 온다. 끝이 없을 것 같은 그림은 문어를 덮고 자는 소년의 코에 앞치마를 한 해마가 키스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한국어판은 맨 뒷장에 이 그림들을 이어 파노라마처럼 펼친그림으로 보여준다. 가로 200cm 세로 25cm의 이 거대한 펼친그림은 독자에 따라, 혹은 때에 따라, 아름답거나 이상하거나 우습거나 무섭게 느껴질 것이다.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세상이란 알 듯 모를 듯 한 것”이라는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하이델바흐는 인생과 세상이라는 수수께끼를 제대로 낼 줄 아는 작가이다.

김소연기자 au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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